[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레이디 인 더 워터> 뉴욕 시사회 및 감독, 배우 인터뷰
2006-09-28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M. 나이트 샤말란이 들려주는 동화

머리 위에 늘 천둥,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을 달고 다니던 만화 캐릭터를 기억하는지? 그가 바로 <레이디 인 더 워터>의 주인공 클리블랜드 힙(폴 지아매티)이다. ‘코브’라는 허름한 아파트 관리인인 클리블랜드는 슬픈 과거를 가진 남자다. 아파트 주민들의 전구를 갈아 끼우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벌레를 잡아주며 자신의 과거를 등지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파트 수영장에서 신비로운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동화 속 요정 ‘나프’(narf)인 스토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나프들의 세계 ‘블루 월드’로 돌아가고 싶지만, 발톱에 독을 품은 괴물 ‘스크런트’(Scrunt)에게 쫓겨 아파트에 숨는다. 수영장 잔디밭에 숨어 있던 스크런트의 모습을 본 클리블랜드는 믿기 어렵지만 스토리의 사연을 받아들인다. 나프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 미세스 최와 그녀의 딸 영순을 비롯해 아파트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전설 속에 숨어 있는 비밀 단서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스토리가 블루 월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잠자리에서 들려준 동화, 영화가 되다

극적 반전을 트레이드 마크로 한 샤말란의 작품은 지금까지 2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던 샤말란이 딸들에게 들려주던 창작동화를 영화로 만들었다. <오즈의 마법사>나 <E.T.> <스타워즈>처럼 새로운 ‘신화창조’에 나선 것. 그는 “<빌리지>를 만들 때 딸들에게 동화처럼 들려주며 시작됐다”며 “그래서인지 두 작품 모두 전작처럼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 캐릭터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딸들이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좋아해 <레이디…>를 구상할 때 큰 영감을 받은 그는 나프와 스크런트처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면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다듬으면서 계속 딸들에게 바뀐 내용을 들려줬다”는 샤말란은 “그래서 <레이디…>를 처음 딸들에게 보여줬을 때 제일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아빠, 이 영화 그냥 괜찮았어’라고 말할까봐 걱정했다(웃음). 그런데 영화를 본 뒤 ‘너무 재미있다’며 좋아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프 역을 맡은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도 아버지가 들려준 동화가 스크린에 오르는 것을 보며 자란 장본인. “어릴 적 아버지(감독 론 하워드)가 지어낸 동화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 이야기들은 <윌로우> <랜섬> 등의 영화로 극장에 올랐다. 한번은 아버지가 ‘옛날에 우주비행사들이 있었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아빠, 어떻게 됐는데….’” 물론 이 이야기는 <아폴로 13>이 됐다. 그래서인지 나프라는 천사인지 외계인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큰 두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나이트가 늘 도움말을 줬다. 그를 믿었고, 그의 비전을 믿었기 때문에 즐거운 경험이었다.”

<레이디…>는 할리우드영화지만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나 볼 만한 연극배우들과 다양한 문화배경(multi-cultural)을 가진 소수민족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폴 지아매티를 비롯해 밥 발라반, 제프리 라이트, 사리타 초더리, 프레디 로드리게즈, 빌 어윈, 제라드 해리스부터 최영순을 연기한 신디 청까지 연기파 배우들로 가득하다(한국인 캐릭터의 등장 이유는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한국인이고, 그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가 재미있어 포함시켰다고). 이 밖에도 왕가위 영화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데이비드 마멧 영화의 편집인 바버라 툴리버, <퀼스> <프롬 헬> 등을 담당한 프로덕션디자이너 마틴 차일즈, <펄프 픽션> <저수지의 개들> 등의 의상담당 벳지 하이맨 등 독립영화 베테랑 스탭이 대부분. “<E.T.>처럼 작은 영화지만 큰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샤말란은 “독립영화와 할리우드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춘 영화”라고 <레이디…>를 설명했다. 지아매티는 “촬영할 때 8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에 내가 주인공을 맡았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연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샤말란은 이 작품을 할리우드영화가 아닌 연기를 위주로 한 앙상블영화로 만들었고, 촬영장을 편안하게 유지해주었다”고 말했다.

디즈니를 떠나 워너브러더스에 둥지 틀다

디즈니에서 <식스 센스>를 비롯해 4개의 대박을 연이어 터뜨렸던 샤말란은 <레이디…>를 워너브러더스와 만들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샤말란은 자만심 때문에 비평이나 조언을 못 받아들인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스탠리 큐브릭, 앨프리드 히치콕, 클린트 이스트우드, 팀 버튼, 워쇼스키 형제 등 워너브러더스에서 작품을 제작한 감독을 나열하면서 “워너브러더스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러에 대한 믿음이 있고, 감독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었다”고 밝혔다. 반면 디즈니와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으로 설명했다. “디즈니에서 시작했을 때 나는 전혀 경험이 없었다. 보호를 받으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네 작품을 한 뒤 디즈니는 나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모성애를 앞세운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 문신을 새기겠다고 반항하는 10대로 보였겠지. (웃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인터뷰

“때론 늦추는 것이 더 빨리 가는 방법이다”

- 브라이스가 당신의 ‘뮤즈’인가.
= (웃음) 난 운이 좋다. 브라이스가 슈퍼스타가 되기 전에 가장 좋은 시기를 잡은 것 같다. <빌리지>와 <레이디…>에서 함께 일했는데, 브라이스의 배우로서의 성장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레이디…>에서는 서로 프로페셔널로 대할 수 있었다.

- 이번 작품에서 당신은 미래를 바꿀 중요한 작가로 출연하는데.
= 내가 연기한 작가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중요한 사건이나 결과에서 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엉클 톰스 캐빈>은 소설이지만 링컨 대통령을 감동시켰고, 결국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해방을 가능케 했다. 물론 노예해방은 언젠가는 이루어졌겠지만 이처럼 작은 이벤트가 중요한 일의 시초가 될 수 있고, 이 때문에 보통 사람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어릴 적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스파이크 리 감독의 <그녀는 그것을 가져야만 해>의 제작과정을 쓴 책을 봤다. 이 때문에 부모님처럼 의사가 되지 않고, 스파이크 리가 다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운 좋게 작품이 성공해 인도의 여성과 어린이를 돕는 재단을 만들 수 있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파이크 리가 그 사람들을 살렸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고용했는데.
= 현재 미국사회처럼 모두가 섞여 더불어 사는(melting pot) 사회를 표현했다. 이중 미국사회에 전혀 동화되지 않은 가족부터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미 동화돼 미국인이 돼버린 이민 2, 3세 등도 소개된다. 그리고 흑인 가족이 동화의 세계와 현실을 연결시키는 ‘통역관’으로 설정했다.

- 대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시골로 이사했다던데.
= 작품을 쓰기에 그만이다. 평화롭고, 영화를 비즈니스가 아닌 창작으로 다시 접하게 도와줬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다. 글도 많이 쓰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도 많이 보고 있다. (웃음)

두 주연배우 폴 지아매티,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인터뷰

“촬영 끝날 때마다 가운 입으러 달려갈 순 없잖나”

- 모든 하워드 가족과 일할 건가.
=폴 지아매티/ 하워드 가족은 아마 700명쯤 되는 모양이다. (웃음) 론(<신데렐라 맨>)과 브라이스와 함께 작업할 기회를 가져 기뻤다.

- 아버지가 올 여름을 시작하고, 딸이 여름을 마감하는 것 아닌지.
=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웃음) 정말 신기하다. 폴은 <신데렐라 맨>을 끝낸 뒤 <레이디…>에 참여했고, 앨프리드 몰리나는 나와 <에즈 유 라이크 잇>을 찍은 뒤 <다빈치 코드>를 작업했다.

- 아버지가 유명한 감독이라 장단점이 있을 텐데.
=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그 때문에 나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읽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견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만족하고, 특히 연기생활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부모님을 가져 행복하다.

- 어떻게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나.
= 폴 지아매티/ M. 나이트 샤말란이 점심하자더니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동화’라고만 말해줬다. 혹시 ‘레프리콘’처럼 초록색 모자를 쓰고, 미친 짓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상상도 했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역할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 뒤 시나리오를 읽었고, 생소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라면 충분히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 어떻게 작품을 선택하는지.
=폴 지아매티/ 내 역할이 얼마나 좋고, 어떻게 하면 돋보일까 생각하진 않는다. 내 연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안 좋은 영화가 나아지진 않는다. 난 감독을 보고 작품을 택한다. 성공이나 실패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저 감독을 믿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코믹연기와 만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많이 하던데.
=폴 지아매티/ 사실 코믹연기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데, 코미디처럼 힘든 게 없다. 난 윌 페럴처럼 코미디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그래서 특이한 소재를 가진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이중에 만화가 많더라. 개봉작 중 로브 좀비가 쓴 성인 만화를 바탕으로 한 <헌티드 월드 오브 엘 슈퍼베스토>와 케이블 채널 Sci-Fi의 <어메이징 스크루-온 헤드> 시리즈, 애니메이션 <앤트 불리> 등이 있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호러와 공상과학쪽 연기를 더 해보고 싶다. (웃음)

- 물속의 요정 나프를 연기하면서 노출장면이 많았을 텐데.
=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몸매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키니를 입은 적도 없다. 노출장면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매번 촬영을 끝낼 때마다 가운을 입으려 달려갈 수는 없지 않나. 그날 그날 분위기나 기분에 맞게 대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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