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야연> 감독 펑샤오강
2006-09-27
글 : 김수경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영화는 다양한 쾌감을 깊이있게 전할 수 있는 오락이다”

‘중국의 스필버그’ 펑샤오강이 한국에 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륙 인민을 웃고 울리던 흥행감독 펑샤오강은 <야연>으로 처음 국내 관객과 만난다. <야연>은 중국에서 개봉 4일 만에 7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최종적으로 2500만달러 이상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둘 전망이다. 장이모와 첸카이거가 무협대작으로 깜짝흥행을 선보였다면 펑샤오강은 <갑방을방> <몰완몰료> <수기> <따완> <천하무적>을 비롯한 히트작을 양산하며 근 10년 가까이 중국을 대표하는 인기감독으로 군림했다. ‘설영화, 블랙코미디의 일인자’였던 펑샤오강이 웃음기를 지워버린 비극 <야연>을 만든 심경이 궁금했다. W호텔에서 만난 펑샤오강은 처음 만든 비극 <야연>과 서민적인 영화의 중요성에 대해 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 무협대작은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주특기인 코미디를 배제하고 고전 비극에 가까운 분위기의 대작 <야연>을 만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국 관객은 나의 코미디물에 익숙하기 때문에 <야연>이 낯설지도 모른다. 평생 두 종류의 영화는 꼭 만들고 싶었다. 하나는 이제까지 만든 게임하는 듯한 코미디물, 다른 하나는 로맨틱하고 고전적인 영화. <야연>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에너지를 뿜어낸 기회였다. 중국 영화계나 관객도 이런 속내는 몰랐을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는 제작사에서 전한 것으로 안다. 완성된 영화는 초기 시나리오와 많이 다르다.
=제작사에서 준 시나리오는 <햄릿>을 거의 베껴 쓴 것이라 맘에 안 들었다. 새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원작 <햄릿>과 다른 느낌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제작사쪽은 서양인들에게 <야연>을 마케팅할 때 <햄릿>을 내세우면 용이하다는 이유로 그걸 부각하는 바람에 <햄릿>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굳이 비교하면 <야연>은 햄릿 여사, 혹은 레이디 햄릿이다.

-완의 죽음을 다루는 모호한 결말에 대해 관객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을 둘러싼 황실의 암투가 빚어내는 잔혹하고 험악한 분위기와 심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남을 죽이려 하거나 스스로 위협받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도 위험에 빠뜨리는 관계를 암시하는 결말이다. 베니스, 토론토영화제에서 기자들이 완을 살해한 범인을 끈질기게 캐물어서 내가 죽였다고 답하기도 했다. (웃음)

-원래 무대미술을 했던 당신의 이력과 티미 입의 프로덕션디자인이 만난 <야연>의 건축과 의상은 인상적이다.
=관객에게 기존 고전물과 다른 미술을 선보이고 싶었다. 보통 아시아 고전물은 금·은빛이나 찬란한 원색을 자주 썼지만 <야연>은 최대한 소박한 색조를 내려 했다. 건축물과 의상은 주로 청나라 시대에 속한다. 소수민족 만주족에서 출발한 청나라 시대의 건축과 의상은 독특한 색감을 지녔다. 혹자는 <야연>의 미술과 의상을 일본풍이라고 비난하지만 고증에 따르면 일본풍도 9∼14세기에 당나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실내공간은 광활한 느낌이 필요해서 축구장만한 세트장을 지었다. 서양의 중세 희극적인 스타일도 가미됐다. 프로덕션디자인에서 색상은 심플하게, 공간은 최대한 크게 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부연하면 서양의 오페라와 동양 고전극의 결합을 꾀했다. 함께 작업한 스탭들과 논의할 때도 민족성보다는 고전적인 시각을 보여주자고 했다.

-당신은 무대미술가, 드라마 작가, 드라마 연출자 등으로 활약했다. 영화감독을 처음 결심한 시기는 언제였나.
=1993년이었다. 동명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뉴욕의 북경인>이 히트하면서 영화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과는 달리 영화도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소설가 왕수오와의 인연이 각별하고 그와 함께 대본을 썼던 시절이 있다. 당시에는 검열 때문에 심적 고생도 심했던 걸로 안다.
=사실이다. 그로 인해 코미디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왕수오의 소설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인연으로 그분을 만났다. 그분의 가장 큰 장점은 보통 사람들과 반대로 사물이나 사건을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사유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직접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의 오래된 페르소나 갈우와의 첫 만남과 그간의 인연이 궁금하다.
=왕수오의 소설을 각색한 <완주>라는 영화에 그가 출연한 걸 봤다. 굉장히 독특한 연기를 하더라. 그래서 왕수오와 같이 가서 처음 만났다. 갈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제일 먼저 물은 질문은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꼭 찾아나선다. 이를테면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랑 비슷한지 묻기도 한다. 그런 갈우를 설득하려면 합리적인 드라마를 가진 영화여야 한다. 우리가 다섯편의 영화를 같이 작업한 다음 주위 사람들이 다른 감독과도 작업하라고 그에게 권했다. 하루는 그가 찾아오더니 “따로 작업해보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탄식>을 다른 배우와 만들고, 갈우는 젊은 감독과 예술영화를 만들었다. <탄식>은 관객을 꽤 동원했는데 그의 출연작은 흥행이 별로였고 다시 함께 작업하게 됐다. 나는 그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아내고 그는 내가 원하는 연기를 가장 정확히 해내는 배우다.

-당신의 코미디물은 소시민적인 정서에서 소재와 주제를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작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비결이 있다면.
=영화관객은 보통 두 가지를 보고 싶어한다. 스스로 절대 이루지 못하는 꿈, 아니면 밥먹는 일처럼 매일 겪는 일상이다. 내 영화는 후자를 택했다. <수기>(phone)를 예로 들면, 작업실에서 대여섯명이 회의를 하는데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와서 회의를 할 수가 없었다. (직접 뛰어가는 동작을 흉내내며) 그것도 자기 자리에서 받지 않고 꼭 구석으로 달려가서 받더라. 그래서 다른 아이템을 고민하지 말고 이걸로 하자고 했다. 더 웃긴 건 그 사람들이 집에서는 진동으로 해놓고 와이프에게 걸릴까봐 벌벌 떠는 일이다. <수기>의 시사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영화가 절반 정도 진행됐을 때 몇몇 남자들이 화장실로 몰려갔다. 기자들이 따라가보니 전부 문자를 지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웃음) 남자들은 와이프가 <수기>를 보러 가자면 별로라며 만류하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끌고가서 보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더라.

-또 다른 영화 <따완>에는 말론 브랜도의 캐스팅이 유력했다고 들었다.
=말론 브랜도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갈우 때문이었다. 갈우가 출연한 <인생>을 보고 감동한 그는 LA에서 갈우에게 만찬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것을 기화로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3개월이 지나 연락을 하더니 ‘속세에서 조금 떠나 있고 싶기 때문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미국의 한 제작자는 “말론 브랜도가 출연하지 않은 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개성이 너무 강해서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진행된 게 다행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배우에게 현장에서 연기의 자유를 주지만, 결단력은 확고하다고 장쯔이는 말했다.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전문적인 연기교육을 받은 배우만 캐스팅한다. (웃음) 내 현장에서는 원하는 만큼 나왔다는 결정 외에는 배우 자신이 알아서 움직이고 판단한다. 배우들을 선택할 때는 대본을 주고 읽게 하고 목소리만 들으면 판단이 선다. 시를 낭송하듯이 대사를 읊는 배우를 가장 싫어한다.

-다시 블랙코미디물로 돌아갈지, 또 다른 대작을 만들지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전쟁영화 <집결호>다. MK픽처스 강제규 감독에게 조언을 구해 공동제작 형태로 진행한다. 10월6일 크랭크인을 하는데 준비를 하다보니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은 강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1948년을 배경으로 1500명의 군인이 속한 사단이 한 공간에 갇히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사단장은 그들을 구하러 오겠다고 약속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고 죽음을 넘나드는 그들의 네 시간을 따라잡는다. 미국에서 CG와 사운드를, 한국에서는 연기, 특수효과, 분장, 촬영을 맡는다.

-현재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오락이다. 영화는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비롯해 비극이 주는 슬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쾌감을 깊이있게 전할 수 있는 오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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