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아이 예뻐라, 구미호, <구미호가족>의 박시연
2006-09-28
글 : 이다혜
사진 : 이혜정

섹시함이라는 형용사에 팔다리가 있다면 박시연의 몸매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얼굴은 작고 이목구비는 시원시원하다. 누가 미스코리아에 CF 모델 출신 아니랄까봐,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능숙하게 포즈를 취한다. 얼굴 표정도 몸짓도 거침이 없다. 외모가 주는 인상을 조합해보면 새침함과 까탈스러움이 마땅한 결론인데, 박시연이 입을 여는 순간 그런 생각은 자취를 감춘다. 고생을 했을 법한 상황들을 떠올리면서도 너털웃음을 곧잘 터뜨리고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게 다다. 딱히 뭘 감추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수도 적다. 차분한 성격이라서? “차분한 게 아니라 말투가 느리다. 사실 <마이걸>에서 감정 기복이 심하고 대찬 역할을 맡았는데 내 성격과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 그리고 다시 너털웃음.

박시연은 얼마 전 영화 데뷔작 <구미호가족>을 찍었다. <구미호가족>이 개봉하기도 전에 박시연이 다음 영화 <일편단심 양다리>에 재희와 함께 주인공으로 개스팅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1979년생이니까 영화배우로 데뷔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자리를 잡아가는 속도가 늦은 것도 아니다. 조급한 성격이 아니라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사실, 박시연의 경력을 들여다보면 이미 착실하게 한 계단씩 밟아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박시연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고, 대학 재학 중이던 2000년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 수상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전공이던 방송학 공부를 마쳤다. 졸업 뒤 한국에 돌아와 CF 모델과 패션화보 모델로 일하다가, 2002년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어하던 중국 TV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 “CCTV에서 한류스타가 아니라 신인급을 찾고 있다고 하더라. 내가 속해 있던 에이전시에서 후보로 몇명의 사진을 보냈는데 그중 내가 뽑혔다. 운이 좋았다. 그래서 중국에 가 살면서 드라마 세편을 내리 찍었다.” 케이블 채널인 무협TV를 통해 한국에서도 방영된 <봉구황>은 중국 소설과 경극으로 유명한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다. 박시연은 이 드라마에서 전설적인 미인인 탁문군을 연기했다. 진시황 시대의 명마 이야기를 다룬 <한혈보마>, 중국 신화에서 모티브를 딴 <보련등>으로 이어지는 중국 드라마 출연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중국 생활을 하다보니 생활중국어, 촬영현장 중국어도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국내 드라마 <마이걸>로, <연개소문>으로, 현대극과 사극을 오가며 분주하게 활동해왔다.

<구미호가족>에서 박시연이 맡은 역은 구미호 가족의 큰딸이다. 이 맏딸의 결정적 문제는 남자를 너무 밝힌다는 것. 섹시함이 넘쳐흐르니 남자를 밝힌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법하건만, 이 아가씨 구미호, 어딘가 좀 바보 같은 데가 있다. 섹시댄스를 출 곳 번지수를 잘못 찾아 헛수고를 하는가 하면, 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 중에 하필 나이도 많고 뒤도 구린 기동(박준규)과 동침한다. 처음 해보는 영화에 장르는 뮤지컬, 게다가 상대배우는 한참 위의 선배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재미있기도 했고, 욕심도 났다.” 그렇게 구미호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모든 게 호기심이었으니 하나하나 재밌고 즐겁기만 했다. 촬영 두달 전에 안무와 액션, 노래를 배웠다.” 영화 데뷔작인데 참고할 만한 구미호 영화가 많지 않아서 준비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구미호는 보통 무서운 존재로만 그리지만 꼭 무서우라는 법 있나? 가끔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때는 ‘우린 구미호잖아~’ 하고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웃음) 구미호라는 존재를 새로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박시연은 그렇게 때로 요염떠는 여우 같고 때로 수더분한 곰 같은 구미호 가족의 맏딸이 되었다. 같이 연기한 주현, 박준규 등 선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조건 “좋아요, 정말 좋았어요”로 통일해버리는 박시연의 두루뭉술한 모범답안이 공치사처럼 들리지 않았던 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천천히 터지는 말보다 먼저 반짝거리며 웃기 시작하는 눈매 때문이었다. 연기의 내공도 출연작 수도 관건이지만, 배우 박시연이 관객에게 확실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비가 하나 더 있다. 그래서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기 전에 에릭과의 염문이 먼저 알려진 사실이 걱정되거나 불만은 없는지 물었다. 천천히, 하지만 자신있는 어조로 답이 돌아온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시연의 가장 큰 자산은 긴 팔다리보다 오똑한 콧날보다 조급해하는 대신 때를 기다리며 노력하는 낙천주의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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