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70년대에 내뱉는 거친 한숨, <별빛 속으로> 촬영현장
2006-10-0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9월20일, 대전영화촬영스튜디오 세트장. <별빛 속으로>(제작 스폰지, 감독 황규덕)의 촬영이 한창이다. 70년대 말 배경에 어울리게 라디오에서는 언뜻 송승환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 소리를 귀기울여 들으며 뭔가 석연치 않아하는 교련복 차림의 대학생 수영(정경호). 뒤이어 촬영된 장면은 정신을 잃은 그를 사랑스럽게 안고 있는 일명 삐삐 소녀(김민선)와 ‘진지한’ 표정의 일명 노란샤쓰(김C). 청년은 지금 이것이 삶인지 죽음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다. “자기(정경호)는 이들이 사라지고 나면 정신을 차리는 거야. 경호씨 미치도록 숨을 쉬어야 돼.”

“미치도록 숨을 쉬어야 돼….” <별빛 속으로>는 70년대 말을 살았던 한국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같은 강의실에서 시작된 수영과 삐삐 소녀와의 인연은 잠시 연애 감정에 빠져든다. 그러나 삐삐 소녀는 집회장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다 떨어지고, 수영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노란 샤쓰를 만나 그의 동생 수지(차수연)의 과외공부를 맡게 된 수영. 그즈음, 죽은 줄 알았던 삐삐 소녀가 나타나고, 게다가 그녀는 수영을 향해 너도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별빛 속으로>에서는 환영과 실재가 뒤섞이는 미묘한 관계들이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오늘 촬영도 바로 그중 한 장면. <철수, 영희>의 황규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초현실의 느낌을 강하게 주겠다고 한다. 그건 그 시절의 기억을 보듬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요즘은 70, 80년대를 우스꽝스럽게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절에도 진실한 것들이 있었다. 연탄재나 던지고, 욕지거리나 하는 걸 보여줘서야 되겠나. 어느 것이 진짜고 가짜인지 잘 모르도록 능글맞게 가되, 다 듣고 보면 모두가 진짜인 이야기가 이 영화다. 그리고 내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가 될 거다.” <별빛 속으로>는 10월 초 촬영을 마치고, 내년 2, 3월경 개봉예정이다.


“육체가 힘들 때 정신이 맑아져요”

<별빛 속으로>의 제작부장 강가미

<별빛 속으로>의 제작회계 겸 제작부장 강가미(29)씨. “나는 저렇게 운전 잘하는 여자 처음 봤어. 그리고 아구찜 먹을 때 보니까 간장을 통째로 먹더라고. 이 정도 똘아이면 되겠다 싶어 뽑았죠”라며 황규덕 감독이 추천사를 대신한다. 물론 간장 들이켠 사건이 실수라곤 해도, 어쨌거나 척 보기에도 ‘보통(?)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말을 들어보니 또 달리 보인다. 현장에서는 단연 “가방 끈 제일 긴 스탭”으로 통한다고. 생물학 석사를 그만두고, 어학연수 겸 중국 유학길에도 올랐다가 지금은 아주대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본격적인 영화일을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다. 그런데, 본인 얘기를 들어보니 또 다르게 보인다. “철인삼종경기 하듯 몸을 굴리는 걸 좋아해요. 다리에 힘이 풀릴 때가 가장 좋아요. 저는 육체가 힘들 때 정신이 맑아져요.” 정말 괴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래서 들은 말을 종합해보니 그녀의 정체는 ‘가방 끈 제일 긴 똘아이 철인’ 정도가 된다. 하지만, 얼굴도 잘 기억해주실 것. “너무 떨렸어요. 스탭 할 때는 그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연기해보니까 연기자 힘든 걸 알겠더라고요.” 원래는 없었지만 대사까지 생겼다는 그녀의 영화 속 역할은 꽃집 아가씨. 그럼,‘가방 끈 제일 긴 똘아이 철인 꽃집 아가씨’? 애칭이 많다는 건 재주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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