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8일 개봉한 영화 〈타짜〉는 ‘최고 경지에 오른 전문 도박사’ 4인방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하지만 시사회가 끝난 뒤 조역 ‘아귀’였던 김윤석(39·사진)의 호연이 주연에 버금가는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전 생김새로 보나 뭘로 보나 ‘당연히’ 도인의 길을 가는 타짜 ‘짝귀’ 역이 올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최동훈 감독이 뜻밖에 저한테서 사악한 아귀를 본 거죠.”
아귀는 화투판에서도 정평이 난 최고수 타짜로, 상대방 타짜의 ‘기술’을 잡아내는 즉시 손목을 잘라버리는 잔인한 인물이다. “아귀는 정신적으로 아예 근처에 가기가 꺼려지는 인간이죠. 도박판이라는 게 자칫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 낭만의 정점에 인간성을 상실한 끔찍한 존재(아귀)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지요.”
한국방송 주말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 속 ‘착한 남편’을 떠올린다면, 최 감독이 아귀 역으로 김윤석을 떠올린 건 신기에 가까운 캐스팅 같다. 하지만 그는 최근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상종하기 싫은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역을 눈부시게 소화해냈다. 또 문화방송의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도 인간 말종 같은 남편 역으로 매일 아침 시청자들의 속을 훌러덩 뒤집어 놓는 중이다.
“존 말코비치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악역을 잘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해서다’라고. 학교 다닐 때도 왜 그렇잖아요, 제일 싫은 선생님 흉내를 제일 잘 내게 되고…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관심이 더 가고, 그래서 캐릭터 분석도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악역’이라는 점 외에 그의 최근 영화 두 편을 모두 본 관객들은 그의 유창한 사투리 구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부산 태생’이라는 점에서 〈천하장사…〉 속 경상도 사투리는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타짜〉 속 전라도 사투리마저 자연스럽다는 데는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배우 박철민한테서 배운 거예요. 근데 도박꾼은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따리장수거든요. 100% 전라도 토박이 말을 쓰는 것보다 전라도 뉘앙스에 표준어를 살짝 얹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다음번에 또 악역이 들어오면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이제 남들이 다 아는 제 이미지를 가지고 캐스팅하는 머리 나쁜 감독의 작품은 안 하겠지요.(웃음) 제가 지금껏 했던 악역들과 다른 저를 떠올리는 감독과 작업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