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극락도엔 아무도 없었다, <극락도 살인사건> 촬영현장
2006-10-11
사진 : 이혜정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아이들이 서투르게 그린 극락도 풍경이 붙어 있는 교실, 이장(최주봉)이 살아남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사건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니께, 이제는 누가 뭍으로 나가서 신고를 했으면 하는데….” 그러나 성격 똑 부러지는 학교 선생 귀남(박솔미)이 조근조근 앞뒤 이치를 따지며 이장의 추리를 반박하자 마을 사람들은 다시 중구난방 토론을 시작한다. 전두환 정권 말기 무렵 1986년 외딴섬이 배경인 <극락도 살인사건>은 이처럼 섬에 고립되어 스스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고자 분투하는 시골 주민들의 진지하고 무서우면서도, 남들이 보기엔 다소 웃길 수밖에 없는, 며칠간을 담고 있는 영화다.

시나리오를 쓴 신인 김한민 감독 스스로 ‘토종추리극’이라고 규정한 <극락도 살인사건>은 극락도 주민의 시체가 낚시꾼들에게 발견되면서 시작하는 영화다. 목포 경찰이 파견되어 극락도에 도착하지만, 살인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마을 주민 열일곱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착하고 성실했던 보건의 우성과 그를 좋아하는 듯했던 선생 귀남, 막걸리와 숨은그림찾기에 집착하던 학교 소사 춘배(성지루), 포악한 성질로 인심을 잃었던 이장 아들 상구(박원상) 등등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설정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김한민 감독은 사라진 주민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현재와 물정 모르는 주민들이 살인사건을 맞아 우왕좌왕하는 과거를 교차시키며 미스터리를 증폭시켜간다. 그는 “스릴러와 호러와 코미디와 멜로까지 섞여 있는 영화이므로 순간순간 충돌하는 느낌이 주는 신선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해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 들어가는 가거도에서 주로 영화를 찍은 제작진은 파주에 있는 스튜디오로 옮겨온 다음에도 바닷바람과 햇빛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검은 얼굴이었다. 바다가 험해 외부로 사건을 신고하러 나가지 못하는 극중 설정처럼, 섬을 들고 나는 바닷길 또한 태풍으로 인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열일곱명 마을 주민이 거의 함께 지내야 했기에 이보다 더 호흡이 잘 맞기는 어려웠다는 <극락도 살인사건>의 제작진은 12월경 그 결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분장한 걸 보고 나도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극락도 살인사건> 배우 성지루

<선생 김봉두>에 이어 또다시 학교 소사 역을 맡은 성지루는 그저 산골주민이었던 그때보다는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티저포스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봉두난발의 시커먼 얼굴과 음산한 눈빛을 하고 있는 춘배는 단지 외모만 이상한 인물은 아니다. 행동도 이상하다.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하고, 애완견 대신 애완염소를 기르고, 숨은그림찾기에 집착한다”고 춘배를 소개한 성지루는 추리물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춘배를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런 식이다. “춘배는 후반부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캐릭터지만, 처음엔 그가 광인인지 어눌한지 어떤 인물인지 알기 어렵다. 감독과 의논도 해가면서 결국 술의 힘을 빌리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밥보다 술을 좋아하니 남보다 흥청거리고 지능이 낮아 보이기도 하고, 나중엔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처럼 열심히 춘배를 연구한 성지루지만 그 분장 그대로 기자들 앞에 나서기는 민망하여 분장을 지우고 나왔다고 했다. “처음 분장한 걸 보고는 나도 내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춘배스럽다고 대포를 날려주니(웃음) 지금은 청바지 입은 일상적인 모습보다 해병대 체육복 입고 있는 지금이 더 편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