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르게 답할 것이다. 우주 전쟁이나 괴물처럼 상상 속 존재를 눈앞에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것일 수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것일 수도, 인생의 극적 순간을 압축해 경험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매력 가운데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순간을 영원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만든다. 영화를 시간의 예술이라 칭하는 것도 시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만큼은 영화가 미술, 사진, 음악, 연극 등 다른 예술 장르보다 우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형식은 플래시백이다. 회상장면을 통해 관객은 인물의 심리에 동화되거나 흩어진 퍼즐의 조각을 맞춘다. 쉽고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라 플래시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다. 너무 흔히 볼 수 있어서 그만큼 식상한 기법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영화의 강력한 장점을 지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짜>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플래시백은 예쁜 칼이다. 달콤하지만 위험한 유혹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들은 플래시백을 애초에 거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영화들은 플래시백 사용에 더 과감해짐으로써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는 영화의 대부분을 플래시백으로 처리해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절절함을 끌어냈고, 이창동의 <박하사탕>은 차츰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의 연쇄를 통해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를 깊이 응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플래시백이라는 이음새를 눈치 못 채게 쓰는 영화들도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환상과 플래시백을 뒤섞어 영화적 화법의 어떤 극단을 맛보게 했다. 그런가 하면 김기덕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의 매듭을 꼬아 시간을 둥굴게 말아버린다. 여기서 시간은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않는 영겁의 블랙홀이 되어버린다.
<타짜>는 등장인물들이 두루 눈길을 끄는 영화라는 점에서 상찬을 받았지만 플래시백을 쓰는 방식에서도 칭찬받을 만하다. <타짜>는 여러 개의 플래시백이 동시다발로 전개되면서 인물들에게 생동감을 부여하고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만든다. 영화 속 시간을 분절시켜 배열하면서 극의 리듬을 만드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문법은 한국영화에서 흔한 것이 아니다. 오래전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고 김상진 감독을 만나 플래시백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에 자주 등장하는 플래시백이 너무 안이한 선택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도 안다고 답했다. 김상진 감독은 “그렇지만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대안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서도 두 주인공의 과거를 설명하는 플래시백이 마음에 걸렸다. 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꼭 더 세련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식의 플래시백은 세상 모든 일을 원인과 결과로 단순화시킨다. 그런 이분법적 세계에 해석의 여지는 거의 남지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의 플래시백은 주인공들을 온전히 억울한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린다. 사형제도에 관한 통렬한 문제제기가 될 수 있었던 영화가 싸워보기도 전에 백기를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많은 관객을 울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좋다는 느낌을 갖긴 힘들다. 플래시백은 예쁜 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