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타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배우 김상호
2006-10-11
글 : 이다혜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나쁜 놈이면 어때? 사람 냄새 나면 됐지

김상호가 분한 역할들은 실생활에서 만났다간 큰일날 사람들이다. 화폐위조 기술자 휘발유(<범죄의 재구성>), 룸살롱 영업상무(<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전국을 돌며 도박판을 벌이는 타짜 박무석(<타짜>)…. 그런데 이 사람들, 어쩐지 다 딱하고 안쓰러운데다 귀여운 구석이 있다. 김상호가 맡은 역할들은 악당이라 해도 악의 축이기보다는 생계형 하수인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으로 치면 일용직 노동자들과 맥을 같이한다. 생김새 역시 비장하고 사악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몸을 곧추세워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보다 어깨를 움츠리고 양 옆 눈치를 보는 모습이 익숙하다. 김상호가 <범죄의 재구성>을 첫 작품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낯익고 친숙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그의 인간적인 면이 뚝뚝 묻어나는 연기에 있다. 자연인 김상호가 그의 영화 속 페르소나와 얼마나 같고 다른지는 짧은 인터뷰 시간으로 다 헤아리기 힘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축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단어의 온전한 의미 그대로. 수원 삼성 블루윙스를 너무나 사랑해, 축구 보다가 아이를 잃어버린 일도 있고, 영화 덕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서포터즈 중 한 사람이 5분 만에 아이를 찾아주기도 했다는 일화는 <피버 피치>의 닉 혼비도 뺨맞고 울고 갈 성질의 것이었다.

-연극을 오래 했다. 영화에 처음 출연하게 된 계기는 뭔가.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에서 연극 경력 10년 이상의 배우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오디션을 봤다. 결국 몇몇 배우와 함께 뽑혔는데 거제도 해변에서 뛰는 것만 시키더라. 알고 보니 변변한 배역이 없었던 거다. 다른 배우들과 같이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나. 그 일이 상처로 남았다. <범죄의 재구성> 때 오디션을 보라는 말을 듣고도 그 일이 기억나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인류 최초의 키스> 앙코르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범죄의 재구성> 연출부가 와서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 기대를 안 해 준비도 않고 오디션을 봤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범죄의 재구성>을 찍고 기분이 들떠서 아내보고 일 관두라고 하고 애를 갖기로 했다. 덜컥 임신이 됐는데 생각과 달리 6개월간 다른 영화에서 연락이 없더라. (웃음) 결국 아내가 임신부 몸으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더라. 지금은 일은 쉬면서 아이 키우고 있다. (웃음)

-<범죄의 재구성>이 개봉했을 때 ‘아, 저 배우’ 하고 생각했었다. 이미 여러 번 스크린으로 본 배우 같은 익숙함이 있었다. 첫 작품이었는데.
=그런 말 많이 듣는다. 사실 <흑수선> 보면 나도 내가 어디 나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덕은 아닐 텐데. (웃음)

-최동훈 감독에게 각별한 정 같은 게 있겠다.
=누가 영화 데뷔작을 물어보면 <범죄의 재구성>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거지. 최동훈 감독은 내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대학로에 연기 잘하는 배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나? 나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다는 데 감사할 뿐이다. 최동훈 감독은 내게 행운을 준 사람이다. 연기 지도를 할 때 배우에게 자유를 주고 캐릭터를 잘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들이 돋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무리 제안을 해도 결국 자기 생각대로 가더라만. (웃음) 배우는 자기가 상상한 걸 다 하고 싶어하는 인간이잖나. 그 조율을 잘하는 사람이 최동훈 감독이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내 고향이 경주다. 고졸 학력은 검정고시로 땄고 대학은 가지 않았다. 특별히 나쁘게 살았던 것도 아닌데 그저 공부와 연이 안 닿았다. 고등학교를 두번 다녔는데, 두 번째 고등학교에서 1학년일 때, 처음 다녔던 학교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머리가 큰 나이였으니까 그때 집에서 고민했다. 내가 살다 간 흔적을 어떻게 남길까 하고. 그때 복싱을 배웠는데 깡패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사고치면 신문 사회면에 이름이라도 나오지 않겠나. (웃음) 그건 아니다 싶어 변호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공부는 적성이 안 맞아서…. 그래서 가수를 해보자고 결론내렸다. 가수를 하려면 서울에 가야겠다 싶어서 경주에서 방위 제대하고 일단 인천으로 갔다. 15만원을 가지고 인천의 아는 형에게 찾아가 공장 일을 하다가 일단 연극으로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에 왔다.

-주변의 권유나 영향없이 연극을 시작했다는 게 특이하다. 무작정 극단에 찾아간 건가.
=사실 처음 찾아간 극단에서 워낙 냉랭하기에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로 연극에 발을 디뎠다. 포스터를 붙이면서 알게 된 형이 극단 청우 창단멤버였는데 그 형 권유로 청우에 들어갔고, 94년에 <종로고양이>라는 연극으로 배우 데뷔를 할 수 있었다.

-말만 들어도 먹고살기 힘들었겠다 싶다.
=사실 98년인가 99년에 연극을 관둔 적이 있다. 돈을 제대로 못 버니까 집 보증금을 월세로 까고 무일푼이 된 걸 알고 충격받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뭔가 싶더라. 경주를 떠날 때는 “이 촌놈들아, 내가 까만 양복 입고 성공해서 돌아온다”고 했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즈음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그 사람 고향이 원주였다. 아내가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사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을 힘들어하기에 관두라고 하고 같이 원주로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서가 무척 좋은 직업이라고 하더라. (웃음) 책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옷가지 든 더플백 하나 들고 원주로 가서 월세 15만원짜리 가게를 얻어서 낮에 라면가게 하고 밤에 신문을 돌렸다.

-왜 라면가게였나.
=내가 라면을 잘 끓인다. 어떻게 라면 장사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뚝배기를 쓰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큰 뚝배기를 사버렸다. (웃음) 그래서 미더덕, 새우, 조개 같은 걸 잔뜩 넣고 라면을 끓여 2000원에 팔았는데 장사가 꽤 잘됐다. 하지만 원가가 비싸니 돈이 안 남았다. 라면값을 500원 올렸는데 그때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 그래서 라면가게를 접고 낮에 노가다를 하고 새벽에 신문을 돌렸다. 이렇게 살면 돈은 모으겠지만 그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연극을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만약 내 아들이 자기 꿈을 향해 가다 포기하면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누라에게 서울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1주일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마누라가 “날 행복하게 해줄…” 하고 운을 띄우기에 “자신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서울로 가자고 했다. 노가다와 신문배달로 모은 500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불광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비빌 데가 없었다. 간신히 소개를 받아 연기를 다시 시작했는데, 극단 청우에 다시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게 <인류 최초의 키스>다. 그 작품으로 인정을 받아 약간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극배우로 자리잡기 시작한 건 그럼 서울로 다시 온 그때부터였겠다.
=내가 <남자충동> 초연 멤버다. 그때까지 주변에서는 나를 배우라기보다는 포스터 붙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남자충동>은 그래서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남자충동> <인류 최초의 키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시립극단, 국립극단의 공연들을 잇따라 할 수 있었다.

-연극에서 자리를 잡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영화로 옮겨온 셈이다. 영화로 오면 무명의 신인이 되는 건데 불안은 없었나.
=<범죄의 재구성> 팀에서 많이 배려해주었다. 진짜 행복했다. 생각해봐라, 얼마나 떨렸겠나. 쟁쟁한 선배들에 잘나가는 배우들이 같이 출연했는데, 다들 친절하게 잘해주었다. 3일 만에 적응했다.

-다음 영화는 뭔가.
=<식객>을 찍는 중이다. 역할은 우중거라는 라면 마니아. 원작 만화에는 없는 인물이다. 내가 라면 장사를 하지 않았나. 기이한 우연이다. (웃음) <식객> 대본을 읽는데 우중거라는 인물이 너무 웃겼다. 한참을 웃으면서 대본을 봤는데 이게 웬걸, 초반에 잠깐 나오다 영화 내내 거의 안 나오는 거다. 하하. 이우열 감독의 <소년감독>이라는 영화는 다 찍었다. 저예산영화라 개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54살 먹은 강원도 이장으로 처음 출연제의가 들어왔는데 (넓은 이마를 가리키며) 내가 아무리 머리가 이래도 54살은 좀 심하지 않나? 게다가 다 큰 딸이 있고. 그래서 이장 나이가 너무 많다고 했더니 시나리오를 고쳐서 다시 가져왔더라. 그런데 나이가 45살로 바뀐 거 말고 나머지 설정은 다 똑같더라. (웃음) 45살도 많지 않나? 아직 젊은데.

-영화는 많이 보나.
=요즘 극장을 못 가서 거의 케이블TV로 영화 보는 게 다다.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재미있는 영화라는 게 웃긴 영화를 뜻하는 게 아니다. 최근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마르케스의 책을 다 읽었는데, 마르케스 소설은 사람을 웃게 하는 동시에 짠하고 희로애락이 잘 녹아 있어서 좋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는 이문구를 좋아한다. 복합적인 동시에 도전하고 싶은 자극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배우로서 자신있는 것과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게 있을 것 같다. 그런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없나.
=내 얼굴을 딱 보면 나오는 견적은 몇 가지 안 된다. 이장, 산적, 도둑놈? (웃음) 다양한 게 힘들다는 건 안다. 내게 중요한 건 그 인물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거다. 도둑놈은 나쁘다, 끝. 이게 아니잖나. 잘하는 것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내가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 가서 보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 안다. 아, 또 잘하는 것에 안주하나 하고. 안주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 좋아하는 축구 선수를 조원희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테크니션보다 우직하게 경기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걸 읽은 일이 있다. 연기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인가.
=나이가 60, 70이 되어도 캐릭터로 고민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익숙해져서, 관객의 코드를 잘 알아서 여우같이 사는 건 싫다. 내공도 좋지만 나이가 많아지고 경험이 쌓여도 여전히 아마추어 같은 긴장감을 안고 살았으면 좋겠다. 연극을 할 때 가능하면 매번 똑같이 연기하잖나. 관객은 항상 같은 대목에서 웃는다. 정말 신기한 건, ‘이 대목에서 웃겠지’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아무리 전날과 똑같아도 관객이 안 웃는다. 다 아는 거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런 생각을 버리자, 연기에 몰입하자고 다짐한다. 감탄사를 주는 배우보다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감탄사나 감동이나 그 말이 그 말인가? 하여튼 그 미묘한 느낌 차이 있잖나.

-<타짜>에서처럼 도박과 노래를 즐기나. 도박이라고 해서 <타짜> 같은 도박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노래는 원래 좋아했다. <연애…>에서 불렀던 태진아 노래는 애창곡이다. 태진아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사람 노래는 언제나 축제 같아서 좋다. 화투는 치지 않는다. 내가 자제력이 없는 인간이라 의식적으로 피한다.

-최근 개봉한 두 영화에서 악역을 연기했는데 원래 성격이랑 많이 다른 거 아닌가.
=사람들이 나보고 사람 좋아 보인다고들 한다. 그런 말 듣기 싫다. 촬영장 가면 “저 개xx예요”라고 먼저 말하는 일도 있다. 착해 보이고 사람 좋아 보인다는 말은 그런 행동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다. 나는 그저, 내가 연기하는 모든 역이 인간적이었으면 한다. <타짜>의 박무석도 아내가 있고 애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인간적인 면을 내가 연기할 수 있고, 보는 사람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놈이지만 볼수록 불쌍하고, 인간적이고.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왔고 연기를 해왔지만 이제야 사람들이 알아본다. 뒤늦게 주목받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요즘 드는 생각은, 50살쯤 되면 내가 뜰 것 같다는 거다. 그때쯤 되면 배우 김상호, 인간 김상호의 진맛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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