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유지태: 삼풍 백화점 붕괴라는 실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인만큼, 여타의 멜로영화와는 차별화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공존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할까.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가을로>는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김지수: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예쁜 시를 한 편 읽은 느낌이었다. 마치 풍경화같기도 했다. 내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이야기에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묻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노애락이 강렬한 열연, 혼을 불사르는 연기가 아니라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 역인 셈이다. 흔히 나보고 눈물의 여왕이라던가, 멜로 퀸이라던가 하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굳이 멜로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다. 재미있게 읽은 시나리오들이 공교롭게도 멜로영화들이었다.
-<가을로>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유지태: 현우는 연인을 잃기 전까지는 앳된 모습을 간직한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연인이 세상을 떠난 후엔 그 아픔을 10년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고 세상에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으려 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려고 애썼다. 삼풍 백화점 사고의 기록을 읽고, 사고를 직접 겪은 분들의 인터뷰를 찾아서 보기도 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들을 최대한 해나가면서, 시나리오에 담긴 현우의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김지수: 현우의 옛 연인인 민주를 연기하면서, 나는 민주가 현우보다 누이같고 엄마같고 어른스러운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했다. 민주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여자다. 맑고 따뜻한. 영화 속에 출연빈도로 따지면 다른 두 배우보다 더 큰 인물이라고 볼 수 없을지는 몰라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도 민주의 존재감이 분명히 느껴진다. 민주의 흔적을 찾아 떠난 현우의 여행길 내내 함께 있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김대승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유지태: 김대승 감독님은 굉장히 섬세하고, 뚜렷한 자기 감성을 갖고 계신 분이다. 화면 구석에 잡힌 조그만 사람들 하나 하나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다. 사실 스토리가 좋아도 대충 대충 작업하는 감독들도 많지 않나. 근데 관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작은 차이까지 세세하게 볼 줄 알고, 그 깊이의 차이를 포착해낸다. 범작과 명작을 가르는 것이 바로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왔기에, 꼼꼼하게 작업하는 김대승 감독님 스타일이 참 좋았다.
김지수: 예쁜 시 같던 시나리오를 멋진 풍경화처럼 찍어낸 사람이 바로 김대승 감독이다. 김대승 감독이 선택한 로케이션들은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포항 내연산의 가을 풍경이나 담양 소쇄원의 눈 내린 풍경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소쇄원에서 민주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는 부분을 찍을 때 특히 공을 들였다.
-서로가 생각하는 유지태, 김지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유지태: 직접 만나기 전에 <여자, 정혜>를 보면서 김지수씨는 인형 같은 외모에 연약하시고, 연기는 좀 소시민적인 것을 추구하는 분이구나, 혼자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왠걸, 직접 만나보니 완전히 여장부다. 그래서 바로 누나라고 불렀다.(웃음) 지수 누나는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고,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가을로>를 하면서도 내가 조금만 잘못했다 싶으면 바로 ‘너 이런거 좀 해야 하지 않니?’라며 대놓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 당당함과 솔직함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김지수: <가을로> 때문에 지태씨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무게감이 있달까. 실제로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어리다던가 후배라던가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가을로>에 지태씨가 캐스팅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유지태 덕 좀 봐야겠다’고 농을 한 적도 있다.(웃음) 영화를 보는 사람이 영화 내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처럼, 현우의 여행에 민주가 동행한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