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위대한 모성의 힘 그린 <귀향>
2006-10-18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여인들이 돌아왔다, 힘겹게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1949년 9월24일 스페인의 라만차에서 태어났고, 그의 17번째 장편 <귀향>의 무대는 자신의 고향 라만차이다.(우연히 그의 생일에 그 영화를 보았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 곳에는 고향이라 불리는 곳에서 우리가 기대하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고, 돈키호테를 실성케 한 풍차가 현대화된 형상으로 탈바꿈해 그 바람을 분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첫 번째 신의 무대는 뜻밖에 공동묘지다.

마드리드에 살다 고향을 방문한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가 여동생 쏠레, 딸 파울라와 함께 부모가 묻힌 무덤의 비석을 닦고 있다. 모래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온 듯 곳곳에서 무덤과 비석을 청소하는 데 열중하고 있으며, 한 여인은 곧 자기의 육체를 받아줄 자신의 무덤 주변을 배회한다. 라이문다의 부모는 4년 전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 망할 바람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원망하며, 마을에 귀신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TV는 화재 소식으로 요란하다. 딸과 같은 이름의 이모 파울라는 거동이 불편하며 치매의 마지막 단계에 왔다.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라이문다의 친구이자 이모의 간병인 아우구스티나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곳은 풍문과 광기와 죽음의 땅이다. 누구도 거기서 머물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남근이 박탈한 영토를 찾아가는 로드무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후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어머니와 자궁은 귀의의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시원적 고향의 이미지와 겹친다. 돌아가고 싶지만 귀향의 시도는 종종 실패한다. 아니면 고향은 아직 기피해야 할 장소다. 그곳은 불길한 풍문의 땅이다. 그런데 죽은 어머니가 돌아왔다. 라만차 사람들은 한국의 전설에서처럼 죽은 자들이 이승에서 못다 푼 한을 안고 산 자 주변을 배회하다, 한을 풀어주면 하늘나라로 간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라이문다의 어머니는 아무래도 귀신 같지는 않다. 음식도 하고 헬스 기구도 타며, 미용사 보조일도 곧잘 해낸다.

히치콕적인 스릴러로 출발한 <귀향>은 그러나 서스펜스의 굴곡을 달리기 전에 많은 것을 고백해버린다. 알모도바르는 관객과의 게임에 별로 관심이 없다. 라이문다와 그의 어머니가 겪은 끔찍한 개인사는 중반을 지나면서 두 사람의 입으로 공개된다. 그리고 아무도 죄를 저지른 그들을 추적하지 않는다. <귀향>의 서사는 퀴즈를 푸는 게 아니라, 누구도 말하지 않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있다. 그들은 정말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광기와 죽음을 불러온 건 바람이 아니라 라이문다 아버지의 남근이었다. 그것은 딸의 자궁을 침범해 또 다른 딸이자 손녀를 낳았으며, 아우구스티나의 어머니를 빼앗고, 라이문다의 어머니를 유령으로 만들었으며, 라이문다는 고향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연대는 파괴되었고, 고향은 죽음의 그림자가 배회하는 풍문의 땅으로 바뀌었다. 떠나온 곳에서도 또 다른 남근이 라이문다의 딸의 자궁을 침범하려 하고, 그를 죽였을 때 이제 숨을 곳은 사라졌다.

라이문다는 남근의 율법으로부터 딸을 필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라이문다는 비범하게 강인하고 냉혹해지며 이상하게도 더욱 관능적으로 변한다. 죽은 엄마가 살아 돌아왔을 때, 그녀를 한번도 그리워하지 않던 라이문다는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그녀는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귀향>은 복수의 미스터리 극이 아니라, 남근이 박탈한 영토를 찾아가는 여인들의 여정을 그린 영혼의 로드무비다.

죽음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여인들의 연대기

내 생각에 아무래도 <귀향>은 페넬로페 크루즈의 영화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찬미하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올해 33살이 된 이 여인에겐 소피아 로렌의 관능과 안나 마냐니의 강인함과 그리고 그 둘에게는 부족한 우아함이 있다. 호세 루이스 알카이네의 카메라는 페넬로페의 풍만한 가슴과 눈물과 부드러운 걸음걸이를 쉼없이 찬미한다. 특히 그녀의 가슴은 유머러스하게 강조되는데, 돌아온 어머니가 “너, 언제 그렇게 가슴이 컸지?”라고 묻자 라이문다는 “처음부터 그랬어”라고 대답한다.

<귀향>이 직접 언급하는 배우는 안나 마냐니다. 라이문다의 어머니가 침대 밑에 숨어서 보는 영화는 루키노 비스콘티가 1951년에 만든 <아름다운 여인>의 한 장면이다. 대지의 여인이라 불렸던 위대한 여배우 안나 마냐니는 이 영화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빈민 여성으로 나와 어린 딸을 배우로 출세시키려고 갖은 악다구니를 부리다, 마지막 순간에 쇼비즈니스의 잔혹함으로부터 아이를 격리시킨다. 육중하며 거칠고 무례하지만 끝내 숭고한 이 여인에게 비스콘티는 ‘너무나 아름답다’(Bellissima!)는 찬사를 바친다. 그리고 <귀향>의 어머니는 그녀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들도 대부분 페넬로페의 것이다. 상념에 빠진 라이문다를 집적대던 실직자 남편이 섹스를 거절당하자 돌아누운 아내의 뒤에서 섹스를 시도한다. 그 움직임을 받으며 라이문다-페넬로페의 큰 눈에 눈물이 고인다. 14살 먹은 의붓딸의 사타구니를 훔쳐보던 한심한 사내의 욕망 곁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울고 있다. 사내는 사정의 욕구를 멈출 줄 모르고, 여인은 미친 욕망의 바람을 몸으로 버텨내야 한다. 이 장면은 <귀향>의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장면의 하나다.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장면 하나. 그 다음날 남편이 딸을 겁탈하려다 살해당한 직후, 라이문다가 부엌에서 피묻은 칼을 씻는다. 카메라는 그녀를 부감으로 비춘다. 피투성이 칼과 손, 피가 번진 주방 도구가 화면 왼쪽에 전시되고, 화면 오른쪽에는 놀라울 만큼 풍성한 가슴의 부드러운 만곡선이 펼쳐진다. 관능과 공포, 피와 생명, 사멸한 남성의 육체와 생동하는 여성의 육체가 잔혹하고 아름답게 대비된다. <귀향>의 구도는 색감만큼 매혹적이다. 뒤이은 장면에서 엎드린 시체를 앞으로 돌려놓은 라이문다는 바지 밖으로 나온 사자의 성기를 수습한다(이 장면은 라이문다의 상반신만 보인다). 전날 밤과 달리 라이문다의 얼굴은 사내의 성기에 한없이 냉담하다.

정한석이 말한 대로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장면은 페넬로페와 그의 어머니가 밤 인사를 나누는 엔딩신이다. 어머니는 암을 앓는 아우구스티나의 집을 오르며 딸과 작별한다. 이제 어머니는 그 집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딸은 엄마를 눈물을 머금은 채 물끄러미 바라본다. 딸은 “마드리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마침내 귀향했다. 살아 돌아왔던 어머니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이제 죽어가는 여인의 마지막 생을 보살피기 위해 다시 유령이 된다.

멈출 줄 모르는 사정의 욕망, 여인들을 자신의 영토에서 추방하고 풍문의 땅으로 만들었던 남근이 빚어낸 치정극의 종언. 그 끝에는 죽음의 기운을 짊어지고 기꺼이 유령이 되어, 어두운 계단을 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도덕적 희생이 아닌,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는 여인들의 가냘픈 연대. 그렇게 힘겹게 여인들이 돌아왔다. <귀향>은 걸작은 아니라도 이 가을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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