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동지와 싸워야만 했던 젊은이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6-10-1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켄 로치/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2006/124분/오픈시네마

런던의 병원으로 떠나려던 젊은 의사 데미안은 영국군이 죄없는 친구를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일랜드에 남기로 결정한다. 반군이 된 데미안은 형 테디와 친구이자 연인인 시니드 등과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을 얻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영국이 아일랜드 일부 지역에 자치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형제와도 같았던 이들은 분열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일부 자치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테디는 영국 군복을 입고서 데미안과 동지들의 은신처를 수색하고, 영국군이 그랬듯 형제들을 총구 앞에 세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스페인 내전과 인민전선 내부의 분열을 다루었던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았던 젊은이들은 어째서 독재나 외세가 아닌, 동지와 싸워야만 했던 것일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던 그들은 어느 지점부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일까.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켄 로치는 다만 그들이 그런 선택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을 보여준다. 차마 친구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를 처형하는 데미안과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았던 동지들을 처단하며 눈물 흘리는 테디를.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영국 대령 버나드 몽고메리는 “반군이 스스로 붕괴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자치를 허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전술은 유효했고, 그저 태어난 땅을 지키고자 했던 젊은이들은, 거센 바람을 맞은 이삭처럼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통해 그들의 삶과 죽음은 90년의 세월을 넘어 바람처럼 우리에게 불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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