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로 가는 길 The Road To Guantanamo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영국/2006/91분/월드 시네마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지옥으로의 여정이다. 다섯명의 영국인 모슬렘 소년들이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세상에 대해 무지한 다섯명의 소년들은 미군의 폭격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저 어떤 동네인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넘고, 미군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자 탈레반으로 몰려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로 옮겨진다. 윈터바텀이 실존인물들의 증언에 기초해 창조해낸 관타나모 기지의 실태는 무시무시하다. 감금된 사람들은 축생처럼 좁은 우리에 수족이 묶인채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견뎌내야만 한다. 관타나모에서 구타와 거짓은 일상행위이며 인간의 윤리란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고문을 견뎌낸 소년들이 언론과 가족들의 탄원으로 석방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였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MTV세대의 시네마 베리떼다. 마이클 윈터보텀은 전작인 <인 디스 월드>와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와 허구를 절묘한 솜씨로 뒤섞는다. 대부분의 장면은 다큐멘타리가 아니라 전문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낸 픽션이다. 그러나 거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창조된 지옥도는 사이사이 삽입되는 실재 인물들의 인터뷰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격렬하게 허물어뜨리고, 그 효과는 극도로 직접적이다. 그래서 일부 관객은 윈터보텀의 솜씨 좋은 요리법에 탄복하는 동시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을것이다. 과연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파괴적인 프로파간다는 옳은 방식인가? 질문의 해답은 영화의 윤리학보다는 현실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영국 <채널4>에서 방영되어 160만명의 시청자를 동원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영국의 여론을 움직였고, 결국 토니 블레어 정부는 부시 정부에 관타나모 기지의 폐쇄를 촉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부시정부는 국내외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관타나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행위가 고문이 아니라 테러 용의자에 대한 심문일 뿐이라며 기지의 폐쇄를 거부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악의 감옥인 관타나모 기지에는 지금도 500여명의 수감자들이 매일매일 고문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 테러 혐의가 인정된 수감자는 단 10여명 뿐이다. 대부분은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모슬렘들이며 그들의 국적 또한 다양하다. 현실은 여전히 지옥이다. 그리고 지옥이 실재하는 이상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방법론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