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허기진 아들들의 헐떡거림, <열혈남아>
2006-10-15
글 : 이영진

열혈남아 Cruel Winter Blues
감독 이정범 한국 2006 114분 한국영화의 오늘

재문(설경구)은 조직 내에서 '일회용 칫솔' 취급을 받는 존재다. 물불 안 가리고 '건들면 달려드는' 못말리는 기질 탓에 보스의 신임을 잃은지 오래다. 한번 쓰고 버려질 운명이라는 걸 그 또한 모르지 않는다. 반면, 치국(조한선)은 이제 막 건달 세계에 발딛은 젊은이다. 엄마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결국 주먹을 팔기로 했지만, 아직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고 낯설기만 하다. <열혈남아>는 복수를 위해 벌교로 향하는 재문과 치국, 두 남자의 발걸음을 쫓는다. 재문은 보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피붙이처럼 따르던 민재의 복수를 위해 상대 조직 중간보스인 대식을 기어코 해칠 심산이다. 대식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재문의 눈에 든 치국은 멋모르고 따라나선다.

제목과 소재만 놓고 보면 누아르 냄새를 잔뜩 풍기지만 사실 <열혈남아>의 키워드는 '복수'가 아닌 '엄마'다. 칼을 숨기고서 치국과 함께 잠복하는 동안 재문은 국밥집을 운영하는 대식의 엄마 점심(나문희)과 마주한다. 자식 둘을 타지로 떠나 보낸 뒤 외롭게 살아가는 점심에게 재문은 점점 이끌린다. 손 씻고 고향에 정착하려는 대식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재문은 접근하지만, 점심은 재문을 허물없이 자식처럼 대한다.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렴풋한 모정 앞에서 재문은 머뭇거리게 되고, 치국 또한 "형님도 건달 이전에 사람 아니냐?"며 재문을 막아선다. 과연 재문은 대식의 복부에 칼을 꽂을 수 있을까. 재문이 원하는 건 진정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는 <파이란>과 <박하사탕>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재문은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랑과 연민 앞에서 오열하는 <파이란>의 강재를,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안타깝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야 하는 <박하사탕>의 영호를 닮았다. 재문과 치국, 두 건달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 냄새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코믹한 상황이 등장하지만, 예정된 파국의 시간을 감안하면 맘껏 웃어젖히기 쉽지 않다. 대신 <열혈남아>는 언제나 허기진 아들들의 헐떡거림을 숨죽이고 가만 들어보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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