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중대 9th Company
표도르 본다르추크/러시아, 우크라이나, 영국/2005/139분/월드 시네마
1979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베트남 전쟁이 미국에게 남긴 것과 비슷하다 할 정도로 구 소비에트 연방에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발발 10년만에 스스로 철수해야 했다는 점이나 수만명의 군인이 희생당했다는 것, 그리고 민간인과 게릴라가 구분되지 않은 전장 환경이 만들어낸 노이로제 또한 베트남 전쟁과의 닮은 꼴이었다. <제9중대>는 이러한 소련 시대 최대의 악몽 중 하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끝 무렵인 1988년, 젊고 팔팔한 젊은이들이 훈련소에 들어간다. 9중대로 편입된 감수성 예민한 화가 바라비, 양아치 근성이 다분한 리드, 입대 전날 결혼한 주흔 등이 그들이다. 인정머리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데칼 교관의 지휘 아래서 겁없고 철없던 자유분방한 청춘들은 서서히 삭막한 군대의 질서 속에서 구겨지기 시작한다. 3개월의 훈련 기간이 끝날 무렵이 되자 이들은 지옥같은 전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결국 서로를 굳게 의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9중대>는 러시아 블록버스터 영화답게 초대형 액션장면 등 볼거리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쓰지만, 생생한 캐릭터 묘사와 뚜렷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미덕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가 2005년 최고 흥행작이자, 소비에트 연방 붕괴 뒤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영화로 기록된 것 또한 이같은 나름의 완성도와도 관련있을 것. 중요하진 않지만 한가지 흥미로운 점. 베트남 전쟁과의 유사성 때문인지 훈련소에서 이들이 서서히 광기 속으로 빠져드는 과정은 <풀 메탈 자켓>을,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뒤부터의 이야기는 <플래툰>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