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를 베어라 Pruning the Grapevine
민병훈/한국/2006/115분/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벌이 날다> <괜찮아, 울지마>의 민병훈 감독이 연출한 세번째 장편영화. 시험에 처한 젊은 신학생의 갈등을 조용히 응시하며, 험한 고개를 넘는 걸음처럼, 느리고도 힘겨운 내면의 싸움을 담았다. 신학교에 다니는 수현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이미 나아 퇴원한 다음이다. 수현은 학교로 가던 길에 여자친구였던 수아를 잠시 만나고, 흔들리는 마음에 신부가 되기를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학장은 그 청을 들어주는 대신 수도원에 잠시 머물기를 권한다. 수도원으로 피정을 나간 수현은 그곳에서 남몰래 고독과 싸우며 술을 마시곤 하는 문신부와 수아를 꼭 닮은 수녀 헬레나, 외국인 노동자와 사랑에 빠진 수사 스테파노 등을 만난다.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거울의 방에 들어선 것처럼 수많은 상을 비추어내는 영화다. 신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수현 또한 그와 닮아 있을 문신부, 만난 적이 없는데도 수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헬레나, 수현처럼 사랑하는 여인이 있지만 수현과는 다른 길을 택한 스테파노. 민병훈 감독은 이처럼 서로 조금씩 겹치면서도 결코 똑같지는 않은, 그리하여 자칫 흩어지기 쉬운 인물들을, 단아하고 고요한 공기로 감싸안는다. 그러면서도 성급한 손짓으로 그들을 도우려하지는 않는다. 다만 멀리서 바라보지만, 눈길만으로도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그가 시선이 지니는 힘을, 그저 끝까지 지켜보아주는 시선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찍었던 <괜찮아, 울지마>보다 한층 좁은 공간으로 파고드는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그런 점에서 같은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괜찮아, 울지마”라는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