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2006-10-15
글 : 김도훈

후회하지 않아 No Regret
이송희일/한국/2006년/114분/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수민(이영훈)은 주간에는 공장에서, 야간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며 살아가는 고아 출신 노동자 게이다. 삶의 척박함에 지쳐있지만 희망을 갖고 살아가던 수민의 인생이 또다른 악장으로 접어드는 것은 자신이 일하는 공장 이사의 아들인 재민(이한)을 만나면서부터다. 수민과 재민은 서로에게 묘한 호감을 갖게 되지만 계급은 두사람을 갈라놓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회사의 처사에 반기를 들고 뛰쳐나간 수민은 먹고 살기위해 서울의 게이 호스트바에 취직하고, 재민은 수민을 찾아 호스트바를 헤매고 다닌다. 둘은 결국 만나서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않다. 재민의 성정체성을 알고있는 부모는 결혼을 종용하며 두사람의 사랑을 위기로 몰아가고, 결국 재민은 수민을 잠시 떠나고 만다. 분노와 상처로 가득한 수민의 애증은 두사람의 관계를 서늘한 겨울날의 비극으로 몰아간다.

<후회하지 않아>는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은 영화다. <슈가힐>과 <굿로맨스>, <동백아가씨>로 한국 독립영화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송희일 감독은 70년대 호스테스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계급에 대한 우화로서 <후회하지 않아>를 만들어냈다. 형식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70,80년대를 풍미한 호스테스 영화의 클리셰를 과감하게 따른다는 점이다. 공장을 나와 수민이 할 수 있는 일은 호스트바에서 웃음과 몸을 파는 방법밖에 없으며, 그의 고난을 묘사하기 위해 사실적으로 연출된 게이 호스트바의 에피소드들은 동성애자 진영과 이성애자 진영을 동시에 숨막히게 만든다. 이송희일 감독은 양쪽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 달콤한 로맨스로서의 퀴어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빛이 가득한 옥탑방에서의 사랑은 일견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를 연상케하지만, <후회하지 않아>는 통속극의 외양을 쓰고서 성정체성과 계급구조를 파헤치는 신랄한 교훈극에 가깝다.

그간 <후회하지 않아>는 시릴 꼴라르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야만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에서 차용한 <후회하지 않아>라는 제목은 조금 더 희망적인 내음을 풍긴다. "아니예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예요! 난 무엇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상관없어요!". 에디프 피아프의 결연한 목소리처럼, <후회하지 않아>는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이며, 또한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퀴어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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