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헛된 죄의식이 어른거리는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2006-10-1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My Friend & His Wife
신동일/한국/2006/110분/한국영화의 오늘-비전

2005년 <방문자>로 데뷔한 신동일 감독의 두번째 장편. 공항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재문은 미용사인 아내 지숙과 함께 미국 이민을 준비하지만, 이주 자금을 사기당해 좌절하고 만다. 재문의 군대 고참이자 절친한 친구인 예준은 한때 민중혁명을 꿈꾸었던 운동권이었고 재문의 아기에게도 민혁(민중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라고 조른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잘나가는 외환딜러다. 갓난아기를 돌보다가 지친 지숙이 미용박람회를 보러 파리에 가있는 동안 재문과 예준은 재문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다. 재문이 불법주차한 예준의 차를 치우러 나간 사이 예준은 실수로 민혁이를 질식사시키고, 재문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 죄를 뒤집어쓴채 교도소에 간다. 지숙에게 마음이 있는 듯했던 예준은 홀로 남은 그녀를 돌보아야하는 입장이 된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폐쇄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헛된 죄의식이 어른거리는 영화다. 아직도 마르크스의 책을 버리지 않은 예준은 자본주의를 가장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고,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 순간에도,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의 죄책감은 다른 이를 향한 분노로만 터져나온다. 재문 또한 민혁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아이를 낳은 지숙에게조차 입을 열지 않는다. 말해주지 않으면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는데, 두 남자는 그저 진실을 파묻고, 썩어가는 악취가 토양을 오염시키도록 내버려둔다. 어쩌면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가장 가엾은 인물은 두 남자의 사랑을 받으나 언제나 내처지기만 했던 지숙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었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지숙은 표정과 감정이 사라진 여인이 되어버린다.

재미있게도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칸영화제에 초청됐던 신동일 감독의 단편 <신성가족>과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복수를 꿈꾸는 여자는 거울을 통해 자신과 남자를 응시하며 그의 머리를 깎아준다. 그 순간을 뒤덮는 차갑고 불길한 기운은 미스터리나 스릴러와는 다른 두려움, 아주 작은 사건으로도 삶이 추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전해준다. 간절하게 바라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삶은 제멋대로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그처럼 무너져버린 삶과 인물을 통제하는 신동일 감독의 연출력은 인상적이다. 신동일 감독은 재문과 예준과 지숙이 평온하게 살아가던 시절에도 문득 진공처럼 허무해 보이는 순간을 부여하고, 민혁의 죽음 이후, 그 느낌을 영화 전체로 퍼뜨린다. 그런데도 처음과 끝이 어긋나거나 서먹해보이 않고 온전한 한편의 영화로만 다가온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살아가는 일이 언제나 그렇듯 보는 내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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