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누추하지만 소중한 삶의 감각, <하나>
2006-10-16
글 : 최하나

하나 Hana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2006/127분/아시아 영화의 창

1702년 도쿠가와 막부 5대 쇼군 츠나요시 치하의 태평시대. 아오키 소자에몬(오카다 준이치)은 아버지의 원수 가나자와 주베이(아사노 다다노부)를 좇아 한 시골마을로 흘러든다. 집안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며 세월을 보내던 그는 과부 오사에(미야자와 리에)와 사랑에 빠지고, 어느새 복수보다는 평화로이 정착할 것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어느날 가나자와의 소재가 밝혀지고, 소자에몬은 집안으로부터 복수를 서두를 것을 종용받는다.

<하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최초의 시대극이자 사무라이극이다.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 등 전작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적인 필치로 그려냈던 그는 기존의 모든 클리셰를 지워낸 새로운 사무라이극을 창조했다. 현란한 검술을 자랑하는 영웅이 아닌 칼 한번 제대로 빼본 적 없는 유약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복수의 실체는 바둑을 둘러싼 사소한 논쟁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진다. 습관처럼 할복을 시도하는 로닌과 복수를 주제로 한 우스꽝스런 연극 등 <하나>는 웃음을 통해 사무라이라는 이름에 씌여있던 비장함과 장렬함의 허세를 벗긴다.

“벗꽃은 떨어질 때 아름답다”며 장엄한 최후를 강조하는 로닌을 향해 “벗꽃은 다음 해에 다시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말로 대응하듯, 거창한 영웅담이 사라진 자리에 <하나>는 누추하지만 소중한 삶의 감각을 채워 넣는다. 이는 ‘대의’를 위한 죽음을 미화하는 일본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반기인 동시에 보다 보편적인 평화의 메시지다. “똥이 떡으로 변하듯” 복수심을 사랑으로 치환시켜가는 소자에몬의 궤적을 좇으며 영화는 섬세하면서도 유쾌한 몸짓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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