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붕괴되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 아닐까요?”
“와?”
“(북한이)힘들잖아요.”
“와 힘듭니까? 그 사람들이 낮잠잤기 때문에 굶어죽습니까?”
다큐멘터리 <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 초반에는 최현정 감독과 주인공인 이희세씨가 논쟁하는 부분이 나온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는 이희세씨의 질문에 최현정 감독의 답이 궁하다. 지금 생각하면 즉흥적이었던 질문들이 부끄럽지만, 최현정 감독은 그 장면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이나 주변의 또래들이 남북문제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또다른 제목은‘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와 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최현정 감독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둘로 분단된 한국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 말이다.
최현정 감독은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실기 석사과정을 마쳤다. 중앙대 영화학과 재학 시절, 데모에 열심인 편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드 콤플렉스’를 다룬 다큐를 찍기로 결심했다. 파리에서 대상을 물색하다가 이희세씨를 소개받았다. 이희세 씨가 사는 몽티냑은 파리에서 500km떨어진 곳. “저러다 관두겠지”했던 이희세씨의 생각도, 남한에 결코 가지 않겠다는 이희세씨의 모습을 원하던 방향으로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최현정 감독의 생각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되어야 했다.
이희세씨는 홍대 동양화과 1회 졸업생이다. 10여년간 중고등학교 미술교사와 대학 강사를 하다가 64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숙부인 이응노 화백과 함께 파리 생활을 하며 개인전도 열었지만,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응노 화백이 북한에 다녀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이희세씨는 그의 조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고국 사람들에게서 외면받았다. 그렇게 그는 통일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희세씨의 삶은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그의 첫번째 사랑은 그림이었지만, 그에게 두 번째 사랑이 찾아왔다. 조국의 통일운동이었다. <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는 그런 이희세씨의 삶을 다루는 동시에 해외 통일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어떻게 왜곡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결말로, 다큐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갔다. “선생님이 원하시는 주제와 내가 생각하는 주제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놓고 싶지는 않은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걸 안할 수는 없어서 절충했다가, 내가 원하는 걸로 갔다가, 선생님이 원하시는 걸로 갔다가 하며 고민하다가 마지막 두 달 동안 싹 고친게 이 영화다. 최종 편집이 끝난 게 9월 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로 돌아온 거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내가 이 사람을 통해서 느끼고 그랬던 것을 하고 싶었던 거니까.”
최현정 감독은 2004년 10월부터 2006년 8월까지 한달에 한 번 정도, 보통 3~4일의 일정으로 이희세씨의 몽티냑 집을 찾았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때면 오랫동안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많이 싸우시던데”라고 묻자 이희세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싸움이 아니라 토론이다. 영화에서 최감독이 말한 것처럼 나는 하나의 나라가 있을 때 난 사람이고 여러분은 두개의 나라가 있을 때 난 사람이니 말이 쉽게 통할 수는 없었겠지. 내가 그간 만나온 사람들은 같은 통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야기하기가 수월했던 건데 이건 뭐 갑자기…(웃음) 그래서 내가 답답했지. 최감독도 마찬가지겠지.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영감을 하나 만났잖아.” 또한 <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에는 이희세씨가 41년만에 남한을 방문했을 때 한국 언론의 태도가 여과없이 보여진다. 본래 방한목적인 통일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이희세씨가 눈물과 회한으로 가득한 모습을 담으려는 방송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왜 우리가 행복한 해외 통일운동가들을 언론에서 만날 수 없는가에 대한 답을 던져준다.
“처음 몇번의 격돌 이후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토론을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알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매력을 알게 된 거다. 선생님도 나를 놓을 수가 없었을 거다. 왜냐하면 나를 가르쳐야 하거든. 가르칠 게 많거든.(웃음)” 최현정 감독의 질문은 63분에 불과한 다큐멘터리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기 시작한다. 감독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둘 중 한 사람이 상대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몽티냑의 집에서 조각을 하며 지내는 이희세 씨가 나무를 조각하면서 던지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미 되어 있는 걸 내걸 만들려니까 싸움이지. 이 나무가 가진 본연의 성질이 있는데 그걸 까뭉개서 내걸 만들려니 말없는 저항이 있는 것이지.” 이희세씨의 이야기를 마음껏 조리해서 원하던 이야기로 만들려던 최현정 감독의 생각은 이희세씨를 만나 치열한 고민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태어나면서부터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국가를 알아온 우리와 하나의 고국을 알아온 이희세씨는 어떻게 통일을 함께 이야기할 것인가. 6.25때 피난온 대학 캠퍼스에 통학하기 위해 부산을 찾은 이래 처음으로 부산땅을 밟은 이희세씨는, 영화 속에서 고전하던 나무 조각을 여전히 완성하지 못한 채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Debating, Learning, Searching for a Documentary's Path
"You have to admit the North is collapsing."
"Why?
"They’re struggling so bad."
"And why? Why?"
In <Korean Don Quixote, Lee Hise>, an argument arises between director Choi Hyun Jung and Lee Hise. Lee asks, "Why?" and Choi is mute. Choi watches this with shame, but she knew it must be included in the film. Her muteness reflected not only herself, but her activist classmates who had demonstrated without any deep thought. Another title for the movie could be, 'Korean Don Quixote, Lee Hise and I', with this 'I' referring not only to Choi, but to all activists who naturally accepted Korea as a divided nation.
Choi received a Master's at the University of Paris. While a student at Chung-Ang University, she often demonstrated, but only later realized that she never really knew why. It was then that she decided to make a documentary about the 'Red Complex'. Searching for a subject, she found Lee Hise. Lee, a graduate of Hongik University, worked for 10 years teaching art in Korea before setting out to study in Paris in 1964. He had solo exhibitions, but when the 'East Berlin Spy Incident' implicated his uncle, painter Lee Ung-no, Lee’s own reputation was ruined. He then dove into the unification movement. This film asks how we should assess Lee, and speaks to how Koreans have distorted his perspective. It also depicts the director’s path, showing original thoughts that remain intact, even as others change.
For two years, Choi traveled once a month to Lee's house in Montignac. Sometimes traveling with friends, these trips would end in long debates. As the film progresses, we see a transformation. Choi’s perspective changes, not because she agrees completely with Lee, but because they both learned together. As he's seen in the movie carving wood, Lee cuts to the heart of the matter: "It's a battle about this thing that already exists and what I want to create. This wood has its own character. I carve it to create what I want, but its nature silently resists." Lee's words stewed in her brain. She agonized as the story she wanted to tell changed. For those of us born after the division, how can we communicate with those who knew Korea as one country?
Lee appears as a man who struggles fiercely with his wood, but can't get his carvings just right. One thing is for sure. He never qu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