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소녀들의 몸짓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쾌감 <훌라걸즈>
2006-10-18
글 : 최하나

훌라걸스 Hula Girls
감독 이상일 | 일본 | 2006 | 110분 | 오픈 시네마

1965년 일본, 석탄의 사용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광산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탄광일로 주민 대다수가 생업을 유지하는 일본 북부의 한 작은 마을에도 위기가 닥쳐온다. 탄광 폐쇄로 인해 당장 2천명의 주민이 해고 통지를 받게된 것. 분개한 주민들에게 광산 회사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하와이 센터를 설립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맹렬히 반대하지만, 소도시의 답답한 삶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어왔던 몇몇 소녀들은 하와이안 센터를 지지하고 나선다.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센터의 홍보에 필수적인 훌라춤을 배우는 것. 도쿄로부터 무용 교사가 초빙되고, 소녀들은 훌라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훌라걸스>는 <69> <스크랩 헤븐> 등 청춘의 표상을 경쾌한 필치로 그려온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다. <69>의 소년들이 학교를 바리케이트 봉쇄하는 것으로 젊음의 질주를 선언했다면, <훌라걸스>의 소녀들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와 맞서는 방법으로 훌라춤을 선택한다. 어디에도 재능이라곤 없어보이는 소녀들이 무언가를 배워가고 성공한다는 영화의 플롯은 일견 <스윙걸즈>를 연상시키도 하지만, <훌라걸스>의 차별점은 소녀들이 재능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탄광 폐쇄를 둘러싸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영화는 자칫 지나친 경쾌함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에 현실의 무게를 부여한다. 하와이안 센터를 둘러싼 소녀들과 어른들의 논리가 대등하게 맞서면서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획득한다.

물론 ‘역경의 극복과 행복한 결말’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는 <훌라걸스>의 이야기 전개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도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손톱에 더 이상 흙먼지가 끼는 것이 싫어” 훌라춤에 모든 것을 거는 사나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춤의 순수한 매력에 빠져드는 기미코(아오이 유우), 냉소적인 도시 여자이지만 조금씩 소녀들에게 동화되어가는 무용 교사 마도카(마쓰유키 야스코) 등 섬세한 캐릭터 묘사는 영화의 드라마에 탄탄한 실재감을 불어넣는다.

<훌라걸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훌라춤을 추는 소녀들의 몸짓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쾌감이다. 다리 하나 제대로 놀리지 못하던 그들이 마침내 능숙한 춤동작을 펼쳐보이는 순간, 관객들은 환호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이제는 웃으면서 일하는 시대”라는 영화의 소박한 메세지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훌라걸스>는 달콤한 판타지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지만, 이는 훌라춤 특유의 낙천적인 매력처럼 거부하기 힘든 달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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