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귀신과의 따뜻한 여름 밤, <귀신 이야기> 촬영현장
2006-10-24
사진 : 이혜정
글 : 박혜명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의 산 중턱에는 개성있게 생긴 집 한채가 서 있다. 고딕풍 그림체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도 하고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 본 듯도 하고, 그저 평범한 나무집 같기도 하다. 주위 산들 턱에 설치된 조명들이 아늑한 달빛을 뿌린다. 데뷔작을 찍는 임진평 감독은 집안 화롯가에 모여 앉은 이영아(설아), 김시후(수웅), 김태현(우철), 이은우(미루) 등 네명의 주연배우들과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어린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꽤 섬세하게 흔들린다. 현장 모니터에 잡히는 화면 또한 따뜻하고 서정적이다. 영화 <귀신이야기>는 무시무시한 호러물이 아니다. 곰보해병 귀신, 양복귀신, 꼬마귀신, 고교생 물귀신 등 별별 종류의 귀신들이 사연을 풀어놓는다. 제목 그대로 ‘귀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영화다.

설아 일행은 대학교 사진동아리 멤버들. 또 다른 맴버 구태(박효준)가 시달리는 귀신 악몽의 원인을 찾아 ‘독각리’라는 외딴 마을에 왔다.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먼저 고백할 만큼 당찬 설아는 독각리의 흉가에서 소녀 귀신과 조우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네에 앉은 이영아가 바람처럼 흔들렸다가 일어나 귀신에게 다가가는 타이밍이 조금 급하다 여겼는지 감독이 여유를 요구한다. 달 밝은 밤. 초가을까지 살아남은 여름 벌레들이 우는 고요한 산속. 감성적인 여고생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기분이기도 하다.

지난 7월31일 촬영에 들어간 <귀신이야기>는 9월30일, 꼭 두달 만에 촬영을 종료했다. 어린 배우들을 조카처럼 대하면서도 현장을 타이트하게 운영할 줄 아는 감독의 솜씨는 데뷔작을 찍는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노련하다. 농담과 장난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맏형 김태현, 밝고 씩씩한 이영아, 수줍게 분위기에 흡수될 줄 아는 이은우, 막내지만 가장 의젓한 김시후 등 배우들간의 관계도 서로에게 꼭 맞물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서구화된 우리나라 호러물의 미술 경향을 벗어나 직선과 곡선,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이분법적인 요소를 섞으려” 했다는 오흥석 미술감독의 독각리 흉가 세트가 한층 정감있게 느껴진다. 촬영이 없는 날엔 스탭들이 자진해서 체육대회를 벌일 만큼 분위기 좋은 현장 뒷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던 영화 <귀신이야기>는 2007년 1월, 찬바람에 손발이 꽁꽁 언 관객과 따뜻한 만남을 갖는다.


“귀신에 대한 호기심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귀신 이야기>의 임진평 감독

-어떤 영화인지.
=딱 장르영화는 아니다. 시즌개봉용 공포물은 더더욱 아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물어보면 <러브 액츄얼리>의 호러판이라고도 이야기했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가 혼재돼 있어서 그렇게 설명하면 편했다.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촬영이 막바지에 왔다. 데뷔작 연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고 장르적으로도 혼재돼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 서로 다른 이야기가 또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모인다. 감정선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하룻밤의 이야기인데 시공간의 차이도 서로 크다. 무리없이 맞추는 게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구상하게 됐나.
=영화를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미지와의 조우>를 보면서 외계인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해서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귀신에 대해 가진 내 호기심을 내 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핸드헬드 촬영이 많아 보인다.
=미세한 걸 잡아내고 즉흥적으로 상황을 수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거의 콘티대로 찍고 있는데 촬영감독이 필 받으면 슥 들어가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에도 좋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김태성 촬영감독은 핸드헬드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인 거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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