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영화에 날개를 다는 장인, <중천>의 의상감독 와다 에미
2006-10-26
글 : 박혜명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1999), 피터 그리너웨이의 <8과 1/2우먼>(1999)과 <필로우북>(1996), 장이모의 <영웅>(2002)과 <연인>(2004), 프랑코 제피렐리의 오페라 <나비부인>(2004)까지. 일본의 의상디자이너 와다 에미(69)의 손을 거쳤던 옷들은 그저 영화의상 또는 무대의상이라 불리기엔 그 자체로 지나친 매혹의 향기를 낸다. 특히 기모노를 중심으로, 동양 의상의 색감·곡선·무늬를 모던함과 화려함의 절정까지 끌어올렸던 그의 작업들은 1985년 아카데미 의상상(<란>) 수상으로 서구인들의 인정을 얻기에 이르렀다. 정우성, 김태희 주연의 판타지극 <중천>의 조동오 감독은 중국의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와다 에미에게 단지 의상에 대한 조언을 구하다가 결국 그를 정식 스탭으로 ‘초청’하게 됐다.

와다 에미는 의상 또는 미술에 관한 정식교육을 받지 않고 이 일을 시작했다. “특별히 배울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2차대전 직후엔 모두가 가난해서 있는 옷을 수리하거나 만들어 입어야 했다. 나도 열살 때부터 그 일을 했다. 옷을 만든다는 건 내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미 내가 경험해본 것이었다.” 스무살 때 저예산 공연의 의상 및 무대디자인 스탭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때의 작업을 인정받아 와다 에미는 영화와 오페라, 연극 무대를 가리지 않고 오가며 수많은 현실 모방의 세계에서 의상을 창조해왔다. 아카데미 의상상의 영예와 더불어 그는 뮤지컬 <라이언 킹>(1997) 연출로 브로드웨이에서 극찬을 받았던 줄리 테이머 감독(<프리다>(2002))의 TV오페라 <오이디푸스 렉스>(1992)로 에미상 의상상도 수상했다. <영웅>과 <송가황조>(1997)는 그에게 홍콩금상장영화제 의상상 트로피를 안겼다.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해본 부분이 없다 판단되면 작업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와다 에미는 대본을 읽는 순간 이미지를 만들고 디자인을 끝낸다고 덧붙였다. 이 무슨 천재의 얄미운 자랑인가, 하겠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의상들이 구현 가능한 것인가의 타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원단을 짜고, 염색을 하고, 재봉을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림을 와다 에미는 강조했다. 마음에서 태어난 예술적 상상을 완성하는 것이 열 손가락 달린 인간의 손임을 그에게서 새삼 실감한다. “내가 의상디자이너로서 기여하는 게 있다면 손으로 엮고 짜고 염색해야 하는 노동, 기계로는 할 수 없는 사람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린 체구의 노인은 나지막하고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상 작업은 만드는 사람들의 장인정신이 표출된다는 게 매력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한 와다 에미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감독에게 직접 찾아가서 당신이 다른 영화를 하게 되면 내가 꼭 참여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리어왕>의 각색작인 <란>은 그렇게 해서 참여하게 된 작품이다. <템페스트>를 원작으로 한 피터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를 기쁘게 작업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리스 신화도 그런 이유에서 좋아하지만 고전에는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드라마적으로도 굉장히 흥미롭고 늘 강렬하다.”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영화나 의상디자이너를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렇지 않게 “장 콕토”였다. <오르페우스> <미녀와 야수> <쌍두의 독수리> 등 예술사 관련 세미나가 아니면 듣기 어려운 작품 목록이 쏟아진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용히 돌아가는 검은 옷자락 안에서 농축된 예술적 자의식이 우아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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