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고급 전자제품을 실은 트럭들이 한 무리의 차량 폭주족들에 의해 약탈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이에 따라 경찰은 범인을 색출해내기 위해 형사 브라이언(폴 워커)을 폭주족 무리에 위장잡입시킨다. 브라이언은 용의자인 폭주족 우두머리 도미니크(빈 디젤)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그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 Review
<분노의 질주>에서 플롯은 순전히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사실상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범죄의 단서를 알아내기 위해 위장잠입한 형사와 범죄자 사이에 형성되는 모종의 유대감이라는 진부한 장치가 <분노의 질주>에선 전혀 흠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그처럼 진부한 갱영화의 줄거리를 차용함으로써 관객의 관심이 일련의 카체이싱과 경주에만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었을 테니 말이다.
카메라는 질주하는 차량들의 이곳저곳을 거의 ‘핥듯이’ 지나간다. 때로는 벌겋게 달아오른 채 바삐 돌아가고 있는 ‘그녀들’의 내장까지도 가로지르면서 말이다. 여기서 산화제(oxidizer)는 그녀들을 위해 준비된 아드레날린이다. 이처럼 <분노의 질주>에서 자동차는 인물들의 애정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들 신체의 확장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자동차에 쏟는 그들의 관심은 병적인 자기애가 된다. 극히 미국적인 매혹의 양식이라 할 이러한 정서에 우리가 깊이 공감하기는 어렵겠으나 어찌 되었건 스크린에서 쏟아져나오는 과장과 과잉의 에너지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질주>는 <식스티 세컨즈> 같은 영화가 보여주었던 바, 자동차에 대해 느끼는 강박적인 애정과 질주하는 속도의 짜릿한 쾌감이 어지러이 뒤섞인 영화다.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식스티 세컨즈>가 애정의 전시에 집중- 이 영화에 등장한 여러 자동차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황홀해질 지경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했던 반면 <분노의 질주>는 상당부분 속도가 주는 쾌감의 전시에 몰두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드래곤 하트> <데이 라잇> <스컬스> 등을 연출한 롭 코언이 다시 메가폰을 잡아 미국에선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던 이 영화에서 <삼나무에 내리는 눈>에 출연한 바 있는 재미교포 2세 릭 윤이 동양계 갱단 두목 조니를 맡아 연기하고 있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잔인하기만 하고 매력이라곤 하나 없는 황인종 깡패에 지나지 않으니 별 기대할 것은 없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