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가을로> 김대승 감독, ‘사회적 슬픔’ 그저 함께하고 싶었다
2006-10-3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엿보여

앞선 두 편 〈번지 점프를 하다〉, 〈혈의 누〉에서 새로운 대중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주목받아온 김대승 감독이 〈가을로〉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미스터리와 멜로를 적절히 섞으면서 장르적 상상력을 넓히려 했던 두 편에 견주면, 〈가을로〉는 좀더 본격적으로 동시대의 사회적 맥락 안에 뿌리를 두는 것이 특징이다. 1995년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소재로 해서 사회적 사건과 개인의 불행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초보 검사 현우(유지태)와 방송사 프로듀서 민주(김지수)는 곧 결혼할 사이다. 어느 날 신혼 살림살이를 사러 가자고 찾아온 민주에게 현우는 백화점에 가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다. 뒤늦게 찾아간 현우의 눈앞에서 백화점이 무너지고, 민주를 잃은 채 현우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죄책감 속에 보낸다. 건물 분양 관련 비리를 파헤치다 본의 아니게 휴직하게 된 현우는 민주의 아버지가 건네준 민주의 옛 수첩을 받게 되고, 거기에 적힌 신혼여행 계획의 경로를 따라 길을 나선다. 그 여행길에서 자꾸만 낯선 여인 세진(엄지원)을 마주치게 되는데, 현우는 세진에게 왜 두 사람이 같은 동선을 가게 되는지 이유를 듣게 된다.

김 감독이 〈가을로〉의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연출을 맡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사회적 책무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개인적인 여행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때문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멜로영화에 그쳤다면 시작도 안했을 거다. 사회적 목표점이 있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좋았던 거다. 또 하나는 개인적인 건데, 〈창〉 조감독 하고 나서 그 길이 너무 좋아 혼자 태백에서 영덕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 속에 등장한 풍경들을 본 거다. 그 기억이 시나리오 읽으면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회적 상처를 다루는 데 ‘딜레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어떻게 그릴 것이냐는 문제였다. “상처를 더듬는다는 자가 그걸 파헤쳐서 볼거리를 보여주면 안 된다”는 점과 “전 국민이 다 아는 사건을 얼렁뚱땅 보여주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점을 어떻게 다 끌어안고 해결할 것인가 같은 것들이 고민거리였다.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을 만큼의 현실성을 챙기되, 그걸 볼거리로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말자”는 것. 그게 이번 영화의 연출 목표치였다. ‘인간에 대한 영화의 예법’을 강조하는 임권택 감독 밑에서8년 동안 문하생으로 지낸 사람답게 김 감독은 영화가 가져야 할 염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가을로〉가 누군가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주는 영화인 척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영화 한 편 만들어놓고 위로받으라고 하면 안 되는 거다. 그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을 텐데. 게다가 이건 상업영화다. 단지 ‘힘드시죠’라고 말하는 심정으로 만든 거다. 묻었던 걸 파헤치는 건 죄송스럽지만 아픈 건 아프다고 말하면서 살자는 거다. 무작정 행복하자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한다. “서사적인 클라이맥스가 앞에 나오되, 감정적인 정점은 뒤쪽에 두는 방식을 택했다. 펑 터지고 끝나는 게 없어서 관객은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그거라고 생각했다.”

〈가을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김 감독 특유의 주제 의식이 엿보인다. 그 점이 좀 더 유기적으로 융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제작 과정상의 고민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사회적 슬픔을 껴안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10월2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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