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을로> 감독 김대승
2006-11-0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아픈 건 아프다고 말하면서 살자

“<번지점프를 하다> 만든 뒤에 마케팅팀에서 이걸 동성애영화가 아니라고 해달라고 해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고 난 뒤 후회가 많았다. 그 뒤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터뷰는 영화 만든 다음에 내가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과정인 것 같다.” 김대승 감독은 열의 넘치는 목소리로 운을 뗐다. 연이어 달려온 언론과의 릴레이 인터뷰 후반부라 지칠 만도 한데, 일반 관객을 상대로 한 공식 첫 상영이었던 부산영화제에서의 반응을 묻는 말에 “영화제작자들이 안부전화해주는 횟수로 대강 반응을 알 수 있는데 적지 않았던 걸 보면 그다지 나쁜 것 같지는 않다(웃음)”며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김대승 감독은 “이제 세편밖에 안 만든 감독인데…”라며 종종 겸손의 예를 갖추다가도, 영화의 어떤 부분에 행여 미심쩍어하는 티라도 내면 열정적으로 다시 설명을 쏟아냈다. <가을로>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정직한 최선의 목소리를 담았다.

-<가을로>는 충무로의 꽤 오래된 프로젝트였다. 다른 감독들도 물망에 올랐었고. 맡게 된 과정은.
=만약 <번지점프를 하다>에 동성애 코드가 없었다면 나는 안 했을 거다. <혈의 누>도 투자자나 제작자는 영웅담이라고 생각하고 기획했을지 몰라도, 정작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안 했을 거다. <가을로>도 마찬가지다.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멜로영화라고 생각했다면 안 했을 거다. 영화란 할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처음 읽은 시나리오에 그런 목표점이 있어서 좋았다. 또 하나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데, 임권택 감독님 <창> 때 7번 국도, 삼척쪽에서 많이 찍었다. 조감독을 할 땐데, 그게 너무 좋아서 영화 끝나고 나서 혼자 태백에서 영덕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그러면서 지금 영화 속에 있는 장면들을 다 본 거다. 그 기억이 처음 시나리오 읽으면서 선명하게 떠오르더라. 처음에 읽었을 때는 나도 다른 걸 쓰고 있던 중이라 거절했었다. 그러다가 그때 내가 쓰던 시나리오가 엎어졌고, 이어 <혈의 누>를 하게 됐는데, 도장 찍고 나서 이틀쯤 지나서 지금 제작사에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엊그제 <혈의 누> 하기로 했다고 말했더니, 기다리겠다고 하더라. 기다린다는데… 워낙 재미있게 본 시나리오라 <혈의 누> 끝난 다음 시작하게 된 거다.

-개인적인 경험이 준 영향도 크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준 매력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개인적인 사유와 감정으로 흘러가는 게 멜로 아닌가. 그런데 그걸 더 넓혀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풍 이야기가 있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약간 더 넓히고 변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같은 모티브를 갖고 끊임없이 변주해나가는 변주곡이랄까. 가령, 두 사람이 자연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라고만 말하기가 어려운 까칠한 부분이 있다. (사회적으로) 도전을 자극하는 부분이랄까.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동성애 코드, <혈의 누>에서는 염치에 대한 부분, 그리고 <가을로>는 사회적 사건에 대한 부분이 내 관심이 된 거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번 부딪혀보고 싶은 느낌이 있더라. 그래서 확 끌렸던 것 같다. 내가 86학번인데, 어쩔 수 없이 87년 6월을 거쳐온 세대라 그런지 내가 소통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관심, 어쨌든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다.

-삼풍사건 당시의 희생자 가족이나,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게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 한편 만들어놓고 “이 영화 보고 위로받으세요” 하면 안 되는 거다. 사람 염치가 그러면 되나. 그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겠는가. 이건 게다가 상업영화인데. 말하자면, 이런 심정으로 달려온 것 같다. “힘드시죠”라고 말하는 심정으로. 묻었던 걸 파헤쳐서 죄송하지만, “힘드시죠”라고 말하는 정도인 거다. 하지만 아픈 걸 자꾸 덮고 가서는 역시 안 되지 않나. 아픈 건 아프다고 말하면서 살자는 거다. 무작정 행복하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어쨌든 딱지가 앉을 만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아픈 데가 있는데 어떻게 그걸 덮고 자꾸 행복한 척할 수 있겠나.

-말한 대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발생한 사건이라 부담감이 더 컸을 텐데, 그렇다면 그 부담감을 ‘영화적’으로는 어떻게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나.
=멜로의 플롯은 대부분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어느 순간 펑 터뜨리는 거다. 그러면 관객은 아, 재미있는 영화 봤다 하고 나올 거다. 하지만 <가을로>에서 가장 큰 사건은 삼풍사고다. 여자도 거기서 죽는다. 클라이맥스가 앞에 나오는 거다. 그러면 뒤의 시간은 뭐가 남겠나. 아파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상처를 뒤따라가보고 싶었던 거다. 사고 자체는 앞에서 크게 일어났지만, 그 여자를 등떠밀었던 남자는 얼마나 죄책감 속에 살았겠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죽었고, 그 여자의 마음을 누군가가 전해줄 때 남자주인공 현우가 울지 않나. 나는 현우가 우는 바로 그때가 감정적으로는 가장 정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그 정점을 겪고 나서야 희망도 좀 보이는 거고…. 펑 터지고 끝나는 게 없어서 관객은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그거라고 생각했다.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 어떻게 연출될지 궁금한 몇 장면이 있었다. 가령, 이건 사랑하는 연인을 잃는 개인적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선 그 사람과 헤어지는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순간을 영화가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다. 보고 나서의 인상은 의도적으로 평범하게 처리했다는 느낌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 그 장면을 뽀사시하게 만들거나, 슬로로 보여줄 순 없었다. 그건 느닷없는 사건이다. 이미 감정적으로도 주인공 현우는 민주를 등떠밀었다. 그러고나서도, “조금 있다 봐” 하고 말한 뒤다. 그걸 감정적으로 더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그래야만, 등떠밀어 보낸 사람의 회한이 더 커질 것 아닌가. 일상처럼 툭 보내버린 일이 그 남자로서는 훨씬 더 슬픈 일이다.

-한편으론 직접적으로 건물이 붕괴하는 걸 보여주는 재현방식을 선택했다. 일단 그 ‘붕괴됨’의 장면을 목격하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고, 그걸 보여줌으로써 이게 사회적 사건임을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분의 처리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딜레마가 그거였다. 이게 바로 삼풍백화점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었다. 멜로의 공식이란 게 남자와 여자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든지, 누가 죽는다든지 하면서 난관을 거치며 사랑하는 건데, 여기서는 그 난관이 되는 사건이 삼풍백화점 사건이다. 근데 단순히 개인업자가 돈을 남길 요량으로 부실하게 건물을 지어서 무너진 것뿐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니, 나라고 왜 그러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나.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사람이 돌에 깔리고, 뒹굴고 박 터지고, 불나고 하는 장면을 찍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찍으면 이 사고 때문에 고통받고,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상처를 더듬는다는 자가 그걸 파헤쳐서 볼거리라고 보세요, 라고 하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이건 전 국민이 다 아는 사건이다. 그런데, 어떻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겠나. 그래서 스탭들 모두 모아놓고 회의를 할 때 내가 그렇게 말했다. 두 가지다. 남들이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을 만큼의 리얼리티를 챙기자, 하지만 이걸 볼거리로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자, 이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단순하게 가되 리얼리티는 확보하자는 거였다.

-첫 장면에서 민주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땅이 기억하고 있는 것, 다른 표현을 쓰자면 ‘대지의 기억’이라 할 만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첫 장면과 대지의 기억에 대해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를 추동시킨 사회적인 사건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가령, 이 영화는 과거로부터 온 것이긴 하지만 추억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연결시키니 이야기가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프닝과 엔딩을 어떻게 연결시키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 엔딩에 대해서만 말하면, 여전히 희생자로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거기서 희생된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그러니까 좀 착하게 군다고 할까. 이 영화 한편으로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지만, 좀 열어둔다고 할까, 그런 의미였다.

-장르적으로 틀이 있는데 그걸 깨면서까지 쓰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말한 대로 사회적 소통 같은 것이 이 영화의 모태가 된 것이라면 좀더 적극적으로 다큐멘터리 자료들을 활용해보는 건 어땠을까.
=그럴 생각이 확실히 있었다. 최초에 검토할 당시는 방송용 자료들, 유가족들을 찍은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생각이 있었는데, 잘 안 됐다. 촬영감독하고 어떻게 받아서 찍을 건지 계획까지 세웠는데 외부 여건상 쓸 수가 없었다.

-<혈의 누> 때도 보았던 장면 연출인데, 한숏 안에서 과거와 현재의 인물을 동시에 공존시켜 보여주는 방식이 이번에도 주요 장면마다 눈에 띈다.
=<혈의 누> 때는 그 순간이 원규에게 뭔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건 과거의 사건이니 원규가 거기에 있을 리 없지만, 원규가 그 자리에서 그걸 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거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원규가 직접 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던 거다. <가을로>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런 장면에서 만들어내고 싶었던 건 민주의 부재감이었다. 존재가 확실할수록 부재가 커지지 않겠나. 나한테는 굉장히 절실한 장면이다.

-잘 잡히지 않는데, 존재와 부재의 관계에 대해 부가설명을 약간 더 해준다면.
=뭐 복잡한 건 아니다. (웃음) 현우와 세진은 민주라는 같은 사람에 대한 추억 속에서 여행을 떠나지 않나. 그들이 생각하는 같은 사람의 존재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민주가 비현실적 인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는 이미 이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 두 사람한테는 민주라는 인물이 절대적이고 무거운 존재다. 예를 들어, 그 무거운 존재가 없을수록 부재는 더 크다. 처음에 민주네 집에 민주와 현우가 갔을 때와 나중에 현우 혼자 갔을 때 민주의 그 빈자리를 관객이 보기를 바란다. 그런 부재감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공통점이라면 과거로부터 뭔가를 길어올린 뒤에 그 과거와 현재가 다시 공존하게 하는데 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김대승식 플래시백의 사용도 그런 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플래시백을 쓰고 싶어서라기보다 플래시백을 쓰게 되는 영화 구조랄까.
=누구의 말처럼 영화는 시간을 조작하는 것 아닌가. <혈의 누>에서 한번 해보고 나서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건데, 이번에는 그게 민주의 부재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재미있다. 아마 그런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순서대로 가는 건 재미가 없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거고. 지금 말을 듣고 보니 내 영화 세편이 모두 그 구조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주제가 같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세편밖에 안 만들었는데, 앞으로 더 변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영화 속 절경들은 민주가 현우하고 같이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한 것들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민주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소망의 풍경이라고 이해되는데, 민주의 그 이루지 못한 소망을 자연을 통해 반영할 때 어떤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자연이 아름다울수록 슬픔은 커질 것 같았다. 이 영화에서 자연이 아름다운 건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 뒤에 있는 사연 때문일 테고. 크게는 이런 흐름을 염두에 뒀다. 사막에서 시작해 숲으로 끝나는 행로를 따라가는 것. 처음에는 자연보다 사람의 상처가 훨씬 커 보이고 아파 보이지만, 한번 계기를 맞으면 사람보다 자연이 훨씬 커 보여서 그 속에서 뭔가 상처를 씻어냈으면 좋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자연을 찍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임권택 감독님처럼 도가 터서 한 발짝 떨어져 턱 하니 잡아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한 가지 아쉬움을 피력하자면, 영화가 좀 덜 유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못 만든 것이겠지만, 한편으로 그건 어떻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의 문제와 연관되는 거다. 예를 들어, 민주의 아버지가 갑자기 막 우는 장면에서 내가 그걸 감정적으로 자극하고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한동안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속 찍었을 거다. 하지만 아버지의 울음이 그 현장을 보는 현우의 감정에 봉사하길 바랐던 것이고, 뭔가 매번 그런 식으로 타당한 장면마다의 목표치가 있었다. 누가 그러더라. 좀 울어보려고 하면 냉정하게 뿌리치냐고.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 거다. 거리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현우가 우는 장면에 봉사하는 걸 생각한 거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상황 하나하나에 바글바글 들끓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묵직한 하나의 선이 있고, 그걸 따라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다음 작품 계획은.
=같은 짓을 세번쯤 하면 잘해야 하지 않겠나. 다음 작품 인터뷰 때도 탐색하는 중이라고 말할 순 없지 않나. (웃음) 더 잘하든지, 달라지든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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