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런던에선 <아웃 원>을 포함한 자크 리베트 영화들이 상영되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는데, BFI는 이를 기념하여 <파리는 우리의 것>과 <셀리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를 DVD로 출시했다. <파리는 우리의 것>은 클로드 샤브롤의 <미남 세르쥬>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에 들어가면서 첫 누벨바그 작품이 될 뻔한 영화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몇년이 소요되다 1960년이 지나서야 개봉될 수 있었다(영화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를 제작하려 애쓰는 연출가의 모습은 리베트의 그것과 다름 아니다). <400번의 구타>와 <네 멋대로 해라>가 지나간 자리에 등장한 리베트의 데뷔작은 혁명적인 누벨바그 영화들에 비해 다소 전통적인 외양을 지녔다. <파리는 우리의 것>은 죽음의 향기를 내뿜는 팜므파탈과 정치적 망명을 택한 미국인 작가, 자살한 스페인 음악가, 죽음이 예고된 젊은 연출가 사이에서 죽은 자의 비밀을 풀고 숨겨진 거대 집단의 음모를 막고자 노력하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다. 결국 죄없는 자들이 죽은 뒤 모든 것이 한 남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광적인 상상이었음이 밝혀진다. ‘파리는 우리의 것이다’라는 제목은 세상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선언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여정의 끝에서 스러지며 샤를 페기의 ‘파리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재확인할 따름이다. 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세계와 동떨어져 꿈을 꾸다 절망에 이른 사람들이었다. 파리가 은유하는 세계를, 그들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동료들이 죽고 떠나간 자리에 남아 자기들의 연극을 새로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서 감지되는 희망의 공기는 너무나 희박하다. 극중 누군가는 세상은 미쳐버린 곳이며 악마는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들은 성공할 때까지 실패할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파리는 우리의 것>은 불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냉전시대의 편집증과 불확실성 그리고 모호함의 기운을 포착했다는 평을 들었다. 리베트의 작품을 읽는 열쇠 중 하나가 ‘미스터리의 세계’라면 그의 데뷔작으로 더없이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간간이 등장하는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드미와 리베트의 40여년 전 얼굴을 하나씩 찾아보는 건 덤으로 주어진 즐거움이다. 새로 리마스터된 판본을 수록한 DVD의 영상이 빛나는 가운데, 영화평론가 조너선 롬니가 말하는 자크 리베트와 <파리는 우리의 것>(17분), 리베트의 단편 <양치기 전법>(한국에서 예전에 발매된 <그들의 첫 번째 영화> DVD에 수록된 적이 있다)이 부록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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