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애정결핍이 뭇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2]
2006-11-08
글 : 김나형

당신들…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이름 지수 국적 한국 나이와 성별 30대 여성 직업 없음 비고 <얼굴없는 미녀>는 <분홍신>을 신는다

‘경계선 장애’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정신증에 계속 시달리는 건 아닌데, 어느 순간 현실적 사고에 이상을 보이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감정 조절을 못하게 되는 정신장애죠. 이를테면 이런 경우를 봅시다.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심하게 애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대하죠. 자신이 할 일이 아닌데도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거나, 정도에 넘치는 관심과 친절을 베풀기도 합니다. 더 많은 관심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그러다 상황이 꼬였다고 합시다. A의 과도한 친절에 사람들이 부담을 느꼈거나, A가 나서서 한 일이 잘못되거나, 거짓말이 들통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A는 모두가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현실이 실제로 그런지와는 별개로요). 예민해진 A는 ‘내가 당신들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배신감을 느끼고, 남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폭주하는 거죠. 평소에 그렇게 잘 웃던 사람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며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퍼부어댈 수도 있습니다. 이쪽 저쪽에 상대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다니며 누군가를 곤경으로 몰아넣거나 이간할 수도 있구요. 이런 사례가 일종의 경계선 장애입니다. 지수의 경우, 미치도록 사랑했던 남자가 어느 날 떠났고, 갑자기 죽어버렸죠.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모두 자신을 버린다고 믿으며, 경계선 장애에 시달리게 됩니다. 남편의 카드를 벅벅 긁으며 요란한 옷을 사고, 가게에서 난동을 부리고, 가끔 집을 못 찾기도 해요. 이상행동을 보이던 지수가, 그녀보다 더 정신에 문제가 있는 듯한 정신과 의사를 만난 뒤로 상황은 더 악화됐어요. 정신과 의사가 최면요법으로 그녀를 스토킹하기 시작했거든요(그러니 저처럼 검증된 의사를 찾아오셔야 해요). 그녀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한데, 지하철에서 분홍 구두를 주우러 다닌다는 소문도 들리더군요. 여하간 저 캐릭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니 길에서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정도 망상이면 약도 없다. 걸리지 말아야 할 엽기 스토커

이름 안젤리끄 국적 프랑스 나이와 성별 20대 여성 직업 미술 전공 대학생 비고 <히 러브스 미>라고 극구 주장함

자, 이제부터 점점 병증이 깊어집니다. 이 언니는 망상의 극치를 보여주죠. 처음에 상담을 하러 왔는데 아주 멀쩡하더라고요. 귀엽고 상큼하고. 그런 언니가 유부남 의사를 사랑했는데 그가 유부남 특유의 불공정 플레이를 했다는 겁니다. 젊고 예쁜 여자에게 “사랑한다”, “당신과 함께하겠다”고 해놓고는 늘 약속을 어기는 거죠. 안젤리끄는 그의 여우 같은 아내가 그와 자신의 사이를 방해한다며 아주 괴로워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니 남자가 아주 몹쓸 놈이더군요. 같이 막 화를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정이 달랐어요. 문제의 남자는 이 여자와 인사 정도만 했을 뿐입디다. 아내의 임신 소식에 꽃다발을 사들고 집으로 뛰어들어가던 중 옆집에서 나오는 안젤리끄와 마주쳤고, 기쁜 마음에 장미꽃 한 송이를 뽑아준 거죠. 그때부터 안젤리끄는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그를 따라다니며 혼자 가상의 사랑을 한 겁니다. 꽃을 보내고, 그림을 보내고, 자동녹음기에 냇 킹 콜의 <LOVE>를 23번 녹음하는 식으로요. 우편함에 플로랑스 여행 광고 전단지가 꽂혀 있는 걸 보고는 그가 자신에게 여행을 약속한 거라며 완전 들떴죠. 문제는 그녀가 망상을 현실에 옮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의사의 주변 사람들을 해하기 시작했죠. 그의 아내를 스쿠터로 치고 뺑소니치는가 하면(그래서 그녀는 유산했습니다), 그를 고소한 여자를 죽이고, 나중에 그가 자신을 모른다고 하자 그의 머리를 내리치죠(덕분에 그는 식물인간이 될 뻔하고요). 그녀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어릴 때 늘 혼자 놀면서, 노끈과 솜 등으로 가짜 고양이를 만들어 진짜처럼 키웠다는 얘길 들으니, 이미 병은 예정돼 있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토막 살인이 난다

이름 채수연 국적 한국 나이와 성별 30대 여성 직업 유물복원사 비고 <텔미썸딩> 해달라굿!

이번 케이스와 마지막 케이스는 정말 갈 데까지 간 사람들입니다. 우선 채수연이라는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싸~ 하고 음침한 아름다움이 뭇 남성들(그 중엔 여자도 한명 끼어있었죠)을 매료시키고 남음이 있을 정도인데, 이런 언니를 만날 땐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전형적인 팜므파탈이니까요. 사실 어떤 면에서 채수연은 금자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모두들 그를 도와주고 싶어했고(아니 모두들 그녀와 사랑하고 싶어했나? 어쨌든), 토막나 비닐 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처량한 신세가 됐죠. 물론 아무도 그녀가 그로테스크한 연쇄 토막 살인의 범인이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왠지 그녀가 의심스러웠던 형사도, 꿈같은 그녀의 분위기에 빠져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없었구요. 그 와중에 채수연은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오승민을 범인으로 조작하는데 성공, 유유히 한국을 빠져나가버렸습니다. 프랑스로 간댔는데, 얼마 전에 보니 모 재벌 아들과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이라고 TV에 나오는 것 같더군요. 채수연은 문유정보다 강도높은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괴팍한 화가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성적으로 학대당했던 모양이더군요. 부모로서 주는 사랑은 받지 못하고, 이상한 방식의 사랑을 받고,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애정결핍(혹은 왜곡된 애정과잉)은 남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습니다. 하야, 아버지를 포함, 자신을 좇는 남자들의 몸을 토막토막 잘라 짜맞추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게 된 것이죠. 비슷한 사례로는 일본의 야마사키 아사미(미이케 다카시 <오디션>)가 있습니다. 남자들의 애정결핍이 대부분 피터팬 증후군 쪽으로 연결되는데 비해, 여자들의 애정결핍은 때로 극심한 복수로 연결될 수 있으니 모쪼록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미국 남부의 도살자들

이름 미상 국적 미국 나이와 성별 미상 직업 없음 비고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 <하우스 오브 왁스> <데드 캠프> 등을 참조

저는 이런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들기도 하고 일면 혐오스럽기도 합니다. 화끈한 건 좋은데 우아하고 지적이지가 못해서요. 미국 고딩들이 흔히 쓰는 ‘Freak’이라는 단어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죠. 기형으로 태어나 괴물이 된 존재니까요. 광활한 미국 남부에 득실거리고 있는 이들은 날 때부터 괴상한 형상으로(정신적으로도 일반인과는 다른 상태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짐승처럼 키워지죠. 역시 또 이런 부모가 있나 싶지만, 어쨌든 그랬던 겁니다. 이들은 인적 드문 시골 도로에 덫을 놓거나, 다른 가족들의 도움을 받거나 하면서 캠핑 온 젊은이들을 사냥합니다. 사냥감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우선 먹는 경우가 가장 많고(아마도 먹을 게 없기 때문이겠죠), 가죽을 벗겨 괴물 같은 자신의 얼굴을 가릴 가면을 만들기도 합니다. 쌍둥이 동생의 예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밀랍 인형 만드는 재료로 갖다준 사례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이 인간적으로 애정결핍을 느끼는지 어떤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와 부모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자들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될 수 있겠죠.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이들이 일종의 예술가 집단으로서, 미국 정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거라는 말도 나돌았답니다.

자, 오늘 강의는 여기에서 마치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외로우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그럼 저는 에드 게인(<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된 연쇄살인범)이란 오랜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이만. (어딘가 전화를 건 뒤) 어이, 에드! 식사 준비는 끝났어? 간 요리에 와인 꼭 곁들이라고 했지? 뭐? 무통까데 블랑? 아이 참, 레드로 하라니까. 혀 요리는 어찌 됐나? 마늘 소스에 재웠어? 응? 응, 알았네, 곧 감세.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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