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3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개막작 <편지>의 다마야마 데쓰지
2006-11-10
글 : 정재혁
다마데쓰의 두 번째 레이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나나>에서 가장 만화 같았던 순간은 하치(미야자키 아오이)와 다쿠미(다마야마 데쓰지)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도쿄 생활에 지쳐 어깨를 늘어뜨린 하치가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다쿠미가 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건넨다. “하치, 어서 와.” 카메라는 다쿠미를 클로즈업으로 잡고, 시간은 그 위에 잠시 멈춰선다. 평소 블랙스톤즈 멤버 중 베이시스트 다쿠미를 좋아했던 하치는 눈물을 떨어뜨린다. 만화 같던 환상이 현실로 재현되고, 도쿄의 무게는 잠시 프레임을 벗어난다.

순정만화 속 주인공의 눈을 닮은 배우 다마야마 데쓰지는 속눈썹이 유난히 길다. 하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그의 속눈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큰 키와 가는 선, 또렷한 눈동자는 그를 종종 음악과 만화 속 프레임 안에 데려다놓기도 했다. <나나>의 베이시스트, <체게랏쵸>의 보컬, 뮤지컬 영화 <사랑을 노래하면>과 영화 <역경나인>(시마모토 가즈히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의 야구부 주장 등 그는 일견 일상에선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모델이었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한국에서 다마야마 데쓰지는 과도하게 가공된 역할로만 기억되고 있다.

올해로 27살, 다마야마 데쓰지는 모델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다. 고등학교 시절, 모델 제의를 받고 텔레비전 CM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중학교 때 활동했던 육상부 경력이 신체적 조건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당시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도, 연기에 대한 의식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이번 영화 <편지>를 통해 배우란 직업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내가 배우다’라는 기분은 글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들었던 것 같아요.”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한 <편지>는 죄와 벌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다. 형 다케시는 동생 나오키의 학비를 위해 절도와 살인을 저지른 뒤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은 이후 동생의 생활을 침범하고 동생은 세상의 차별에 꿈과 미래를 포기한다. 여기서 다마야마 데쓰지가 연기한 역할은 사형수 다케시다. “시나리오를 받아본 순간, 이 영화가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영화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죠. 다케시는 절도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지만, 동생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형이기도 해요.” 이는 곧 살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글쎄요, 이번 영화 이후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살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나쁜 놈은 가해자고, 착한 놈은 피해자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과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다마야마 데쓰지의 모습은 사실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형무소 안에서의 생활도 그의 얼굴과 몸보다는 목소리로 대체된다.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그래서 최대한 목소리 톤을 밝게 가자고 생각했죠. 나오키는 세상의 차별과 싸우느라 목소리가 어둡잖아요. 동생의 내레이션과 대조가 되기 위해선 최대한 밝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영화를 위해 록스타 다쿠미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야위어 보이기 위해 몸무게도 4kg 감량했다. 심지어 영화를 촬영하면서는 “입 속에서 죄수의 옷 색깔 벌레들이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영화적 체험”이다. 다마야마 데쓰지는 자신의 외모를 조금씩 지워나가며 일종의 모험을 시도했다. “제 자신은 제가 프로듀스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다마야마 데쓰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제 희망이죠. 모델을 그만두고 연기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역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요.” 그는 올 여름 방영됐던 드라마 <누구보다도 엄마를 사랑해>에서는 게이로 출연하기도 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최근 다마야마 데쓰지를 다마데쓰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배우가 애칭을 갖는다는 건 어느 정도 인기스타가 됐다는 지표다. 아직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연기보다는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스스로의 미래를 긍정하고 있다. “특정 역할이 하고 싶거나, 특정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스스로에 대한 컨트롤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조금은 뒤늦은 스포트라이트지만 그의 레이스는 전혀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사진제공 GAGA Commun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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