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1월12일(일) 오후 2시20분
로렌스 캐스단의 <우연한 방문객>은 멜로드라마적 형식 속에서 한 남자의 상실 극복기를 다룬 영화다. 멜로물답게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세 인물의 충돌이 아니라 각 인물의 캐릭터와 그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세 인물이 만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오는 극적 긴장감 대신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연한 방문객>의 두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위치에 확신을 가지지만, 한 남자는 그녀들에 비해 더없이 불안정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남자가 그녀들 사이를 오가다, 결국 진정한 자기 내면의 소리를 깨닫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끝난다. 그 지점은 여행전문 기고가인 그가 파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순간과 맞물린다. 영화는 여행에서의 우연한 발견이 불행한 영혼을 구해주듯, 사랑 역시 그렇게 삶 속으로 스며든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행전문 기고가 메이컨(윌리엄 허트)과 사라(캐서린 터너)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별거한다. 아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개와 단둘이 남은 메이컨은 우연한 기회에 개조련사 뮤리엘(지나 데이비스)을 만나게 된다. 세련되고 침착한 사라와 달리 자유분방한 뮤리엘의 존재는 메이컨의 외로운 일상을 달래준다. 그러나 여전히 메이컨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과 사라에 대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사라에게 돌아오고 다시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파리행 비행기에서 그는 뮤리엘과 재회한다. 필연 같은 우연.
그러나 이쯤 되면, 그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의 문제 대신 그 마주침을 어떻게 자신의 삶에 개입시킬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메이컨이 그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두 여자, 즉 흔들림없이 감정에 충실한 뮤리엘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의젓한 사라 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여자 사이를 ‘여행’하며 내적으로 성장하는 한 나약한 남자의 ‘여행기’로 읽히기도 한다.
앤 타일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우연한 방문객>은 지나 데이비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주었다.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골고루 발휘해온 로렌스 캐스단은 <스타워즈> 시리즈 중 ‘제다이의 귀환’, ‘제국의 역습’, <인디아나 존스> 등의 각본을 썼고 <그랜드 캐년> <보디 히트> <프렌치 키스> 등을 연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