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5분, 공원에서 깡패에게 얻어맞은 남자가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그 남자의 삶처럼 한편의 영화가 끝났을 자리에서 다른 한편의 영화가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를 잊은 게 아니라 과거가 없는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에게 한 사람의 이력과 한 사회의 기억과 역사는 인간의 꿈인 유토피아 건설을 억압하고 족쇄를 채우는 방해물이다. 그는 노동자와 농부가 사후에 도착할 천국이 아닌 가진 것 하나없는 자들이 바로 지금 삶을 꾸려나갈 지상의 풍요로운 땅을 원한다. 카우리스마키의 배우들은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결코 웃지 않을 것이며,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상심의 발라드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 작가들이 영화 너머의 세계를 탐하는 시간, 땅 위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카우리스마키의 발과 영화는 소박한 인민의 연대를 따스하고 목멘 목소리로 노래한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혁명은 영화가 아닌 바깥세상에 속한 것이다”라고 했지만,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여전히 영화 속에서 혁명을 꿈꾼다. <과거가 없는 남자> DVD에는 어떤 부록도 없다. 영화의 가난함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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