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하나를 스크랩했다. 제목도 거창한 ‘현대인의 불안장애 종류와 증상별 대처법’이란 기사였다. 이상한 일이다. 죄 짓지 않고 착실하게 살면 알차고 소박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TV를 켜면 노후를 위해 십억원대의 재산이 필요하다고, 죽음과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들라고, 쉬지 않고 몸매를 가꾸라고 모두 재잘거린다. 불안은 그렇게 시작된다. 죄없는 자의 불안, 그것은 치유되기 불가능한 병이다. <실물보다 큰>의 에드가 그랬다. 교사이면서 택시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그에게 목 결림, 가슴 통증, 피곤이 엄습한다. <세이프>의 캐롤도 그렇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주부가 숨막힘, 발작, 신경쇠약을 호소한다. 검증되지 않은 약물 치료를 받던 에드나 외딴 요양소로 밀려난 캐롤에게 완치의 희망은 요원해 보인다. <세이프>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나의 일기>에서 난니 모레티는 반대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일년 내내 수많은 의사를 거치며 잘못된 처방을 받다 결국 임파종 제거로 치료된 그는 ‘의사는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물을 마실 것’이란 두 가지 교훈을 전한다. 다른 사람들의 증상도 그렇게 산뜻하게 정의내려지고 치료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안정을 취하는 게 말처럼 쉬운가. 음식, 기후, 공해, 피복이 하나씩 의심스럽고 심리적 원인을 찾아 자학하기도 한다. 어쩌면 현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 문제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현대인은 고통과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세이프>는 거울 속 자신을 보는 캐롤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녀는 속삭인다. “널 사랑해, 난 널 정말 사랑해”라고. 거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허한 삶에서 벗어나자고, 자신을 확신하고 변화를 만들어내자고 오늘 당신의 얼굴을 보며 되뇌어보는 건 어떨까. <실물보다 큰>의 DVD는 아직 미국에선 출시되지 않았는데, 자막없는 프랑스판보다 스페인판을 구하는 게 낫다. <세이프> DVD에선 토드 헤인즈, 주연 줄리언 무어(놀랍게도 그녀는 영화의 완성판을 처음 본다고 말한다)와 제작자이자 논쟁적 독립영화의 든든한 조력자인 크리스틴 버숀의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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