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달라도 인간은 공통분모가 있다”
신동일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방문자>는 영화과 시간강사 호준(김재록)과 신학도 계상(강지환)이 만나 서로 이해와 우정을 쌓아가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다소 껄렁해 보이기까지 하는 냉소적 지식인과 순수하고 강건한 종교론자가 우정을 맺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영화는 그걸 향해 고집을 세우며 나아간다. <방문자>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변화를 품으려고 하며, 보이는 서로의 간극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더 큰 이해의 연대에 다가서려 한다.
신동일 감독은 올해 두 번째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고 호평을 얻었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그의 인물들은 의외로 이해의 결렬 관계로 나아간다. 즉,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방문자>와는 정확히 반대로 신뢰를 쌓았던 두 친구가 어떻게 파국을 향해가는지를 다룬 영화다. 그의 두 번째 영화는 인물 관계의 의미상 첫 번째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멈추는 것일까. 혹여 주인공 호준처럼 당당하다 못해 냉소적인 사내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막상 만난 신동일 감독은 인터뷰 내내 눈을 감거나 내리깔고 소박하게 낱말을 고르며 말을 잇는 침착하고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됐나.
=대학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동아리에 들었는데, 한국사회의 격변기다보니 다른 시각을 가진 영화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사나이>를 보고 정서적 충격과 마음의 울렁거림을 느껴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소재가 당시 우리나라 상황하고 많이 비슷했다. 폴란드 연대 노조 형성사를 그린 이야기였는데, 갓 스무살이 된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시네필로서의 자의식도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내가 일생에서 해야 될 일이 아닐까 하고 느꼈다. 내가 추구하는 게 제작자나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서…(웃음) 천신만고 끝에 두 작품을 만들게 됐다.
-하지만 후반작업 때 투자자가 나섰고, 개봉까지 하게 됐다.
=지금과 같은 저예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구상하는 단계에서 필름포럼 임재철 대표에게서 조언을 많이 얻었다. 친한 형이다. “너 같은 스타일은 한국의 영화 시스템에서 영화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저예산영화를 생각해보라”는 질책성 격려였다. 투자도 해주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래도 무리를 해서 시작했다. 하지만 찍긴 했지만 프린트를 뽑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후반작업할 때 LJ필름 이승재 대표를 만나게 됐고, 개봉까지 하게 됐다. 독립영화 만드는 분들의 고통과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똘똘 뭉쳐서 만드는 희열도 있는 것 같고. 처음부터 상업영화라고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아예 투자자나 제작자와 접촉도 안 했다. 하지만 개봉에 대한 희망은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거였다. (웃음) 배우들까지 포함해서 이 영화가 개봉되리라 생각하고 참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걸 나중에 개봉 쫑파티 때야 알았다. 나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었다. 연출부한테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하고 물었더니 그랬다고 하더라. (일동 웃음)
-주인공 김재록과 강지환은 어떻게 만났나.
=재록이 형은 영화아카데미 다닐 때 동기다. 형은 영화아카데미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기 전공을 뽑을 때 들어왔고, 알고 지낸 게 10년이 넘었다. 영화 속과 실제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재록이 형을 생각 안 했다. 처음에 누가 재록이 형 어떠냐고 했을 때도 무슨 소리냐 했다. 오디션을 보고 나서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과감하게 캐스팅했다. 그리고 계상 캐릭터는 그 자체로 특이해서 심혈을 기울여 오디션을 봤는데 적임자를 못 찾았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강지환씨 사진을 보고 누가 추천했고, 오디션 보고 나서 감이 오는 게 있어서 캐스팅하게 됐다. 계상의 경우, 정직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프로그래머는 “포스트 80년대를 사유하는 보기 드문 감독”의 영화라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평했다. 개인적으로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데, 본인 생각은 어떠한가.
=동의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80년대 후반 학번이라 지난 20세기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과거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이 예준 캐릭터에 드러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현재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 중요하게 느끼고, 그 사람들의 미래 역시 궁금하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예준은 386세대는 아니고, <방문자>의 호준이 386세대 정도 될 거다. 하지만 확실히 예준하고 호준이 동전의 양면 같은 느낌이 있긴 하다.
-해외에서는 우디 앨런 영화와 비슷하다는 평도 나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사회적 책무를 이렇게 강조하지 않는다. 한편으론 <방문자>의 사회적 맥락을 놓쳤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나도 그걸 읽었을 때 당황하기는 했다. “내가 우디 앨런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농담도 했다. (웃음) 그걸 쓴 사람은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디렉터였는데, 취향상 내 영화를 좌파영화로 보고 내 영화에서 인물이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초점을 두고 우디 앨런과 비교한 것 같다. 베를린영화제 취향상 사회적 책무나 맥락을 배제하고 이해한 건 아닌 것 같다. 인물의 혼란스러운 정신상태를 그린다는 면에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어쨌거나 외국 리뷰를 보면 이 영화를 사회적 맥락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두명의 관계에 집중해 보는 사람도 있는데, 대체로는 전자가 많은 것 같다. 다른 국가 사람들도 공유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인물이고, 전쟁에 대한 언급도 있고 하기 때문에 그들도 쉽게 공유를 하는 것 같다.
-웃음을 주는 부분들이 꽤 있다는 평을 듣는다.
=단말마적인 웃음보다는 축적되는 웃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욕실에 갇힌 장면도 그렇고. 인물이 벗어나려고 하는 행동을 보면서 관객이 웃으면서도 불안감을 느끼기를 바랐는데,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많이 보더라. 주인공의 캐릭터가 특이하다보니까 상황하고 매치가 안 되는 것에서 갭을 느끼며 많이 웃는다.
-고집스럽게 지향하는 영화적 방향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시선이나 관점이 중요한 것 같다. 시각적으로 너무 화려한 작품보다는 작품이 담고 있는 실체에 관심을 더 두기 때문에 어떤 컷을 잡을 때도 그 상황에서 가장 멋진 컷보다는 가장 적확하고 정확한 컷을 선호하는 편이다. <방문자>는 장식없이, 미니멀하게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재료와 주제에 어울릴 것 같았다.
-영화는 호준이 이사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한동안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걸 보여준다. 그 동선을 짤 때 어떤 점을 고려했나.
=예산 탓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신림동 주변에서 찍었다. 이혼 직후라는 상황이고, 외딴곳에 처음 와서 무료하게 느낄 거라 생각했다. 또 대학 강사들이 계절 실업자 아닌가. 그래서 그런 식으로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가게에 가거나, 산에 오르거나. 영화 하는 사람들이 작품 찍을 때는 바쁘지만 안 그럴 때는 백수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화가 만들어지더라.
-가겟집 여주인에게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권하는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 장면은 시나리오상에서 대사가 없었는데, 촬영 30분 전에 김재록씨하고 만들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이 영화 촬영하면서 계속 맴돌았던 영화고 화두였기 때문에 한번 대사를 쳐보라고 한 거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호준의 우울증 비슷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심리 표현인 것 같기도 하고. 논리적으로는 설명을 잘 못하겠다. 영화를 만들고 나면 의미없는 대사란 없는 것 같다. 호준이 레종 어쩌고저쩌고하는데, 레종은 프랑스말로 이성이라는 뜻이 있다. 그 대사도 설명하긴 힘들지만 써야 할 것 같았다. 호준이가 욕실에서 하는 대사도 촬영 직전에 만든 거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죽어간다, 발버둥친다 정도로만 되어 있었다. 다 그런 직감에 의해 만들어지더라.
-그렇다면 출장 마사지걸의 등퇴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실은 그 캐릭터까지 포함해서 세명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얘기가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아 남자 두명으로 좁히게 됐다. 기능적으로는 호준의 속물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 같았고, 대사 속에도 있지만 알고 보면 서로 비슷한 처지다.
-영화 초반부 호준을 보면 연출자가 지식인 캐릭터에 대해 갖는 감정이 양가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연출자 스스로를 포함해 질책하는 듯도 하지만, 한편으론 지식인이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양가적이다. 지식인의 말과 주장에 대한 행동의 불일치에 경멸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것이 캐릭터에 반영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드러나서 한국의 우디 앨런이라는 식의 말도 듣는 것 같다. 이 인물에 대해 관객이 미워할 수도 있고,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고, 그건 선택하기 나름인 것 같다.
-첫 장면부터 욕실문이 잘 안 열리면서 저게 문제를 일으키겠구나 생각은 했다. 욕실문이 고장난 건 어떤 점을 고려해 소재가 된 것인가.
=호준과 계상의 관계를 맺어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 끝에 그걸 택했다. 문 자체가 관계를 맺는 창구 역할을 한다. <방문자>에는 숏 리버스 숏 방식이 없는데, 문장면은 서너개 있다. 문고리가 소통을 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현실적으로도 호별 방문하는 종교의 성격상 둘이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집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호준과 계상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누군가 목숨을 구해줬다고 하더라도 그냥 잊고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의 방식일 텐데, 서로 친해지기 힘든 이 관계를 영화에서는 기어이 맺어준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맺어놓고 사건을 보고자 하는 것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그 사람들의 신념이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누군가 “이 세상에 모든 것 중 관계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말한 것 같은데, 그런 의미인 것 같다. 모든 건 다 얽혀 있는 것 같다. 지금 나하고 아프리카의 원주민하고 어떤 인간관계가 맺어질 수도 있는 거고. 보이건 보이지 않건 인간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만약 그 인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뭔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 맺어지는 게 아닐까 한다. 희망을 갖고 싶은 거다. 서로 다른 계층과 계급의 사람들도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이랄지 소외 같은…. 언뜻 보기에는 달라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보면 유사할 수 있는 인간들에 관심이 간다. 부끄러워서 오프더레코드로 말하면, 이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연대를 해야 한달까.
-진심이라면 그걸 왜 오프더레코드로 말하나. (웃음) 가령 이런 부분도 눈에 띈다. <방문자>는 진술의 영화인 것 같다. 거의 한숏으로만 찍은 계상의 법정 진술 장면에서는 그 말을 집중해서 들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장면 구상에 대한 생각을 들려달라.
=그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나로서는 그 장면이 담담하게 읽혔으면 했다. 다른 영화들 같으면 방청객, 법관 등등의 반응숏들을 보여줬을 텐데, 나는 그저 관객이 담담하게 관조하고 나서 판단했으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계상의 연기가 강했다. 무빙이나 컷 분할을 안 하겠다는 원칙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있었는데, 2분 정도 생각했던 연기 호흡도 훨씬 길게 나왔다.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면서도 고민되는 컷이었다. 그런데 계상이의 개인적인 인생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해서 뺄 수도 없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방문자>와 내년에 개봉할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사이의 변화 지점이 궁금하다. 가령 <방문자>가 진술의 힘으로 신념과 행동의 문제를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영화라면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중요한 한순간이 설명없이 빠르게 결정되도록 구성했다. 이 두 영화 사이에는 어떤 변화와 차이가 있나.
=방금 말한 그런 차이는 확실히 있다. <방문자>를 찍고 나서 다이얼로그에 대한 반성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영화에서는 장면의 느낌이나 인물의 표정을 상황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게 <방문자>하고 큰 차이다. 기본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동소이하지만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방문자>는 일상에서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차이나 동질성을 그려내는 반면에,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어그러지는 이야기다.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방문자>보다 미학적으로 훨씬 발전했다고 보는 분도 있고, <방문자> 스타일을 좋아했던 분들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나로서는 이번에는 좀더 잘 만들어야겠다 하는 상식적인 생각 정도였다. 크게 염두에 둔 건 없다. 구상하게 된 것도 사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몇년 앞선다. 그게 여의치 않아 방황하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방문자>였으니까. 인간 심리나 내면의 어두운 면이 상대적으로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강하게 표현된 것 같지만 두 작품 다 출발점은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