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
2006-11-16
글 : 이다혜
44사이즈의 할리우드에서 비상하는 방법

아기사슴 밤비를 닮은 큰 눈과 웃을 때면 활짝 벌어지는 시원한 입술이 앤 해서웨이의 매력임은 분명하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이어지는 성공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키워드는 아니었다. 평범한 소녀가 공주가 되고, 패션에 별 관심이 없던 사회 초년생이 샤넬을 몸에 두르고 파리 패션쇼에 등장하게 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과 ‘후’의 극렬한 대비에 있다. 신데렐라가 아름다웠지만 숯 검댕을 묻히고 있었던 것처럼, 앤 해서웨이는 그 두 영화에서 예쁘지만 다소 촌스러워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평범한 소녀, 평범한 여자 같아야 했다. 영화를 보는 소녀나 여성들이 동일시할 수 있을 만큼의 평범함과 어리숙함이야말로 아름다움보다 강렬한 해서웨이의 매력인 셈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미란다가 냉혹하게 진단한 것처럼 ‘뚱뚱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해서웨이는 할리우드 여배우들 중 통통한 축에 속한다. 뉴욕에서 살던 어린 시절만 해도 키가 크기 때문에 몸무게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LA에 가면서 그녀를 둘러싼 평가는 냉혹해졌다. “오래전부터 내가 통통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게 뭐 잘못되었냐고 항변하기보다는 ‘나는 통통한 편이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몸무게로 고민할 시간도 없다.” 소년들의 판타지보다는 소녀들의 판타지에 어울리는 역할들로 주로 기억되는 것도 외모에 대한 그런 평가와 맞닿아 있다.

평범한 소녀들이 동경하는 판타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해서웨이의 실제 삶에도 그 이유가 있다. 1982년생인 해서웨이는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던 어머니를 동경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고, 16살에 TV드라마 <겟 리얼>로 데뷔했다. 드라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일찍 막을 내렸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 오디션장에서 의자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하고도 바로 캐스팅되어 영화 속에서처럼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담배도, 술도, 마약도, 심지어 육식조차 하지 않는 건강한 생활방식에 더해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기까지 했으니 동경의 대상으로 모자람이 없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리얼리티 쇼의 참가자가 된 것 같다. 언제나 탈락 직전의 위기에 처한 것 같다!”는 한숨은 애교로나 들릴 판이다. 게다가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줄리 앤드루스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과 함께 연기한 데 이어 다음 영화인 <제인 되기>에서는 제인 오스틴 역을 맡아 매기 스미스와 함께 연기한다. 앤 해서웨이가 배우의 꿈을 꾸게 한 장본인인 그녀의 어머니조차 해서웨이에게 부러움의 탄식을 보낼 정도다. “네가 줄리 앤드루스와 연기한다고 했을 때는 무척 기뻤고, 메릴 스트립과 연기한다고 했을 때는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제 매기 스미스라니, 정말 질투난다.”

역설적으로, 해서웨이의 고민은 그녀를 스타덤에 올린 밝고 맑은 이미지에서 비롯되었다. 성인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한 <대혼란>(2005)에서 마약의 세계에 빠져든 철없는 십대를 연기한 해서웨이는 이전의 모범생적인 분위기를 벗고자 누드연기도 시도했지만 평가는 형편없었다. 성인 연기자로서의 변신에 실패한 것 같았지만 전환점은 바로 그 다음에 있었다. 해서웨이를 소녀 이미지로 박제시킬 것 같던 <프린세스 다이어리2>(2004)를 찍던 중, <브로크백 마운틴>(2005)에 캐스팅된 것. 이 영화에서 해서웨이는 잭(제이크 질렌홀)과 결혼하는 루린을 연기해, 사랑스러운 여인에서 생활을 이끌어가는 억척스럽기까지 한 아내의 역할을 매끄럽게 해냈다. 처음에는 착하고 순진했지만, 근본적으로 포식자 유형인 루린을 매서울 정도의 날카로운 여성으로 그려낸 것이다. “리안 감독이 내 전작들에 대해 잘 몰라서 천만다행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호연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메릴 스트립이 해서웨이가 상대역을 할 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브로크백 마운틴>을 봤기 때문이다.

“영화는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더이상 십대가 아닌 시기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공포가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웨이는 이제 영화 속에서도, 영화 밖에서도 십대를 벗어났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의 앤드리아가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미아에서 크게 발전했다고 볼 수 없는 인물일 수는 있지만, 해서웨이는 점점 묵직한 연기력의 대선배들과 나란히 서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영화 <제인 되기>에서 사랑에 빠진 제인 오스틴을 연기하는 그녀에게 미래의 매기 스미스나 오드리 헵번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르지만, 비쩍 마른 몸매가 아니어도 할리우드에서 비상하는 방법을, 앤 해서웨이는 알고 있다.

사진제공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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