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시골에 농촌봉사활동을 떠난 도시 남자와 시골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찾아보면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꽤 있다. <인어공주> <나의 결혼 원정기> <백만장자의 첫사랑> <내 마음의 풍금> <클래식> 등. 이를 토대로 작은 마을 ‘참봉리’의 라디오 방송국 DJ 마봉춘을 주인공과 봉PD가 만들어가는 엽기 콩트를 구성해보았다. (주의사항: 이 콩트와 위에 언급한 영화는 내용상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옛날, 옛날, 호랑이 말보로 피우던 시절이었슈,,,,, 봉 피디님, 지 목소리 어때유? 괜찮쥬? 안녕하세유. <정오의 라디오 스타> 진행을 맡은 마봉춘이유. 아참! 방송 들어가기 전에 꼭 할 말이 하나 있슈. 5분이면 되니께 쪼까 이해해줘유. 할아버지는 장돌뱅이 출신이구유, 아부지는 전국 각지를 떠돌던 장사꾼이었슈. 지가 10대 시절을 화개장터에서 보내서, 거시기한 기분이 들면 갱상도, 전라도 사투리 막 튀어나와붕께 쪼까 참고 들어줘유. 지금꺼정은 별 문제 없었지라? 뭐라구유? 안 들려유? 아, 피디 선상님, 할 말이 있으면 사람 눈을 쳐다보고 하란 말이유. 대체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유? 선상님, 방송국 시험 안 보고 들어왔다고 거시기하는 말은 아녀유. 그래도 이왕 할 거 정신 바짝 차리고 하셔야쥬. 뭐하는 거유, 시방? 남이 말하는데 왜 코는 후비고 그래유? 시방 서울에서 왔다고 방송 막하는 거예유? 코나 후비고 있으라고 방송국이 월급날 되면 통장에 따박다박 넣어주는 줄 알아유? 지가 이래 뵈도 직업정신 하나는 투철해유. 우리 아버지가 늘 그러셨슈. 세상은 요지경이어도 니는 요지경으로 살믄 안 된다구유. 근데 왜 모가지를 손날로 치고 그래유? 누구 죽었슈? 내참, 드러워서 못해먹겠네! 이 씨X놈아, XXX!”
(잠시 중간 광고)
“FM 999.9.MHz CBR 참봉리 마을구민회관 방송입니다. 삐~ 700-7979. 친구 목소리가 그리울 땐 누르세요! 오늘 나 한가해요~.”
(광고 끝)
“아, 마봉춘이유. 봉 피디랑 한판하려다 참았슈. 왜 참았나 하면 피디도 사람인디 그럴 수 있잖유. 아무리 지가 낙하산이어두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 아녀유. 그렇다고 봉 피디가 실력있다는 얘긴 아녀유. 서른 먹도록 백수로 지내다가 그래도 첫 직장인디, 지라고 왜 잘해볼 생각이 없겠어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디, 지가 이해해야쥬.”
(봉 피디, 마봉춘을 향해 Fuck you 날린다. 마봉춘, 무시한다.)
“그럼, 따땃한 커피로 심장도 쪼까 풀어줬응께 슬슬 오늘 방송 시작허요. 근데 청취자 여러분 중에 여성분 있는지 모르겄네. 잠깐 담배 좀 피것슈. 어차피 나 같은 놈 얼굴 눈에 안 보이니께 펴두 되겄쥬? 나중에 우리 방송도 꼭 ‘보이는 라디오’ 전국투어 방송 탈 거니께 쪼까 기달려유. 옴마? 자꾸 피디가 끊으라네? 기분 거시기해지는데. 봉 피디! 기분도 거시기한데 방송 시작하기 전에 노래 하나 듣고 가유. 오늘 따라 세븐의 <라라라> 듣고 잡네. 내가 마음은 늘 10대잖유~. 노래 끝나면 진짜루다가 방송 시작할팅께 화장실 얼릉 댕겨들 와유. 근데 큰거 싸면 안 돼유. ‘매력만점 마봉춘에게 암거나 물어봐유’ 코너 하니께. 오지게 재밌는데, 아이구, 클났네, 클났어! 고자, 애자, 기자 쓰시는 ‘마봉춘 슈퍼’ 주인 아주머니! 변비 걸렸는데! 실은 지 엄니유. 엄니! 화장실 갔으면 빨랑 끊고 돌아와유. 지 첫 방송 탔슈!”
(세븐 노래 끝난다.)
“랄라랄라…. 아이구. 세븐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아유. 나도 가수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인디. 얼굴이 안 보여서 그렇지, 지가 쌩얼은 좀 된다구유. 왜 이래유? 남자는 피부가 삶의 활엽수 아녔소? 오잉? 그새 사연이 하나 왔구먼유. ‘마봉춘, 방송 그딴 식으로 하면 죽인다! 이 편지 복사해 100군데 보내지 않으면 너희 어머니가 죽고….’ 뭐야, 이거? ‘봉피디가?’ 참내. 봉 피디! 집에 돈이 그렇게 많아? 가지가지 하는구먼. 아, 열받으니까 밥통에서 밥 달라고 난리네. 봉 피디! 나 자장면 좀 먹으면서 해도 돼유? 뭐, 안 돼야? 아니, 봉! 봉보로봉봉봉봉! 이거 넘하는 거 아녀? <마봉춘의 정오의 라디오 스타>에서 길다고 하도 지X해서 <정오의 라디오 스타>로 바꿔줬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녀? 해도 너무 하는구먼. ‘네시의 라디오’도 아니고, ‘다섯시의 라디오’도 아니고, ‘정오의 라디오 스타’로 가잔 게 누구여? 봉 피디 아녀? 남들 다 밥 먹을 때 혼자 일하는 거만큼 미련한 게 어딨슈? 봉 피디가 고집해서 정오의 라디오가 됐으면 일단 밥은 양보할 수 있는 거 아녀유?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 거 아녀유.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그러잖여? 밥은 먹고 다니라고. 나 그때 속으로 ‘그려!’ 했슈. 적어도 송강호랑 약속한 건 지켜야쥬, 안 그려? 아니, 애청자 여러분, 안 그러요? (그려유, 그렇심더, 그라지요, 하모요~) 들리쥬? 애청자들이 원하는 거?”
(마봉춘, 중국집에 자장면 곱빼기와 탕수육을 주문한다.)
제주도 해녀와 우체부가 응응응~
“(후루룩 짭짭) 자, 그럼 ‘매력만점 마봉춘에게 암거나 물어봐유’ 코너 진행하겠슈. 봉 피디! 음악 안 깔아유? 담요 위에 화투 깔듯이 이~쁘게 한번 깔아봐유! 자, 그럼 가유. 첫 번째 사연이유. 와, 첫 사연부터 멀리서 왔슈! 제주도유, 제주도! 오매, 기분 좋은 거! 그럼 읽겠슈. (안녕하세요. 저는 은행원으로 일하는 나영이라고 합니다.) 나영이, 나 이나영 좋아허는디. 딱 내 스타일이유! 눈도 왕방울만한 게. 제주도 나영씨는 뭐가 고민이실랑가? (저희 아버지는 은행원이시구, 어머니는 목욕탕 때밀이세요. 근데 저희 아버지가 너무 착하세요. 예전에 빚보증을 잘못 서주셔서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전 대학까지 포기했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구박만 주야장천 받으시다 급기야 며칠 전 집을 나가셨어요. 그러잖아도 아버진 몸도 편찮으신데, 정말 걱정이예요.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되찾아, 부모님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요?) 저런저런. 이런 건 <부부클리닉>으로 보내셨어야 하는 건디. 암튼간에 집 나가면 애들만 고생이유. 개헌티만 맡기지 말고 웬만하면 집은 부모님이 지켜줍시다! 제주도의 나영씨! 잘 들어유. 이렇게 함 해봐유. 부모님들도 한때 연애하던 시절이 있을 거 아녀유? 제주도가 고향이면… 엄니가 해녀셨을라나? 어쨌든 엄니가 해녀구, 아부지가 우체부잖유? 말이 필요없슈. 몽타주 제대로 나오는구먼유. 둘이 자전거 태워주고 글 가르쳐주고 하면서 닭살 장난 아녔을 거유. 이런 경우엔 꼭 엄니쪽이 짝사랑을 하더랑께? 궁금하면 장롱 뒤져봐유. 민망한 사진은 장롱 둘째서랍에 많더라구유. 그런 거 보여줌서 둘이 화해시켜유. 괜찮유. 원래 다 싸우고 그러는 거유. 어떻게 평생 한 사람하고 살면서 안 싸울 수 있간디? 근디 문제는 아버지를 어떻게 찾느냔데. 봉 피디! 어떡하면 좋겠어유? 몰라? 사실 기대도 안 했어. 그나저나, 나영씨! 일단 동네 파출소에 신고하고 기다려봐유. 나중에 아버지 찾으면 후속 사연 꼭 보내줘야 되유! 나 A형이니께 답 안 보내주면 삐치유! 자, 그럼 노래 가유.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 아, 고등어 먹고 잡네! 후루룩 짭짭, 끄어억~.”
(산울림 노래 끝난다.)
우정은 무슨? 무조건 사랑이여
“벌써 끝난겨? 왜 노래는 꼭 2절까지만 부르는겨? 한 10절 부르지. 허허허. 그럼 다음 사연 가유. 서울에 사는 준하씨가 보낸 거구먼유. 그럼 읽어유. ‘지난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댁에 갔다가 주희라는 이름의 여자애를 봤어요. 한눈에 반했죠. 근데 어느 날 주희가 제게 귀신 나오는 집에 같이 가잔 겁니다. 그렇게 예쁜 애가 왜 그런 델 가잔 건지, 나 원. 그래도 주희 부탁이니까 귀신의 집에 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어요. 그 바람에 배가 떠내려갔고 주희는 수원으로 가게 되었죠.’ 참내. 뭐여, 이건? <소나기>야, <클래식>이야. 비 오면 흥분하는 애들이 꼭 셋 있슈. 바바리맨, 똥개, 그리고 영화 너무 많이 본 애들이유. ‘근데 문제는 방학이 끝난 뒤였어요. 저랑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태수란 놈이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는 거예요. 근데 하필이면 그게….’ 설마 주희? 응. 맞구먼. 뻔한 레퍼토리 아녀, 이거. 친구랑 삼각관계. 사랑을 택할 것인가, 우정을 택할 것인가. 별로 어려운 거 아니유. 나 같으면 당연히 사랑을 택해유. 인생이 성룡영화도 아니고, 2탄, 3탄 계속 되겠어유? 그냥 이 사람이다, 싶으면 무조건 들이대는 거유. 근디 사연 보낸 준하씨는 어쩐지 이름부터가 센티헌디. 이거, 또 로맨틱 왕자 아니여? 아, 몰라 몰라. 일단 친구가 학생운동하다 죽든, 아파 죽든 명이 짧기를 바라는 수밖에. 근디 <클래식>에서는 주인공이 전쟁 나갔다가 지뢰 밟고 실명해서 여자랑 연결 안 되던디. 쩝! 어쨌든 삼각관계는 힘드요. 나도 해봐서 알제. 봉 피디? 왜 고개는 흔들고 그랴? 니가 허면 로맨스고 내가 하면 노망이냐? 저, 니미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가유. 봉 피디, 일루 들어와봐.”
(김건모 노래 끝난다. 봉 피디, 녹음실 안으로 들어온다.)
“아아, 여러분은 시방 <마봉춘과 봉 피디가 공동진행하는 정오의 라디오 스타>를 듣고 계셔유. 지금 제 옆에 봉 피디가 와 있어유. 노래 나가는 동안 봉 피디랑 껄쩍지근한 얘기 쪼까 했슈. 이 양반이 할 말 있답디다. 한번 참고 들어보자구유.”
(봉 피디, 마이크에 입 가까이 댄다.)
사회경험 하러 왔다 연애경험 했죠
“안녕하세요. 백만장자 봉 피딥니다. 방송 타는 거 처음이라, 무지 떨려요. 사실 전 학창 시절 문제아였어요. 학교보다 경찰서를 더 자주 들락날락했었죠.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난 이미 백만장자였거든요. 사실 우리 할아버지가 강남에서 알아주는 땅부자예요. 저한테 다 몇천억원이 거저 오게 돼 있었다구요! 근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니까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회경험은 해야 되지 않겠냐며 절 이 촌구석으로 보내셨어요. 라디오 피디라도 하면서 시골에서 짱 박혀 있으래요. 제가 무슨 <백만장자의 첫사랑> 주인공입니까? PC방 하나 없는 촌구석에서 대체 무슨 방송을 합니까? 난 아직 스물한 살이라구요! 휴~ 그렇게 게임도 못 하고 구질구질하게 하루를 보냈죠. 어느 날, 학교에 일일교사로 갔다가 놀랍게도 그녀를 만난 겁니다.”
(전화 걸려온다.)
너는 제자, 나는 선생님
“여봐유, 잉? 누구유? 홍연이? 아이구! 애청자 여러분 기뻐할 일이 생겼슈. 봉 피디의 그녀, 홍연 양이 직접 전화를 했지 뭐유!”
(홍연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홍연: “안녕하세요. 봉수하 선생님의 제자 홍연이더래요. 나, 선생님한테 할 말 있더래요. 바꿔줘요.” 봉 피디: “아, 홍연아! 봉수와~.” 홍연: “선생님! 양은희 선생님하고 어떤 사이예요?” 봉 피디: “홍연아, 너, 제자, 나, 선생님, 홍연아!” 홍연: “화장실에 적힌 낙서 다 봤더래요! 양은희 선생님은 약혼자랑 유학 간다 그래요. 그래도 선생님이 양 선생님만 생각하면… 마이 아파!”
(전화 끊기고 봉 피디 밖으로 나간다.)
“홍연양, 일기나 열심히 써유. 저 인간은 책을 안 읽으니까 일기라두 읽어야 된다니께. 그림 일기가 딱이유! 혹시 알아유? 한 35년쯤 지나면 둘이 한 이불 덮고 잘지? 남들이 원조교제를 하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녀. 암튼 일기 얘기도 나왔응께, 보아의 <비밀일기> 나가유!”
(보아 노래 끝난다.)
무조건 다 자빠뜨려!
“이제 슬슬 방송 끝날 시간 다 되어강께 지 얘기 하나 해드릴게유. 사실 지가 생긴 건 정재영만치롬 얼짱인디 서른여덟 살 먹도록 장가를 못 들었슈. 울 엄니는 지만 보면 속터진다고 만날 “서방복 없는 년 자식복도 없다”고 한숨 푹푹 쉬어쌌지, 아주 죽는 줄 알았쥬. 그러다 친구 중에 희철이란 놈이 있슈. 막걸리 한 사발 들어가면 <18세 순이> 부르면서 노총각 망신 다 시키는 놈이유. 근디 이놈이 어느날 진지허게 우즈베키스탄에 색시 구하러 가잔 거유. 아참, 나도 순진허지, 따라간 겨. 근디 우리가 러시아어는커녕 영어도 안 되잖여. 손짓 발짓 다 허다가 라라씨를 만났슈. 라라씨는 통역관인디 러시아어만 잘허는 게 아니구 얼굴두 허벌라게 이뻐부러요. 지는 라라씨가 가르쳐준대로 ‘다 자빠뜨려!“ 하나만 연습했쥬. 그게 내일 또 만나잔 뜻이라나? 오늘 만나서 내일 자빠뜨리란 거여, 뭐여? 그럼 너무 진도가 빠르잖여. 히히히. 근디 날이 가면 갈수록 코쟁이 여자들보다 자꾸만 라라씨한테 눈길이 가는 겨. 돈 쳐발라가며 뱅기 타부렀는데 라라씨랑 바람났다 그러면 나 보내준 울 엄니랑 할아버지한테 얼마나 욕을 먹겠슈? 근디 자꾸자꾸만 라라씨가 좋아지더라 이거유. 그 젊고 예쁜 여자를. 내가 미쳤쥬. 근데 사랑은 미치는 거더라구유. 헤헤헤. 근디 알고봉께 라라씨가 북한 여자더라구유. 만날 방송에 나와서 담치기하던 탈북자 말이유. 지두 핵교 다닐 땐 담치기 꽤나 했었는디, 하믄서 공통점을 만들었쥬. 근디 넘어오더라구유. 그래서 지금 아들 둘에 딸 하나 낳고 잘 먹고 잘 살구 있슈. 나중에 지대신 <쿨> 같은 유명 그룹으로 키워볼라구유. 헤헤. 자랑이유, 내 자랑! 아, 이러구 집에 가면 또 엄니한테 푼수라고 욕먹는디. 몰러, 좋은 걸 어떡혀? 그나저나 오늘 방송 재밌었슈? 재밌었으면 리플 하나씩 달아줘유. 또 알아유! 선물로 누렁소 하나 갈지? 그럼 내일 정오에 또 봐유! 씨유레이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