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삼거리극장>의 배우 김꽃비, 박준면, 한애리, 박영수
2006-11-2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글 : 이다혜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판타스틱 삼거리 매직 유랑단

검은 옷을 입은 남녀가 하나둘씩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어떤 이는 우아하게 다리를 포개고 소파에 앉았고, 어떤 이는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고, 가장 나이 어린 누군가는 “꽃비 왔구나!”라는 환성에 파묻혀 행복하게 웃었다. 이들은 한밤의 <삼거리극장>에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사연을 주고받던 배우들. 삼거리극장 매표원으로 취직했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 소녀 소단 역의 김꽃비, 혼령이 되어 극장을 떠돌면서 밤마다 봐주는 사람 없는 쇼를 벌이는 유랑극단 단원들인 박준면과 한애리와 박영수다.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 진짜 일본 군인다운 발음을 구사했던 히로시 역의 조희봉만이 교통사고로 갈비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어 이 다정한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두루 힘든 뮤지컬영화를 찍으며 동고동락했던 배우들은 <삼거리극장>의 촬영지였던 부산 삼일극장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분개하거나 입원한 병원을 비밀에 부친 조희봉의 소재를 추적하면서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가끔 화제가 떨어졌다 싶으면 하는 놀이가 ‘에리사 놀이’. 기품이 있으면서도 조금 표독스러운 에리사(박준면) 말투로 소단이를 구박하는 놀이다. 소품으로 준비한 꽃을 나눠가지면서도 서로에게 어울리는 품종을 찾아주던 네명의 배우들은 일하러 왔다기보다 인터뷰를 핑계로 한자리에 모인 듯 놀았고, 힘든 인터뷰를 끝냈으니 힘을 내자며 모두 함께 고기를 먹으러 떠났다.

묻혀 있던 꿈, 지금은 재생 중

소단 역의 김꽃비

김꽃비는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내 웃고 있었다. 소단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만 잠깐 웃음을 걷어냈고,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았던 시간을 이야기하면서도 눈을 초승달처럼 가늘게 만들면서 웃어댔다. “아침에 학교 갔다 저녁 되면 극단에 가고, 막내니까 포스터도 붙이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출연하는 장면이 있으면 연습도 했어요. 힘들었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땐 정말 몰랐어요.” 혼자서 극본도 쓰고 연기도 했던 초등학생 시절 김꽃비는 연기가 좋아 아동극단 워크숍에 다니며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두 번째 꿈을 가진 이후 다시는 꿈을 바꿔본 적이 없었다지만, 무슨 일이었을까. 김꽃비는 중학교에 진학한 다음엔 한동안 연기를 잊고 있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아리 신입생을 모집하러 다니는 연극부 선배들을 보며 어딘가 묻혀 있던 꿈을 다시 기억해냈다. “아, 내가 연기를 정말 좋아했었지, 나도 연기를 했었지, 왜 그동안 잊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후 1개월, 교회에 다니던 엄마 품에 안겨 아기 예수로 성극에 출연했던 김꽃비는 그렇게 연기로 돌아왔고, 다시는 잊을 생각이 없다. 그동안 <여자, 정혜> <짝패> 등에 출연했던 김꽃비는 <삼거리극장> 시나리오를 보고는 전계수 감독의 천재성에 마음을 빼앗겼다. “감독님은 천재라고 정말 열심히 말하고 다녔어요. (웃음) 어떻게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오묘하고 앞뒤 딱딱 맞고 언어유희까지 있거든요.” 시나리오를 받아들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는 일이 너무 즐겁다는 김꽃비는, 그 웃는 얼굴만 보아도,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짐작이 간다. 이 소녀가 감독과 주연과 작가를 겸하여 만들어보고 싶다는 단편영화가 진정 궁금해진다.

나의 소단이/ 소단이는 소신과 고집이 있는 아이다. 은근히 대범하기도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도 못되고 한심한 짓은 하지 않는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

삶의 화두를 향해 한 발짝 전진

모스키토 역의 박영수

한올도 남겨놓지 않고 뒤로 넘긴 앞머리에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말쑥하게 뒤로 묶은 박영수는 사진촬영하는 내내 사진기자의 주문에 즉흥적으로 표정과 몸짓의 변화를 주었다. 마치 마임배우처럼. 뜻밖의 사실은 극적인 표정변화와 커다란 행동에 능한 그가 무척 내성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 중학교 땐 버스 벨도 못 눌렀었다. 우연히 뮤지컬을 보고 ‘배우들은 부끄럽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성격을 바꾸려고 연극을 시작했다. 극단에 무작정 찾아갔다.” <삼거리극장>에서 모스키토, 청소부 송씨, 표세동 박사 등 1인3역을 한 그가 전계수 감독과 인연을 맺은 것은 다른 배우들처럼 3년 전 처음 영화화 얘기가 나왔을 때다. 전계수 감독과의 인연도 연극에서 시작됐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 무대에 서다가 서울로 갔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틀간 공연하는 무대에 서게 됐고, 둘쨋날 공연을 본 연출가 박근형의 눈에 들어 <깔리굴라 1237호>에 없던 배역을 만들어 합류하게 되었다. 배우 박영수의 출발점이 된 그 연극의 관객 중 한 사람이 바로 전계수 감독이었다. <삼거리극장>뿐 아니라 <흡혈형사 나도열> <1번가의 기적> 등 최근 영화에도 틈틈이 얼굴을 내미는 그지만, 마임배우처럼 크고 극적인 동작과 표정 변화는 고민거리다. “고등학교 때 마임을 알게 되어 열심히 공연도 보고 따라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연극이었다. <1번가의 기적>의 윤제균 감독이 연기에서 힘을 빼라고 하더라. 힘뺀 연기가 좋다고.” 성격을 바꾸려고 시작한 연기는 그렇게 그의 삶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나의 모스키토/ 귀여운 혼령이다. 똑똑한 척도 하지만 실수도 하는. 무엇보다 보는 사람들이 연민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장거리 코스에 선 디바

에리사 역의 박준면

조선의 마지막 공주 에리사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낮엔 매점 아줌마로 등장하는 그녀는 몸집은 뚱뚱하고 성격은 뚱한 여인이지만, 유랑극단의 무대가 서는 밤이 되면, 가슴이 깊게 팬 드레스를 입고 지나간 첫사랑을 노래하는 ‘어둠 속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된다. 배우 박준면도 비슷하다.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단막드라마 <다함께 차차차> 등에 출연했던 박준면은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하고 있노라면 파도처럼 마음을 뒤흔드는 디바가 되곤 했다. 성량 풍부한 목소리로 애수와 활기와 외로움을 노래에 담아온 그녀는 애초 뮤지컬이 아닌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너무 연기가 하고 싶어서 나이를 속이고 열아홉살에 연기 워크숍에 등록했다. 국립극단 <노부인의 방문>에 마을 사람으로 출연도 했고. 나중에 들통나는 바람에 그동안 말을 놓고 지내오던 동료들에게 언니, 오빠, 미안했어요, 라고 사과하고 다녔다.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뮤지컬 양성학교에 다녔던 것이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서 주로 알려진 그녀의 시작. 그러나 박준면은 1999년에 이미 장희선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고추말리기>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뒤로도 박준면은 여러 장르와 매체를 거치며 차곡차곡 삶을 쌓아오고 있다. “시나리오를 읽으니 벅차오르는 느낌이 왔고, 에리사도 일생에 다시 만나기 힘든 역이어서” <삼거리극장>에 출연한 그녀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트러블 메이커’ 왕곱단을 마치고 이제는 공연을 준비하는 중이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답게 반짝이는 에나멜 가죽에 은빛 꽃송이가 달린 예쁜 구두를 신고 온 박준면은 “꾸준하게 가는 사람, 배우라는 이름으로 오래오래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의 에리사/ 에리사는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무대에서 다진 통쾌한 카리스마

완다 역의 한애리

한애리는 원래 소단 역으로 오디션을 봤었다. 3년 전, <삼거리극장> 영화화가 처음 시도됐을 때 일이다. 영화가 엎어졌다가 다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감독님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혼령 완다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역할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연기를 하면서 최종 목표가 뮤지컬영화였기 때문에 <삼거리극장>은 꼭 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밋밋한 역보다 한 가닥 하는 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똥싸는 소리!”라며 시원하게 노래를 부르는 완다 역은 한애리에게 꼭 들어맞았다. “내 노래를 사랑한다. 통쾌하고 유쾌하다.” 한애리는 영화보다 뮤지컬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롯데 역을, <유린타운>에서 14살 소녀 리틀 셀리 역을 맡았으며, <송산야화> <뮤직 인 마이 하트> 같은 창작뮤지컬에서 굵직한 역을 소화했다. 하지만 <삼거리극장>은 달랐다. 뮤지컬이라 해도 영화이기 때문에 무대에 설 때보다 섬세한 감정변화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하려는 강박은 없었다. 어설퍼도 어설픈 게 아니고, 완벽해도 어딘가 어설픈 것이 <삼거리극장>의 매력이다.” 노력의 결과는 그녀에게 작은 감동을 안겼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데 <똥싸는 소리> 노래가 끝난 뒤 관객이 박수를 치더라. 뮤지컬 무대에 섰을 때의 감동을 영화로도 맛볼 수 있구나 싶었다.”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고 이제 논문학기만 남긴 한애리는 12월25일부터 3개월간 <뮤직 인 마이 하트> 공연을 앞두고 있고, 내년에는 창작뮤지컬 <대장금>에 금영이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나의 완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엉뚱한 성격을 가진 유령이다. 어딘지 백치 같지만 쾌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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