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감독 변승욱·개봉 30일)에서 약사 심인구(한석규)의 약국은 너저분하다. 소화제를 사며 간밤에 누가 대판 싸우더라 따위의 잡담을 하기에 제격일 듯한 동네 약국이다. 인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형 인섭을 돌보지만 너그럽지만은 않다. 성질을 실컷 부리다가 미안해져서 형에게 은근슬쩍 농담을 건넨다. 빚 5억원 탓에 사는 게 버겁기만 한 애인 혜란에게 “다 갚아줄게”라고 호기롭게 말할 만한 왕자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거 참 쉽지가 않네요”라고 허탈하게 웃음 짓는 그저 그런 동네아저씨인데 삐져서 뾰로통해지는 모습까지 한석규에겐 꼭 맞게 어울린다.
한석규(42)는 멜로 영화에서도 환상 속의 그대가 아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나 <접속>(1997년)에서 그는 사랑만큼이나 무거운 다른 문제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진사 정원이 아버지에게 비디오플레이어 사용 방법을 알려주다가 짜증을 부리는 장면처럼 일상적인 소묘를 그는 떠올리게 한다. “제 이미지는 강하기보다는 평범하고 친근한 쪽인 것 같아요. 넘치는 것보다는 모자란 듯 연기하는 게 좋아요.”
문화방송 드라마 <아들과 딸>(1992년)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이미지는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머리 스타일만 해도 거의 항상 이마를 드러내며 약간 굴곡진 깔끔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도회적인 이미지를 한 축으로 삼아 그는 변주를 거듭해 뻗어나갔다. 속물적이면서도 약간이나마 순박함을 간직한(<닥터봉> <서울의 달>), 성깔 있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넘버3> <초록물고기>) 동글동글하지만 외따로운 (<접속> 등) 인물들이다. 평범한 그의 얼굴은 풍요와 결핍을 동시에 누리는 1990년대의 이미지를 그러모아 담았다.
친근한 동네 약사로 돌아와…한때는 연기 두려워 3년 공백
“흥행에 대한 부담 여전하지만 특별함보다 평범함이 내 자산”
1990년대가 저물 즈음 <쉬리>와 <텔미섬딩>으로 정점에 오르면서 그는 3년 동안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제 연기에 실증이 났어요. 발전은커녕 폭이 좁아졌어요. 큰 영화일수록 인물은 가짜투성이예요. 연기가 거짓말하는 것 같고 두려움이 커졌어요. 큰 고비가 온 거죠.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수습해야 했어요.”
2003년 <이중간첩>으로 돌아온 그는 일년에 두 편꼴로, 사극부터 코메디까지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 오고갔다. “제가 연극영화과 간다고 했을 때 학교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뭐든지 딱 중간. 특별하지 않은 게 큰 자산이죠. 그런데 지겨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주홍글씨>나 <구타유발자>에서처럼 센 역할도 해본 거죠.”
40대에 들어선 그는 연기에 자신감을 회복한 듯 하지만, 대중은 변덕이 심하다. 흥행 보증수표라는 별명은 이제 다른 배우들 차지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당연히 있죠. 활짝 피었다가 점점 사그러드는 게 배우의 운명이에요. 만약 연기가 산을 오르는 거라면 지금은 동반자가 돼 주고 산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웃음)”
어떤 사람은 그에게 항상 어울리는 지적인 면바지와 셔츠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지루해할 듯하다. 한석규는 강렬한 한방으로 관객의 기억에 남기보다는 스미듯 차곡차곡 단단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면서도 영화에서 배우보다는 역할이 먼저 보이도록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제 안에 전혀 없는 걸 만들진 못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못 되는 게 한계이기도 하겠죠. 아마 한석규는 제가 한 여러 캐릭터를 다 합쳐놓은 거겠죠. 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죠. 상황에 따라 악마로 변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