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를 꼽으라면 그건 단연 이한위일 것이다. TV에서는 낯익은 존재였지만, 영화로 치면 불과 몇년 전까지 아주 가끔씩만 등장했던 그가 최근 스크린 속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이한위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그해 <외출> <형사 Duelist> <박수칠 때 떠나라> <야수>에 등장했던 그는 올해 들어 <한반도> <예의없는 것들> <원탁의 천사> <거룩한 계보>에 이미 출연했고, 곧 개봉할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에도 얼굴을 비친다. 현재 영화 <만남의 광장>과 <바르게 살자>를 찍고 있으며 TV드라마 <열아홉 순정>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 속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기발한 코믹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러던 그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는 정신분열 장애를 겪고 있는 인물 심인섭으로 등장해 큰 변화을 꾀한다. 대화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말이 빠르고 거침없고 즐거워지는 이한위에게서 처음 시도하는 장애우 연기와 갈수록 바빠지는 연기활동에 관해 들어봤다. 그의 생생한 이야기를 평서체의 활자 형태로, 그것도 엄청나게 축약해서 소개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정신분열장애우 연기를 했습니다. 어떠셨나요.
= 제가 근래에 맡았던 역할은 좀 유사한 게 많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맡은 역할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거든요. 우리쪽 말로 하면 그동안 날로만 먹다가 최근 들어 나를 가장 분발시킨 작품이랄까. 이 연기를 위해 공부도 좀 하고 발로 뛰어다니면서 알려고 하고 뭐 그랬거든요. 다른 작품은 어떤 관성에 의해서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연기는 특별한 생각과 특별한 준비 그리고 특별한 긴장감이 있지 않으면 수월치가 않잖아요.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죠. 기자시사회장에서도 말했지만 제가 그 역을 맡았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정말 적역을 맡았다고들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소란스럽고 즐겁고 폭력적이면서 코믹한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정신분열증 연기를 하게 되리라곤 짐작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제 실제 성격은 내성적이거든요.
- 내성적이라고요.
= 굉장히 내성적이죠. 그런데 연기생활 23년 동안 제 성격, 의지와 상관없이 외형적인 성격의 배역을 맡다보니 이차적 성격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제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마치 농담인 줄 알죠.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저를 보면 반가워라 해요. 제가 평소 맡는 역할이 주로 서민적이고 코믹한 이미지잖아요. 악수를 해도 손을 꽉 잡거나 마구 잡아당기기도 하고, 어떤 분은 막 두드려 패고, 막 꼬집는 사람도 있고요. (웃음)
- 정신분열증 환자 연기의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 변승욱 감독님의 형님이 실제로 이런 증상을 앓고 있는 장애우세요. 이 영화에서 제가 맡은 역할의 모델이 감독님의 형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 형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여러 장애우 복지시설에서 도움을 얻었어요. 인천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자원봉사자로 등록해서 1주일에 한번씩 한두달을 봉사하고 생활하면서 장애우들의 모습을 많이 봤고요, 인천 서구 보건소에서도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인근 주안역 근처에는 장애우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자원봉사도 하고 함께 홍보도 했었고. 또 강화 초입에 있는 인천시의 복지시설을 찾기도 했죠. 그리고 간접경험이지만 많은 영화를 봤죠. 잭 니콜슨이 나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랄지, <아이 엠 샘> <말아톤> <오아시스> <뷰티풀 마인드> <레인맨> 등등 한 30편을 봤어요.
- 인섭은 영화 속에서 왜 병에 걸렸는지 이유가 안 나와서 연기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 원래 알츠하이머나 정신분열이나 아직도 원인은 모른다는 거예요. 후련한 치료법도 없고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도 어렵고요. 제가 듣기로는 치료를 한다 해도 병세가 악화되는 것만 지연하거나 조금 과격해지면 가라앉히는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하여간 대본 속에는 그런 상황이 배치만 돼 있을 뿐, 왜 그런 건지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연기경력 23년이면 꽤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요건 별도더라고요. 영화 보신 분들이 잘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좋아 보인다고도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다행스러울 뿐이죠.
- 연기를 하면서 좀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 답답하죠. 내가 노력을 해도 보이는 실적을 알 수 없는 거라서. 이를테면 뇌성마비는 특별한 증상이 있는 것인데, 이런 환자의 경우 어찌 보면 정상인 같거든요.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하고 촬영장에 나가도 왠지 마음이 무거운 게 있더라고요.
- 평소 말수가 많고 외향적인 역할만 하다가 정적인 연기를 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 그렇죠. 몸짓이나 표정이나 아주 단말마적으로… 그리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ㅂ…ㅋ…ㅉ”, 이러면 동생 인구(한석규)가 “어~ 박카스”, 이러니까. 그나마 대사도 거의 없어요. 심하게 말하면 대사분량이 한석규씨의 한신만큼도 되지 않았을 거예요.
- 이 연기가 어려울 거란 사실은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예상하셨을 것 아닙니까.
=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야 정말 다양하게도 작품이 들어오는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 선택할 즈음이 되니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이런 생각도 했었죠. ‘이건 잘해도 손해, 못해도 손해일 것 같다’는. 물론 연기자가 본전을 생각하면서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이 연기를 잘할 수도 없겠지만 잘한다고 해도 계속 이런 쪽으로 불려다니면 어떡하나, 하는 약간 인간적인 고민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뭔가 불끈하게 하는 게 있었어요. 내가 해보지 않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 변승욱 감독님도 특이하시네요. 그동안 축적된 이한위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런 연기를 부탁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 제가 평소에 이런저런 드라마를 통해 기자들이 표현하는 이른바 ‘감칠맛 나는 만년 조연’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요. 한 40년은 익히 썼음직한 그런 관례화된 표현이 있잖습니까. (웃음) 오히려 그런 것이 저를 이 역할로 끌어들이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더욱 불끈 샘솟는 거죠. 잠깐 손익도 따져봤는데, 이건 손익의 문제가 아닌 것 같고 뭔가 도전하고자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 저는 후반부에 가서 막 광분하고 이런 연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그렇게 과격한 연기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후배지만 한석규씨가 정말 훌륭하게 어시스트했기 때문에. 그런데 언뜻 보면 정상인 같은데 계속 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듯한 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느낌을 아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연기를 하다가도 감독님이 컷 하면 정상인으로 돌아오잖아요. 그래서 한참 잡담하고 떠들고 하다가 다시 촬영준비가 됐다고 하면 다시 그런 증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 차라리 현장에서 쉴 때 떠들지 말고 계속 그 감정을 유지하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 그러면 제가 물어볼게요. 떠들고 그러지 않으면 뭘 하나요. 변승욱 감독님이 테이크 시간도 길어요. 그리고 한 테이크를 끝내고 다음 테이크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적으면 1시간에서 많으면 4시간도 걸리는데 내내 시무룩하고 있으라고요?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이거 너무 잔인한 거예요. (웃음)
- 한석규씨와는 <8월의 크리스마스> 때 친구로 출연했었는데, 8년 만에 형제로 재회하셨습니다.
= 한석규씨는 <8월의 크리스마스> 때도 후배지만 정말 안심하고 연기가 되는 배우였어요. 그리고 그 영화를 찍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많은 분들이 정말 좋은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줘서 행복했어요. 한석규씨는 그 뒤로 많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하면서 훨씬 거듭나 있었으니 이번 촬영은 정말 수월했어요. 만약 이 작품을 다른 배우와 했으면 또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즐겁게 촬영했죠. 피곤하건 그렇지 않건 한결같이 이 작품에 임하려는 한석규를 보다보니… (갑자기 목소리를 키워서) 내 어찌 힘이 불끈 솟지 아니하리요!
- 한석규씨는 김지수씨와의 러브신도 있는데, 본인은 고작해야 성인잡지를 보며 손으로…. 혹시 한석규씨가….
= 부러웠죠, 인간적으로. 저는 고작 성인잡지나 보고…. 또 석규가 저를 여관에 데려가서 매춘여성을 불러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실제로 병원이나 시설을 가보니까 그런 성적인 게 문제되는 케이스도 많다고 그래요. 육체는 성인이 된 지 오래됐는데 분출하지 못하니까. 하여간 그 장면 하나라도 기대했었는데 그냥 점프를 해가지고…. (웃음) 아니 왜, 나는 거칠게 생겼고, 또 번식력있어 보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은 정말 안 잡혀요. 아니, 이렇게 슬픈 얘기를 하는데 왜 웃으세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도 내가 김지수를 죽인 범인처럼 나오잖아요. 그때도 뽀뽀를 한다거나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옆에서 잠만 잤어요. 너무 잔인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번식력 좋은 배우를 놔두고. (웃음)
- 하여간 요즘 너무 바쁘신 거 아닌가요.
= 좀 뜻하지 않게 바빠지지 않았나 싶어요. 배우들은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좀 바쁘게 지내봐야지, 그런다고 해서 절대 바빠지지 않아요. 이번에 유난히 작품이 몰렸던 것 같아요.
- 앞으로도 영화가 여럿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게 <사랑할 때…> 말고도 <미녀는 괴로워>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이 있어요. 지금은 CY필름에서 만드는 김종진 감독의 <만남의 광장>이라는 영화가 있고요. 휴전선이 생길 때 남과 북으로 나뉜 한 마을 사람들이 땅굴을 파서 함께 지내는 이야기죠. 배경은 그 뒤로 20년 뒤쯤이 되고요. 또 <박수칠 때 떠나라>의 조감독이었던 라희찬 감독이 연출하는 필름있수다의 <바르게 살자>가 있습니다.
- 이미 여러 편을 찍었으니 그동안 시간을 쪼개는 게 힘들었을 것 같네요.
= 스케줄이 이토록 많은데도 이렇게 무리없이 소화해낼 배우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웃음) 사실 너무 많아서 한두 작품은 빠질 수도 있었는데, <원탁의 천사>는 김상중이 특별하게 부탁을 해서 어렵지만 출연했고, <미녀는 괴로워>는 감독님께서 저를 보고 시나리오를 썼느니, 이런 과격한 용어를 쓰기에 그 표정에 진정성이 있어서 하게 됐어요. 그리고 <한반도>은 완전 억지잖아요. 어느 날 조재현이가 전화를 했어요. ‘형 뭐하세요. 우리 작품에서는 뭐 정말 웃기다면 웃길 수 있는 딱 한 장면이 있는데 그것 좀 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그래서 ‘뭔데?’ 그러니까 ‘뭐 있어요’ 그러대요. 캐스팅이 이렇게 후지게 이뤄졌어요.
-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나보네요.
= 상중이나 재현이나 친한 놈들이니까. 나를 잘 따르는 놈들이니까. 내가 그들 속에서 그렇게 군림할 수 있으려면 민원도 받아줘야 하잖아요. (웃음) 조재현이가 무슨 큰 뜻을 품었는지 <천년학>을 끝내고서 연극을 할 생각이 있나봐요. 또 전화가 왔어요. ‘형 뭐하세요’ 그러기에 ‘나 자고 있다’ 했더니. ‘1월에 연극 들어가는데…’라고 말해서 ‘알았어, 알았으니까 잠 좀 자자’, 이렇게 같이 하기로 했어요. 이따위 캐스팅은 이제 근절될 때도 됐는데, 우리가 또 조직원에 약한 경향이 있어서….
- 조직 관리에 꽤 신경을 쓰신다면서요.
= 조직 관리 잘해야죠. 이젠 걔들한테 묻어가야 할 시기가 왔잖아요. (웃음) 저는 감독과도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내려고 해요. 작품을 하면서도 좀 친해지려고 노력도 하고요.
- 그런데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하다보면 최선을 다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 만약 네편 정도를 동시에 한다면 헷갈려버릴 거예요. 두편 정도는 워낙 단련이 돼서 기본으로 깔고 가고 세편 정도는 조금 힘들죠. 영화는 물론이고 요즘에는 드라마도 조연 못해먹어요. <해신>은 완도, <주몽>은 나주, 뭐 이런 식이니까. 나도 <주몽>에 제의를 받았는데 결국 못했어요.
- 매니저가 고생하겠네요.
= 제 매니저의 자질은 체력과 역마살이죠. 번식력은 필요없어요. 딴짓하니까 안 되고. (웃음) 그리고 일을 매우 재밌어라 해야 돼요. 우리 매니저는 새벽일 끝내고 서울에 와서 잠깐 찜질방에서 서너 시간 자고 하는 것을 매우 좋아라 해요. 거기서 미역국 먹어도 매우 행복해하고. (웃음)
- 본인도 역마살이 있으신가요.
= 저도 만만치 않죠. 사실 집에 가면 할 일이 없어요. 혼자 사니까. 집에 가면 옷 갈아입고 씻고 뭐 보고 이 정도니까. 그러니까 하우스지 홈 개념이 아니에요.
- 요즘 이혼남을 돌아온 싱글, 그냥 돌싱이라고 부르던데 외로울 때도 있지 않나요.
= 배우는 심지어 외로워야 할 필요도 있어요. 제가 즐겁게 지낸다는 것은 외롭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누군가가 있는 데서는 즐겁고 돌아와 저 혼자 있을 때는 외롭죠. 침묵이 동반되지 않는 언어는 생명력이 없다고 하잖아요. 즐거울 수 있으면 휴식도 있고 그것과는 별도로 외롭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하고 그런 거죠. 하여간 어느 곳에서도 저는 항상 즐거운 사람이에요. 녹화가 끝나서 먼저 들어가려고 하면 감독님들이나 선배님들이 서운해하세요. 심심하니까. 저도 또 집에 가면 외로우니까. 저는 집에서 밥도 안 해먹어요. 그냥 목숨유지용 라면만 있어요. 어쩌다가 일이 없어 집에서 꾸물럭거릴 때, 더이상 뭐 안 먹으면 죽겠다 싶을 정도의 선에서 선택하는 라면이 바로 제가 명명한 목숨유지용 라면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주부생활> 11월호(‘이한위 단독 인터뷰’가 실려 있다)를 참고하세요. (웃음)
- 영화를 많이 찍으면 돈도 좀 많이 버시겠군요.
= 짭짤하죠. 그리고 돈만 버는 게 아니라 바빠서 안 쓰게 되니 이중으로 좋은 거예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산다는 건 아닌데, 내 쇼핑방법은… <주부생활> 11월호 참고~.
- <미녀는 괴로워> 말고도 ‘이 역할은 이한위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캐스팅 제의를 받은 영화가 있나요.
=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도 처음에는 제가 아니었는데, 감독님이 어떤 드라마 연기를 보고 마음을 바꿨대요. 그리고 <예의없는 것들>의 경우엔 박철희 감독을 딱 만났는데, 그러더라고요. ‘국내 최고의 애매한 표정이 있으신 배우로서…’, 그런 용어를 쓰더라고요. (웃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애매한 연기 때문에 이 역할을 꼭 제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자, 이렇게 된 거죠.
- 애매하다는 말이 좋으셨나 보네요.
= 그렇다기보다는 애매하다는 것이 뭔지 알거든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좌우간 애매한 연기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딱 집어서 ‘애매한 연기를 하셔야 한다’는 거예요. 저 말고도 조연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다 똑같지 않다는 거. 제가 지금 <만남의 광장>에서 임현식 선배님과 연기하고 있지만 선배님 스타일의 애매한 연기가 있잖아요. ‘끄응~’ 뭐 이런 거라든가. 그렇게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저도 그렇게 파고들어오는 사람 앞에서는 꼼짝 못하겠어요. 그건 그리고 저를 좀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조금 고생스러워도 이런 분들을 위해서는 좀 하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불끈!
- 참 불끈하는 성격이시네요.
= 우린 좀 불끈한 성질이거든요. 전라도라서. 그게 잘 쓰여져야 하는데 잘못 불끈해서 출연한 케이스도 있어요. 뭐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주로 안면으로 들이대는 건데 피하기도 어렵잖아요. 사실 배우는 선택되기도 어렵지만 거절하기도 어려워요. 그런 데서 작든 크든 오해도 발생하고요. 그러다가 ‘많이 컸네’, 이러면서 과거 회상에 들어가고. 짧게는 6개월, 멀게는 10년 이상을 회상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6개월만 해도 견딜 만한데,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건 굉장히 피곤해지잖아요. (웃음)
- 조선대 정밀기계공학과를 나왔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되셨나요.
= 정밀기계공학이라… 좋은 학문이죠. (웃음) 제가 그 엄청난 학문을 뒤로하고…. 저희 때만 하더라도 예비고사 점수로 어떤 과로 갈지 결정하는, 적성과 취미와 기호와 습관이 전혀 배려되지 않은 채 대학에 갔던 시절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정밀기계공학은 제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적성도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서클에 들어가 연극만 열심히 했죠. 사실 당시에 연극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는 게 더 컸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서클 하나를 들어가려고 고민을 하는데, 당시에는 그룹사운드 열풍이 있었거든요.
- 그럼 **학번이신가요.
= 예? 예, 학번 같은 것은 좀 안 써주셨으면…. (자동차의) 연식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애매하게 가야잖아요. 나를 보면서 (삼십대에서부터) 쉰살 정도까지 먹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도록 운영하고 싶으니까 걸림돌이 안 됐으면 하는데. (웃음) 하여간, 그룹사운드가 가장 인기있었는데, 그 순간에 그룹사운드라면 노래만 하지만 연극을 하면 그 안에 노래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런 영악한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를 통해 성격을 좀 전환시켜보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이 연극이었던 거죠. 열심히 했어요. 제가 내성적이다 보니 처음에는 제 소개도 잘 못하고 그런 정도였는데, 내성적인 성격으로 끝까지 제 자리를 지키니까 외향적인 놈들이 다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저 혼자 다 했어요. 회장도 하고 주연도 하고 연출도 하고. 그래서 배우하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하면서 졸업한 다음 83년에 KBS 탤런트 10기로 데뷔하게 됐죠.
- <파랑새는 있다>가 기억나는데, 드라마에 출연하던 시절 특별히 출세작이랄 만한 게 있었던가요.
= 그것 말고도 <노다지>란 게 있었고, <야망의 전설> <어사 박문수> <다모> 같은 작품이 인상적이었는데 특별하게 출세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 그러면 언제부터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게 되신 거죠.
=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한달 전에 조재현과 해봤어요. 같이 등산을 가는데 등산객들이 조재현보다 내게 인사를 많이 하더라고요. 조재현이 요새 TV에 안 나와서 그런지 나에게 밀리잖습니까. (웃음) 자기도 좋아서 그랬는지 재현이가 ‘요즘에 형 많이 알아보네’ 하면서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어보는데 특별하게 전환점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 확연하게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워낙 오랫동안 시나브로 민초 사이에 적당히 스며든 게 아닐까.
- 능숙한 코믹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본인만의 비법이 있나요.
= 그것은 진정성이죠.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지만 코미디라는 것은 진지해야 돼요. 정말 그 상황에서 진정성을 갖고 연기할 때만이…. 결국 웃는 몫은 관객 몫이기 때문에. ‘이 역할은 재밌기 때문에 웃기를 바람’, 이런 요구를 갖고 연기하는 식이면 곤란해요. 거울을 보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어프로치하는 그런 연기를 하면 조금 더 재밌을 수 있지 않을까. 코믹하다고 저 스스로도 기대하면서 연기를 하면 뜻하지 않게 굉장히 썰렁해진다는 거죠.
- 다음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특별한 것은 없고, 그저 주어지는 것을 잘…. 아, (손홍주 사진팀장을 바라보며) KBS 8년 후배인 손현주 같은 놈들을 넘어서는 것?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