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잠수왕 무하마드> <좋지 아니한家>의 정윤철 감독
2006-11-29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덤덤하게 사는 게 좋지 아니한가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정윤철 감독은 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치동 학원 강사로 지금쯤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달변가다. 소싯적에 전교 7등은 놓치지 않았을 날선 외모에서 쏟아져나오는 조리 분명하고 강약 확실한 문장의 추임새가 그 증거다. “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로도 아인슈타인처럼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맺는 관성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근사한 말은 두 번째 증거다. 물론 첫 영화 <말아톤>으로 생각에 넘치는 성공을 거둔 정윤철 감독은 현재 대치동 학원 강사만큼 바쁘다. 한편의 영화를 막 개봉시켰고 또 한편의 촬영을 두달 전에 끝내고 편집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인권옴니버스영화 <세가지 시선>의 <잠수왕 무하마드>, 후자는 김혜수, 천호진, 박해일, 정유미가 출연하는 장편 <좋지 아니한家>다. 유독성 가스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알고보니 타이의 잠수왕이었다는 15분짜리 단편은 능글스럽게 능숙한 리듬은 물론이거니와 초현실주의적인 감미료와 리얼리티의 행복한 결합이 딱 정윤철표다. 그런데 웬걸, 40대 수학 교사 가족의 골때리는 집안 사정에 대한 블랙코미디 <좋지 아니한家>의 시나리오를 읽다보니 행간 채우기 퍼즐에 빠진 기분이다. 아버지는 모종의 위기에 말려들고, 갱년기 엄마는 커피자판기 피라미드에 빠지고, 무명 무협작가 이모는 바람맞고, 아들과 딸은 사춘기, 아들의 여자친구는 미스터리한 원조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족, 너무나도 덤덤하다. 수리탐구영역의 비밀을 캐는 인문계 학생의 심정으로 정윤철 감독과 마주앉았다.

-현장 공개 같은 홍보 행사가 따로 없어서 다들 정윤철 감독은 뭐 하나 궁금해한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알다시피 마케팅 컨셉을 잡기가 쉬운 영화는 아니다. 중심 주인공이 있다기보다는 여러 명의 가족이 나오는 영화고, 중간에 제목도 <심’s 가족>에서 <좋지 아니한家>로 바뀌기도 했고.

-제목을 바꾼 이유는 뭔가.
=<심’s 가족>은 애매하고 또 너무 가족에 국한된 영화처럼 들려서. 사실 <좋지 아니한家>가 원제였으니 처음으로 돌아간 거다.

-<좋지 아니한家>도 애매한 제목이긴 마찬가지다. 가족에 국한됐다는 말은, 김태용 감독과 친분이 있는 덕에 <가족의 탄생>과 비슷한 영화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홍보하면서도 ‘가족’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지겨운 가족, 영화에서도 보고 싶겠냐 싶을 테니까. 사실 <좋지 아니한家>는 가족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며, 사람들을 어떤 시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21세기의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유형이랄까. 덤덤한 가족.

-덤덤한? 쿨한 것과 비슷한 건가.
=쿨하다는 표현은 수입된 개념이라고 본다. 게다가 제대로 수입되지도 못한 나머지 압구정동 소비자적 이미지로 변질되어 정착됐을 뿐이며, 보편성도 별로 없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결국은 쿨을 위한 쿨을 핥는 것에 불과하잖나. 쿨을 넘어서는 21세기의 새로운 개념이 바로 덤덤함이 아닌가 싶다. 덤덤하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살 수가 없다. 멀쩡한 건물이 무너지질 않나, 전쟁이 난다 난리들이질 않나, 또 정치적으로 황당한 일들도 워낙 많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덤덤함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좋지 아니한家>의 테마인가.
=덤덤이라는 것이 21세기 디지털 세계를 견디기 위한 새로운 화두가 아닐까 싶다. <좋지 아니한家>는 덤덤한 가족 그리고 주변의 덤덤한 인간들. 그렇게 덤덤함 캐릭터들로 꾸린 영화다. 덤덤함이 좋지 아니한가.

-시나리오 잘 쓰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도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유갑열 작가의 시나리오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말아톤> 때 시나리오를 쓰는 게 너무 힘들었던 탓에 차기작은 이미 씌어진 시나리오로 했으면 했다. 그러다가 유갑열 작가의 시나리오를 봤는데, 그 순간 덤덤함을 느꼈다. 가족이란 게 알고보면 참 힘들다. 내가 가족 구성원을 이해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갈등도 생겨나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 자신도 이해를 못하는 게 인간인데 어찌 남을 이해하겠나. <좋지 아니한家>의 인물들은 너무 덤덤하다. 상대를 이해할 필요없이 그냥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Understand’의 시대가 아니라 ‘accept’의 시대가 아닌가 싶더라. 그런 이야기를 골때리게 표현한 캐릭터들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좋지 아니한家>가 바로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덤덤하게 계몽적이다. 그러고보면 <잠수왕 무하마드>도 덤덤하게 계몽적인 영화다.
=(웃음) 덤덤하게 계몽적인 게 맞는 표현이다. 만들고 생각해보니 두 영화 사이에 공통점이 있더라. 함부로 누군가를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잠수왕 무하마드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능력이 있지않나. 누군가에게 숨겨진 능력이 있다는 걸 알면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잠수왕 무하마드>는 무하마드를 동정하도록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동정보다 차원이 높은 것이 존중이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존중하게 되고 동등하게 대한다. <말아톤>도 마찬가지다. 초원이의 달리는 능력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동정의 시각을 거두고 존중을 품게 된다.

-스스로는 덤덤한 사람인가.
=물론 그렇지 못하다. 집착도 강한 편이다. 그래서 덤덤한 영화들을 만들면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려한다. 사실 <좋지 아니한家>에는 괄호가 있다. (덤덤하니) 좋지 아니한가. (이렇게 모여사니) 좋지 아니한가. (가끔은 달을 보니) 좋지 아니한가. 아주 덤덤한 제목이다. 뭔가 답을 주고 이해시키려는 제목이 아니다. 흥행에 확신은 없는 제목이지만 이왕 가는 거 제목까지 전면적으로 가보자 싶었다. (웃음) 아파트값 뛰어서 열받아 죽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 그냥 받아들이자. 뭐 언젠가는 내려갈 수도 있는 일이니까. 포기나 좌절이나 패배가 아니다. 뭐랄까. 성철 스님 말씀이 갑자기 이해가 된다고 해야할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어차피 자연은 덤덤하게 있는 거고,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거 아닌가. 덤덤한 자세. 그게 21세기적 디지털 마인드다. <좋지 아니한家>의 가족은 디지털적인 최첨단 집에 살고 싶지 않지만 마인드 자체는 21세기적인 디지털 마인드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는 새로운 유머를 지닌 영화가 될 거다. 마빡이 보면 단순한 동작의 반복으로 산다는 게 힘들다는 걸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잖나.

-비교적 아담한 제작비에 비해 배우들 캐스팅이 화려하다.
=다행히 조연쪽으로 캐스팅이 화려하게 됐다. 김혜수와 박해일은 기꺼이 적은 개런티로 동참해줬다. 두 배우들은 기존 영화에서 전혀 보여주지 않은 면을 보여줄 거다. 김혜수는 찜질방 티와 늘어난 추리닝을 입은 완전 백수 무협소설 작가 역인데, <타짜> 찍으면서 동시에 찍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장담하건대 정말 잘했고 자신도 행복해했다. 덤덤한 영화 특별수업 교사 역을 맡은 박해일도 막판에 캐스팅됐는데, 실제 박해일이 갖고 있는 풀어진 모습과 캐릭터의 무미건조함이 섞이면서 가히 우주적인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웃음) 보헤미안적인. 그게 아니고, 뭐랄까. 외계인 같은 존재다. (웃음) 스타가 들어오면 뭔가 이질적이고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좋지 아니한家>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

-정유미는 젊은 감독들이 무척 아끼는 여배우다. 다들 어떤 면에 끌리는 건가.
=입보다는 눈으로 더 많은 말을 하는 배우고, 클로즈업이 굉장히 좋은 배우다. 각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나온다. 같은 사람처럼 안 보여 그게 걱정스러울 정도니까. 뭔가 정형화되거나 정의하기 힘든, 나 역시 아직도 잘 모르겠는 느낌 같은 것이 있어서 감독들의 호기심을 당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번째 시선>의 <잠수왕 모하마드>는 어떻게 가담하게 된 건가.
=지난해 12월 말 대표 프로듀서인 이현승 감독님이 제안해서 하게 됐다. <잠수왕 무하마드>는 영상원 학생이 썼던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거다. 좀더 판타지하게 바꾸었지만 기본 골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3년 전 <말아톤> 시나리오를 힘겹게 쓰고 있을 때 그 시나리오를 처음 봤다. 타자를 우리 식대로 이해하면서 동정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와 또 다른 면을 발견하며 인정하는 관점이 좋았다. 그래서 <말아톤>의 초원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도 많은 영향을 줬다. 무하마드라는 인물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초원이를 풀고 싶었다.

-원본 시나리오에서는 얼마나 달라진 건가.
=무하마드라는 인물이 더 젊고 더 밝은 성격이 됐다. 목욕탕 속 판타지 장면들을 수중촬영으로 찍으면서 원본보다 좀더 판타지한 이야기가 된 거다.

-무하마드가 그토록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다는 설정은 대단히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실은 황당한 거다. 하지만 강렬한 뭔가가 있더라.

-무하마드 역의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한 건가.
=외국어학당 같은 곳에서 한국말 배우던 학생이다. 잘생기고 활발한 타이 청년이다. 카메라발도 잘 받는다. (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그 덕을 본 것 같다. 그 친구의 얼굴 클로즈업에 묘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해진 뒤에 조명 써서 찍다보니까 배경을 잡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클로즈업 위주는 조금 답답해 보이니까. 감독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강렬한 한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잠수왕 무하마드>에서는 무하마드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 공간이 타이 바닷속으로 바뀐다. 어디서 촬영한 건가.
=30년 정도 된 불광동 목욕탕에 물고기 집어넣고 찍었다. (웃음) 그 이후에 타이의 바닷속에서 찍어온 장면과 붙인 거다. 단편이지만 해외 로케에 수중촬영까지 해봤다.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보라고 해서 들어가봤더니 정말 완벽하게 또 다른 세계가 있더라. 하여튼 7천만원 한정 예산의 작품이라 감독 인건비도 안 남았다. 촬영에 모두 한달이 걸렸는데, 사실 단편도 쉬운 게 아니다. 단편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집중 안 하면 함량이 똑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좋지 아니한家>에도 달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얼룩말과 함께 세렝게티 초원을 달리는 초원이도 그랬고, <잠수왕 무하마드>도 그렇고. 판타지를 현실과 결합하는 방식이 흥미롭지만 조금 붕 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주 책(<씨네21> 579호 ‘전영객잔’)에서 김소영 교수는 무하마드가 목욕탕으로 들어갈 때 나오는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이 무하마드의 자의식보다는 감독의 자의식이 두드러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 설정이라고 지적했는데….
=어, 본편에서는 그 노래가 나오지 않는데, 그 곡 대신 기타로 연주한 창작곡이 나온다. 아무래도 가편집본 테이프로 영화를 보신 모양이다. 어쨌든 영화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연극이나 소설에서는 힘든 영화만의 특성이고, 적극 활용하고 싶은 부분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고흐의 <해바라기>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그들의 시선에서 <해바라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그림이다. 그러나 고흐 같은 인상파들은 일상의 사물이 주는 아름다움에서 받은 인상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강렬하게 투영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몽상가적인 캐릭터의 마음을 드러낼 때 좀더 표현주의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화풍을 태생적으로 좋아한다. 그리고 환상을 통해서도 리얼리즘영화의 같은 주제를 말할 수 있다. 내 단편 <동면>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애를 냉동했다가 나중에 해동해 기르는 부모 이야기를 통해 IMF 시절 벌어진 낙태 현상을 그린 작품이다. 관객은 판타지 언어로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면서 좀 덜 계몽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다.

-<말아톤>도 그렇고 <잠수왕 무하마드>도 그렇고, 신인급 감독의 영화로는 너무 말쑥해서 얄미운 데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듣지 않았나.
=<말아톤> 때 그런 말 많이 들었다. 칭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가시가 있는 말이라고 해야 하나. (웃음) <말아톤>의 목표는 확실한 이야기 전달이었다. 이야기조차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영화들이 많지 않나. 물론 데뷔작에서 야심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제1목표는 이야기 전달이 확실한 대중영화에 내 생각을 약간만 토핑하자는 거였다. 정공법대로 찍어보고 싶었던 거다. 고흐나 피카소도 자기 스타일을 만들기 전에 10년 정도는 고전적인 화풍의 그림을 연습했다. 정공법대로 빛과 캐릭터를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된 이후에야 자기 스타일을 내세웠다. 많은 신인감독들이 데뷔 때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데, 나는 감독으로서의 인생이 마라톤처럼 오래 달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훈련을 하고 나서, 그 이후에 구조를 해체하거나 새로운 걸 해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실험정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말아톤>에서는 자제하고 싶었던 거다. 지금 말고 다음에, 제대로 기본부터 해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 말이 나온 건 영화의 리듬을 고르는 솜씨가 능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좋지 아니한家>는 시나리오만으로도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있다.
=그건 편집을 많이 해봐서 그런 것 같다. 편집에 관심이 많아 편집도 많이 했고, 예고편도 많이 만들고, 홍보영화도 해보고. 그러면서 영화적인 리듬감을 익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훈련들이 시퀀스에서 시퀀스로 넘어갈 때 본능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결국 영화란 게 리듬감이 중요한 거니까. 일부러 그걸 깨는 감독들도 있다. 하지만 대중영화 관객은 영화의 리듬이 갑자기 엇박자로 나가면 헷갈려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 인터뷰들에서 좋아하는 감독으로 라세 할스트롬을 종종 꼽았다. 의외였다. 감독들은 대개 근사하고 묵직한 이름을 대게 마련인데.
=화려하고 폼나게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는 거다. 라세 할스트롬처럼 인간 감정과 디테일한 삶의 부분들을 포착해내는 능력은 배운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그런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삶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간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정확히 어떤 스타일을 만들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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