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현지보고] <박물관이 살아 있다!> 감독 및 배우 인터뷰
2006-11-30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밤마다 살아나는 박물관, 초짜 야간경비의 황당 어드벤쳐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화려하면서도 묘하게 서늘하다. 문득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 어딘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밀랍 인형을 바라볼 때 그 느낌은 더 분명해진다. 박제되어 멈추어버린 시간. 그렇지만 사람들이 다 가버린 밤에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 같은 특별한 공간.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야간 경비를 맡게 된 래리(벤 스틸러)가 근무 첫날밤부터 겪게 되는 기이한 모험을 다룬 <박물관이 살아 있다!>는 1993년 크로아티아 일러스트레이터인 밀란 트랭크의 20쪽 분량의 동명의 동화책을 이십세기 폭스사가 옵션을 산 지 10년이 지난 뒤에야, 언제나 무엇 하나 제대로 끝까지 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만큼은 어린 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아버지 래리의 모험담으로 2006년 겨울 극장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자연사박물관의 야간 경비원 업무를 얼떨결에 맡게 된 래리. 그런 그에게 너덜너덜한 안내서 하나만 달랑 쥐어주고는 세명의 선배 경비원들은 “아무것도 박물관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알 수 없는 경고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그날 밤, 깜박 잠이 들었다 깬 래리는 자신이 잠든 사이 거대한 공룡의 뼈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당황한 래리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핑크팬더> 감독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숀 레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박물관이 살아 있다!>에는 래리 역을 맡은 벤 스틸러 이외에도 낯익은 얼굴들이 속속 눈에 띈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세명의 선배 경비원들은 할리우드의 노장파 배우인 딕 반 다이크, 미키 루니, 빌 코브스가 열연했고, 영국 코미디 TV시리즈 <오피스>로 명성을 얻은 리키 저비스도 래리를 못마땅해하는 뮤지엄 디렉터로 등장한다. 또한 밤마다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캐릭터들 중에는 유일하게 래리에게 호의적인 루스벨트 역으로 로빈 윌리엄스를, 미국 철도시대의 카우보이 역으로는 오언 윌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고의 판타지는 현실에 한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숀 레비 감독, 그런 그의 말대로 박물관의 모든 것이 밤마다 살아난다라는 초현실적인 아이디어는 과장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스타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액션어드벤처영화로 자리잡을 것 같다.

시사행사에는 감독인 숀 레비와 벤 스틸러, 딕 반 다이크가 참석했는데, 숀 레비와 벤 스틸러는 뒤바뀐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벤 스틸러가 다소 지루할 정도로 진지하고 얌전하다면, 감독인 숀 레비는 인터뷰 내내 재치있는 대답으로 좌중을 리드하는 모습을 보였다.

숀 레비 감독

“잘빠진 비주얼 이펙트보다는 코미디가 우선이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야간 경비를 맡게 된 주인공과 밤마다 살아나는 박물관이라는 아이디어가 너무나 신선했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막상 찬찬히 뜯어보면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이전 이야기의 변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하는데 이번 아이디어는 듣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아이디어 자체가 co-star인 셈이다.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벤 스틸러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코미디 배우 중에서 영리하고, 재치있다. 무엇보다 실재한 듯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이다. 다들 비슷하게 웃길지 몰라도 벤 스틸러는 캐릭터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나는 관객이 인지하는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에 바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우를 원한다. 그리고 운 좋게도 가장 원했던 배우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벤 스틸러는 영화 밖에서 만나면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나.
벤이 평소에 그다지 재미없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웃음) 그렇지만 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웃는다. 그런데 그게 벤의 코미디 코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는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두들 그를 싫어한다. 그의 전작들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나 <미트 페어런츠>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이번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벤 스틸러가 분한 래리는 사자와 귀여운 원숭에게 미움을 받으며, 미키 루니에게조차 미움을 받지 않는가. 내가 당하면 비극이지만, 남이 당하면 코미디라는 말대로 벤 스틸러의 코미디는 그를 둘러싼 주위가 그를 싫어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현장 애드리브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배우 스스로는 자신이 애드리브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별로 일 때 그때는 확실히 거슬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의 벤 스틸러, 로빈 윌리엄스, 리키 저바이스들은 시나리오를 감독이나 작가만큼이나 이해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감독은 그런 배우들의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게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처리하는 비주얼 이펙트 영화다. 컴퓨터그래픽 작업의 특성상 여러 제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당일날 신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도 했다는데….
촬영 들어가기 전에 비주얼 이펙트 영화는 한번 스토리보드를 짜고 나면 그 뒤는 계획대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비주얼 이펙트 촬영 첫날, 벤과 내가 한신 전체를 바꾸어버렸다. <나니아 연대기>의 비주얼 이펙트를 맡았던 팀에서 난리가 났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라고. 아무리 멋있고 유려하게 비주얼 이펙트가 나와도 코미디영화에서 웃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결국 내가 이긴 셈이다. (웃음)

배우 벤 스틸러

“사람대신 이쑤시개를 두고 연기하느라 외로웠다”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땠나.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더라. 이번 작품은 특히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많아서 상대 배우없이 연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약간 외로웠다고 해야 하나? (웃음) 이를테면 영화에서는 오언 윌슨과 대화하는 장면이 많지만, 실제로 오언과 세트장에서 함께 연기한 것은 단 하루였다. 대부분 글자 그대로 오언 대신 이쑤시개를 두고 20가지의 각기 다른 버전의 연기를 해야 했다.

영화에서 래리가 추근대는 직업상담원이 실제 어머니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땠나.
아주 이상했다. (웃음) 몇몇 장면은 너무 이상해서 잘라냈다. 어머니는 유쾌한 분이셔서 같이 연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원숭이에게 뺨을 수차례 맞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인가.
그렇다. 작은 손이지만 반복적으로 계속 맞아야 했기 때문에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나중에는 기분이 좀 나빠졌다.

영화에서는 과거의 인물들이 되살아나온다. 다시 되살아나왔으면 하는 인물이 있다면.
마틴 루터 킹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인물을 존경한다.

배우 닉 반 다이크

“빨리 내 손자 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영화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숀 레비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행 중인 시나리오에 대해 벤 스틸러와 다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물론 벤의 부모(둘 다 유명한 코미디 배우)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벤 스틸러는 그때 처음 만났다. 벤과 함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꼭 하고 싶었다. 가족영화는 언제나 즐겁지 않은가. 내 손자 손녀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다.

과거 속의 인물을 끄집어내고 싶다면 누구를.
해리 트루먼이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요즘은 정치꾼만 난무하지 진정한 정치가가 없다.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어떠했나.
이번 영화에서 내가 맡은 블루 스크린 분량은 많지 않다. 블루 스크린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메리 포핀스>에서는 거의 절반이 블루 스크린 연기였다.

과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과거 할리우드와 오늘날의 할리우드를 비교하자면….
할리우드는 지리적으로 바로 이곳이야라고 집어낼 수 없는 개념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까. 과거 할리우드라 함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커뮤니티 그 자체를 의미했다. 이를테면 지금은 사라진 슈왑 드럭 스토어(SCHWAB’S DRUG STORE)가 연상케하는 이미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특별하게 약속을 잡지 않아도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영화 스탭들을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그런 상징적인 공간 말이다. 요즘은 모르겠다. 예전의 할리우드 이미지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오늘날에는 특히 세계 각지로 가서 영화를 만드니까 더더욱 그렇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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