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잊고 본다면 (가령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면) '놀라운 데뷰작, 창의성에 한표!' 라며 반색할 영화이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이름에서 비롯된 기대를 염두에 둔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는 작품이다. 감독 스스로 '소품(小品)' 이요, '로멘틱 코미디' 라 밝혔고, HD 영화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한 메시지를 포함하거나 엄청난 비주얼을 갖춘 영화는 아니다. 다만, 자신을 싸이보그라 생각하는 거식증 소녀와 그녀를 살리려는 '안티-소셜(Anti-Social)' 청년의 소통을 그린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척 따뜻하다. 첫째, 다른 이의 망상(환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며, 둘째, 다른 이의 습성을 훔치는 '안티-소셜' 청년은 다양한 '-되기'를 실현하는 자로, 그의 ‘분열증’은 역설적이게도 '소셜(Social)'을 넘어서는 치유의 힘을 지닌다는 것. 영화의 비주얼은 산뜻, 발랄하며, 특히 도입부 자막 처리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로멘틱 영화, 이와이 순지의 <피크닉>과 비교하자면, 박찬욱 감독의 정신병에 대한 시선이 훨씬 경쾌하고 낙천적임을 알 수 있다. 신인 배우 정지훈의 연기는 무난하고 잘 어울리며, 임수정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다.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캐릭터를 그녀는 특유의 청순함과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살려냈다. 하지만 큰 사건도 없고, 지극히 몽상적인 이 영화가 후반부에 관객을 다소 지루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큰 기대를 접고, 마음을 비우고 보시라. 그리하면 청량감과 약간의 찡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황진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