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전문가 100자평] <중천>
2006-12-18

시작은 아주 좋다. 통일신라 말기, 왕실 퇴마부대 처용대, 죽은 영혼들이 49일간 머무는 중천이라는 곳 등등, 뭔가 큰 스케일에 우주론적인 구색도 갖춰져서 "하악~이제 재밌는 이야기를 해줘~"라는 목소리가 목젖을 간지럽힌다. 그런데 김태희가 등장하고 정우성과 쫓기기를 반복하다가 "내가 왜 널 신경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같은 시트콤 대사를 듣는 순간, 용두사미가 될 것 같다는 강력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빈번한 플래쉬 백으로 어느정도 갈등의 윤곽이 파악되면, 전형적인 인물들이 빚어내는 평면적인 이야기가 장대한 우주론적 스케일의 바람을 푹 꺼뜨림을 목도하게 된다.

패착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시나리오가 아마추어적이라는 것, 둘째, 어리버리한 김태희 캐릭터. 유치한 대사는 극중 상황과 물과 기름처럼 겉돌아서 좀처럼 감정이입이 불가능하게 하며,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등장인물 몇 명간의 감정싸움으로 의미축소 되어버린다. 김태희 캐릭터의 문제는 배우의 연기가 극히 표피적이었다는 것도 큰 문제(그녀는 왜 하필 김희선의 전철을 밟고 있는가?)이지만, '천인'이라는 존재를 잘못 설정한 탓도 크다. '천인'은 기억을 잊고 해탈한 존재이고, 그녀는 중천의 열쇠를 쥔 자임에도 그만한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쥔 자가 기껏 '호빗-프로도' 였음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러나 '프로도'가 품은 용기와 인내와 사심없음 등이 그의 잠재적 역량으로 잘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관객은 설득이 되고 그 함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천>의 그녀는 시종 어리버리 하기만 할 뿐이다. 'childish(유치함)' 와 'childlike(천진함)'이 다르며, '해탈'은 기억의 삭제가 아닌 초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뭉뚱그리고 '글썽거리는 남자와 맹한 소녀의 허둥지둥 뻘짓'을 반복하여 보여줌으로써 극의 긴장을 확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원천기술'은 따로 있다. "그래픽의 완성도는 관객의 마음을 녹이지~"(by 산드라) 삼국유사의 지귀가 떠오르는 불타죽는 영혼 등 볼만한 장관들이 꽤 많다. "이런 영화, 연기 보러 가나? 비주얼 보러 가지..." 그 마음 극장에서 나올때까지 변치마시길. -황진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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