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의 신작 <오래된 정원>이 12월 18일 언론에 공개됐다. 배우들과 함께 무대인사에 오른 임상수 감독은 “그동안 내가 고리타분한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리타분하리라는 그 편견을 이번에도 깨게 될 것”이라며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을 80년대 운동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관통했음을 자신했다.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래된 정원>은 80년대의 젊은 활동가 오현우(지진희)와 그가 도피 중에 만난 한윤희(염정아), 그들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들은 조그만 시골 마을 갈뫼에서 꿈결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친구들이 하나 둘 붙잡혀 들어가자 책임감을 느낀 오현우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이내 검거된다. 그 뒤로 17년간 옥살이를 하며 오현우와 한윤희는 만나지 못한다. 영화는 그의 출소일에서 시작된다. 오현우는 한윤희가 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갈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윤희가 남겨 놓은 그림과 일기를 보며 회상에 젖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지진희는 “소설을 3분의 2쯤 봤다. 끝까지 안봐지더라. 이미 시나리오를 봤기 때문에 소설의 인물은 잘 안 들어오더라. 시나리오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염정아는 한윤희 역에 관해 “(오현우와 영작, 그리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억압받았던)그들을 안타까워 한 여자, 멋있는 여자, 한윤희라는 역을 연기해서 행복하다. 감독을 믿고 따랐다”고 전했다. 임상수 감독은 “정치적인 견해가 있어야만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배우들에게 이야기했다. 정치적인 얘기보다는 감정을 더 중시하면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오현우가 복잡하고 달라진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지 윤희의 노트를 읽으며 생각하고 또 그로써 치유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원작과 비교해 볼 때 우선 눈에 띠는 영화의 특징은 한윤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사실 한윤희의 영화”라는 임상수 감독의 말은 이 영화를 보는 열쇠에 가깝다. 한윤희의 부분 중에는 영작이라는 학생 운동가와의 에피소드도 있는데,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영작이라는 인물의 과거라 할만한” 동명의 대학생이다. 영작이라는 인물을 개입시키면서 <오래된 정원>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과 함께 일면 ‘임상수의 현대사 삼부작’ 성격을 띠게 됐다.
임상수 영화 특유의 면도날 같은 시각과 냉기를 선호하는 관객들이라면 <오래된 정원>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야유가 잦아든 그 자리에 들어선 질문은 '서정시가 불가능한 시절의 힘에 의해 결국 실패해 버린 이 슬픈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지금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다. <오래된 정원>이 지금까지 임상수의 영화 중 제일 뛰어난 영화는 아닐지라도, 가장 온기가 흐르는 영화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