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원해진다. 선남선녀란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속의 킹카 퀸카와는 뭔가 다른, 선계(仙界)에서 온 듯한 남과 여의 조우. 정우성과 김태희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상상 속 공간 ‘중천’의 두 주인공이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들은 조동오 감독의 판타지 무협액션영화 <중천>에서 이승에서의 사랑을 사후세계에도 이어가는 커플로 등장한다. 열렬히 사랑하던 두 사람 중 세상을 먼저 뜨는 것은 연화(김태희)다. 그녀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곽(정우성)은 어느 날 괴이한 기운에 끌려 중천 속으로 떨어지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 하지만 이곽이 만난 것은 연화가 아닌 소화다. 중천으로 오면서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은 연화는 소화라는 이름의 천인이 된 상태. “판타지적인 요소나 액션보다 중요한 것은 이곽과 소화 또는 연화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라는 조동오 감독의 말에 따른다면 결국 <중천>을 이끌어가는 핵심은 두 배우의 멜로 연기다. 사진 촬영 중 정우성이 허리를 끌어안으려 하자 깔깔 웃으며 몸을 빼는 김태희의 모습을 보고 있자 하니 과연 멜로 연기를 어떻게 했을꼬,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다정스러운 연인처럼 얼굴을 포개는 상황에서는 질투심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의 친밀감이 느껴진다. 정우성의 능청스러움과 김태희의 새침함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쏟아낸 함박눈 같은 웃음으로 이들의 크리스마스 데이트는 더욱 포근해 보였다.
씨네21
검색관련 영화
관련 인물
최신기사
-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의 건너편
-
[인터뷰] 배우의 역할은 국경 너머에도 있다 TCCF 포럼 참석한 네명의 대만 배우 - 에스더 리우, 커시 우, 가진동, JC 린
-
[인터뷰] ‘할리우드에는 더 많은 아시아계 프로듀서들이 필요하다’, TCCF 피칭워크숍 멘토로 대만 찾은 미야가와 에리코 <쇼군> 프로듀서
-
[기획] 대만 콘텐츠의 현주소, 아시아 영상산업의 허브로 거듭나는 TCCF - 김소미 기자의 TCCF,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 방문기
-
[비평] 춤추는 몸 뒤의 포옹, <아노라> 환상을 파는 대신 인간의 물성을 보여주다
-
[비평] 돌에 맞으면 아프다, <아노라>가 미국 성 노동자를 다루는 방식
-
[기획] 깊이, 옆에서, 다르게 <아노라> 읽기 - 사회학자와 영화평론가가 <아노라>를 보는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