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사탕공장 공장장의 딸,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캐서린 제타 존스
2001-09-26
글 : 최수임

“언론의 관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죠.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어요. 난 바보 같은 말만 했고, 그건 곧바로 인쇄돼 나왔죠.” 배우에게, 기자를 만나고 사진을 찍히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성가신 일일 것이다. 영국 웨일스의 시골에서 태어나 데뷔 수년 만에 할리우드의 스타가 된 캐서린 제타 존스의 경우, 정말 기자는 한없이 고고하거나 한없이 비루한 존재였다. 봐달라고 할 땐 시선도 주지 않고, 가만히 놔두었으면 할 땐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사회 행사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인 배우들의 이야기, <아메리칸 스윗하트>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의 감회는 새로울 만도 하다.

“처음으로 정킷(언론 대상의 시사회와 출연 제작진들의 인터뷰를 겸한 행사) 갔을 때가 기억나요. LA에서 있었던 <팬텀> 정킷이었죠. 어땠냐고요? 전 인터뷰를 받게 해달라고 사정해야 했어요. 파라마운트 픽처스사로부터 정킷에 갈 수 있는 티켓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고생했죠. 어떻게든 제 에이전트는 그걸 얻어냈고, 난 라운드 테이블에 앉았어요. 근데 어떻게 된 줄 아세요? 마치 나라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다는 듯, 아무도 아무 질문도 내게 안 하는 거예요. 단 한 질문도요.” 물론, 지금은 “아이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갈라치면, 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스무명씩이나 공원에 깔려 있는지 설명을 해주어야겠죠”라고 불평의 내용이 바뀌어 있지만, 제타 존스도 한때는 자기 앞으로 몰려드는 뜨거운 마이크들 앞에서 전전긍긍하던 때가 있었다.

풍성한 검은 머리와 도발적으로 육감적이면서도 어딘가 클래식한 몸매. ‘타고난 배우’인 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배우를 꿈꾸던 어린 시절은 짭짜름하고도 달콤했다. 아마도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영화일 <블루 쥬스>의 배경처럼, ‘영국의 마지막 군’까진 아니더라도 작디작은 웨일스 스완시의 바닷가마을 ‘멈블스’에서 태어난 그녀의 자랑은 다름 아니라 사탕공장 공장장인 아버지. 아빠 품의 캔디향을 사랑하며 자란 소녀는 11살 어린 나이에 동네의 극장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곧 뮤지컬 의 코러스걸이 되었다가 어느날 펑크를 낸 주연 대역을 한 이후 다시 코러스걸로 돌아가지 않았다.

20대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는 더욱 많은 행운이 따랐다. 무대 위의 그녀를 본 프랑스감독 필립 드 보르카에 의해 21살의 제타 존스는 <셰헤라자드>로 영화데뷔를 했고, TV드라마 로는 영국 내 인기탤런트가 되었다. 스필버그가 영국TV물 <타이타닉>에서 그녀를 보고 반해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 여주인공으로 발탁한 건 잘 알려진 이야기. 가면 속 조로의 눈빛에 사로잡히고 그의 칼짓에 드레스를 잃어버리고 마는 스페인 여인 엘레나의 이미지는, 이후 숀 코너리와 짝을 이뤄 미녀 미술품 도둑을 연기한 <엔트랩먼트>, 공포물 <더 헌팅>에서의 자유분방한 양성애자 캐릭터 등 후속작들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확장됐다. 심지어 로맨틱코미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도 그녀는 예의 남자들을 휘어잡는 뇌쇄적인 이미지를 견지한다.

<오스틴 파워>에서 엘리자베스 헐리,<툼 레이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맡은 배역을 제안받기도 한 제타 존스는 이제 명실상부한 할리우드의 섹시스타.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은 그런 그녀의 연기를 인정받게 해준 작품으로, 임신 6개월의 부른 몸은 가정을 위해 마약거래에 나서는 젊은 여자 캐릭터에 효과적인 아우라를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25살 연상의 할리우드 거물 마이클 더글러스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이젠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할 만큼 아들 딜란에게 빠져 있는 캐서린 제타 존스. 배우들의 이야기 <아메리칸 스윗하트>는, 그런 그녀에겐 지난 10년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해 던지는 가벼운 농담 같은, ‘이젠 익숙해진 정킷’ 같은 영화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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