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사> <봄날은 간다> 제작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 [1]
2001-09-26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아시아 시장에서 제일 센 영화사가 되고 싶다”

차승재 대표가 “우리도 서울 50만 한번 넘어봐야지”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놀란다. 서울 50만.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한해에 한국영화 서너편은 이 선을 넘는다. 한국영화계 파워맨 중에서도 몇년째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으며 한때 타율 100% 제작자로 불리던 그가 아직 이 소박한 목표조차 이루지 못한 것이다. 우노필름 시절부터 차승재 대표는 변함없이 도전적인 대중영화를 제작해왔다. 그 도전적인 요소가 시장에선 그의 표현대로라면 ‘저항선’을 만들어냈지만 대신 그에겐 가장 창의적인 프로듀서라는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제작사 우노필름에서 종합엔터테인먼트기업 싸이더스의 지휘자로 변신한 뒤로 그는 얼마간 부진해 보였다. 흥행작이 오히려 드물어졌고, 무엇보다 작품성이 들쭉날쭉했다. <썸머타임>에 이르러선 “이것도 차승재 영화냐”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무사>와 <봄날은 간다>는 차승재 대표에 대한 그간의 의구심을 접을 만한 성과다. 스타와 대규모 마케팅이 동원된 장르영화의 범주에 들지만, 두 작품은 주류영화의 한계를 거의 침범하면서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을 각인한다. 출범 1년6개월 만에 싸이더스 사장직에 오른 차 대표는 god 등의 인기 가수들과 정우성, 전지현, 차태현 등 기라성 같은 스타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영화제작자임을 자임하며 대중영화의 경계를 한뼘씩 넓혀가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목표는 서울 50만이 아니라 150만”이라던 <무사>의 기세가 미국 테러사건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고심하고 있는 차승재 대표를 만났다.

-미국 테러 때문에 <무사> 성적이 주춤하다. 운이 없는 것 같다.

=운은 안 따르는 인간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영화하면서 영화 외적으로 도움 받은 것이 거의 없다.

-사람 복은 있는데 시운은 별로인가보다.

=시운까지 있었으면 내가 이거 하고 있겠나. 뭔가를 도모했겠지. (웃음) 오늘 아침에 임원회의를 하는데 답답하더라. 뭔가 노력해서 반전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개인으로서 너무 무력하니까 말이다.

-<무사>는 70억짜리 프로젝트인데 유달리 초조하지 않았나.

=아니다. 70억짜리나 7억짜리 영화나 나한텐 똑같다. 영화일 뿐이다. 가장 불안했던 작품은 오히려 <인디안 썸머>였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 영화의 경우 편집을 하고 나면 어떤 기준이 생긴다. 이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고, 그래서 결과물은 이렇게 될 것이고, 이런 기준이 생기면 현실에서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근데 <인디안 썸머>에는 기준이 안 생기더라. 내가 공부해야 할 부분은 좀더 대중적인 영화쪽인 것 같다.

-어쨌든 우노필름 시절부터 현재까지 처음으로 서울관객 50만명을 돌파하지 않았나.

=서울 100만명 돌파는 확신한다. 애초 300만∼400만명 사이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여기에 조금 못 미친 정도가 나올 것 같다. 어차피 이 영화로 600만, 800만명은 생각해본 적 없다. 어느 정도 저항선이 있는 영화다. 그러고보니 우리 영화에는 늘 저항선이 있었다. 저항선이란 용어는 우리 회사에서만 쓰는 용어다.

-저항선을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생산하는 것 아닌가.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싸이더스라는 회사가 예전부터 흥행만을 위해 영화를 해온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에겐 어떤 암묵적 동의가 있는데, 설렁설렁 쉬운 건 하지 말자는 것이다. 센 것, 힘든 것,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있는 편이다보니 저항선이 없는 기획을 내보면 직원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그런 시도를 계속할 거다. 한국시장이 굉장히 좁기 때문에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특정한 장르나 스타일로만 가긴 어렵다.

-우노 시절부터 창의적인 대중영화를 주창해왔다. 그런데 구경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슬아슬하다. 대중성과 창의성이 공존한다는 게 쉬운 게임이 아닌 것 같다.

=1cm라도 지평을 넓히는 것이 내가 영화를 하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그것도 쉬워진다. 그렇다고 아주 특별하게 어려운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젠 아예 체질이 된 것 같다.

-<무사>를 보면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진짜 고집쟁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는데도 아직도 어떤 고집이 영화 속에 들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감독의 고집이기도 하고 감독의 고집을 어느 선까지 존중해주는 회사의 고집이기도 할 테고. 하지만 그런 고집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고집이라는 단어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무사>에 관해 제작자로서의 고민만을 얘기한다면, 이 작품은 <봄날은 간다>와 함께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한 영화였다. 그런데 김성수 감독의 경우 국내에 비해 해외지명도가 약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 하나의 중압감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양식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중국 스타일도, 일본풍도 아닌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것을 한국영화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제작자로서의 자존심도 있었다. 그게 고집으로 비쳐졌다면 고집인 것이겠지.

-그 고집은 제작자 차승재의 고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감독들의 창의력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싶다. 한국영화를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영화가 좀더 탄탄해지고 좋은 작품이 나오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길게 봐야 한다. 화학비료를 써서 당장의 소출을 많이 낼 것인가, 유기농법을 써서 지력을 단단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영화 비즈니스 하는 데는 후자의 방식이 맞다고 본다.

-<무사>가 해외에서 얼마나 소구력이 있을까.

=일단 프랑스에서 40만달러로 계약한 것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최소한 500만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본다. 프랑스에서 메이저 배급업체인 M6에 판매했다는 게 중요하다. 유럽시장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유럽 외 지역은 어떤가.

=동아시아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CJ에서 직배하는데, 전체적으로 약 50만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본다. 일본은 시장이 크니까 한국영화 최고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금액과 관계없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북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느냐다. 맨 처음 생각할 때 유럽시장까지는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문법적으로 볼 때 서구적인 문법을 택해서 갔다. <와호장룡>이 오리엔탈리즘이나 이국성을 무기로 삼았다면, 우리는 서양, 할리우드가 쌓아놓은 문법으로 승부를 해보자고 했다.

-<봄날은 간다>는 해외시장 공략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허진호 감독은 동아시아에 지명도를 갖고 있다. 욕심을 낸다면 그의 이름이 유럽쪽으로 알려졌으면 한다. 그런데 <봄날은 간다>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문법은 너무 동양적이다. 또 정말 아시아인이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시아적 일상성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유럽사람들이 한방에 허진호를 알아보기는 힘들 것 같다. 필모그래피가 쌓여 그들이 어떤 일관성을 발견할 때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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