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7일 웨스트 할리우드의 퍼시픽디자인센터에서 열린 ‘*Below The Line Screening’에서 <판의 미로: 오필리아의 세개의 열쇠>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와 촬영감독 기예르모 나바로가 할리우드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함께 10여년 넘게 작업하고 실제로 이웃이기도 한 두 사람에게는 오래된 부부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신뢰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해피엔딩보다는 만족스러운 엔딩을 추구한다는 델 토로 감독은 동화와 현실이라는 서로 다른 색깔의 세계가 나란히 대비되어 만들어내는 긴장을 영화 내내 유지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에게 동화의 세계가 매력적인 것은 맘먹은 대로 고쳐지지 않는 현실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푸른빛의 현실 세계와 크림색의 환상의 세계는 델 토로 자신이 직접 그린 200쪽에 이르는 스크랩북에 따라 그대로 재현되었다. 직접 프로듀싱하고,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사운드 작업까지 관여한 델 토로는 할리우드 영화인들 앞에서 자신이 바로 이야기 자체라고 말할 만큼 여유와 자신감을 스스럼없이 내보이길 주저하지 않았다.
촬영감독 나바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실제로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묘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느냐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영화 전체가 오필리아의 특별한 여정인 만큼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계속 움직였다는 그는 *커버리지 확보에 연연해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델 토로 역시 많은 커버리지를 확보하는 것은 현장에서 결정해야 할 스토리텔링을 편집실 안으로 미루는 것일 뿐이라며 이는 결국 스튜디오가 편집에 관여할 여지를 더 많이 줄 뿐이라고 덧붙인다. 그들의 단호한 자신감은 감독의 편집권이 보장되지 않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처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델 토로는 성공이라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의 방식대로 망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영화는 스튜디오의 취향이나 타깃 관객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만들어져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만들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멕시코 영화인으로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여전히 유지하며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자리를 천천히 잡아가는 기예르모 델 토로와 나바로가 가는 길은 할리우드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영화인들이 한번 눈여겨볼 만한 행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