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은 어딨지? 파주종합촬영소 B세트장에 여장을 푼 영화 <복면달호>. 습관처럼 주인공부터 찾아보지만 당최 눈에 띄지 않는다. 2 대 8 가르마에 빛나는 양복을 차려입은 차태현이라. 머릿속에서 혼자 킥킥거리며 주위를 살피긴 하는데 헛수고다. 저녁 먹고 나서 휴식이라도 취하고 있는 건가. ‘언젠가 등장하겠지’, 포기하고 어슬렁거린 지 얼마 뒤. 아무도 없던 빈 세트 한편에서 검은 패딩점퍼를 둘둘 몸에 말고서 신나게 ‘썰’을 풀고 있는 누군가가 레이더에 잡힌다. 스탭인가, 했는데 뚫어져라 쳐다보니 차태현이다. “현장에서 원래 떠드는 편이 아닌데. 아니다. 장난은 좀 친다. 가만있는 편은 아니지, 내가.” 차태현은 장난기 듬뿍 담긴 웃음을 섞으며 두툼한 웃옷을 벗는다. 아니, 가르마 대신 장발이라니. 게다가 반짝이 의상이 아니라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복면달호>는 밤무대를 전전하지만 로커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하는 청년 달호가 원치 않게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다. 오죽 쪽팔렸으면 복면까지 쓰고 무대에 섰겠는가. 달호 역을 맡은 차태현이 트로트 가수라면 모름지기 갖춰야 할 의상과 헤어 대신 로커의 외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설정 때문이다. 차태현은 “극중에서 부르는 노래도 그렇다. 정통 트로트 가수처럼 구성지게 부르지 않는다. 일종의 세미다. 록과 트로트가 섞여 있다”고 설명한다.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트로트 가수에게 창법을 배우긴 했지만 극중 공연장면 등에서는 많이 부르진 않는다고. 그래도 보고 듣는 이들에게 차태현의 세미 트로트는 꽤나 신선하고 재미나다. 장 사장(임채무)에게서 ‘감정 넣고’, ‘어금니 물고’, ‘목소리 꺾고’라는 잔소리를 들어가며 나훈아의 <갈무리>를 부르는 장면 리허설에서 이소연, 정석용 등의 배우들과 스탭들은 차태현의 손짓 하나에 쓰러진다.
<복면달호>는 <사무라이 픽션>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이토 히로시의 <샤란큐의 엔카의 꽃길>이 원작이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연출 전공 출신이지만 졸업 뒤 투자사에서 제작관리 일을 맡아오다 데뷔하게 된 김상찬 감독은 “처음엔 배우들에게 시연을 먼저 하곤 했는데 외려 역효과가 나더라”면서 “촬영하면서 자연스레 먼저 하는 거 보고 나서 주문을 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날 지하 연습실 촬영에서도 김 감독은 모니터를 반복하면서 달호와의 로맨스 라인을 만들어가는 차서연 역의 이소연에게 조금씩 웃음의 강도를 높이라고 조심스레 주문했다. “오버해서 웃기려드는 영화가 아니다. 보는 이들이 창피할 정도로 안쓰러운 코미디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 “인물들을 어떤 국면으로 몰아가는 상황들만으로도 충분한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감독의 덧말. <복면달호>의 제작사는 인앤인픽쳐스로, 오랫동안 영화 만들기를 꿈꿔왔던 개그맨 이경규가 차린 영화사다. 90% 정도 촬영을 끝내고 현재 큰 공연장면만 남겨둔 <복면달호>는 2007년 설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연출부 세컨드 문희주씨
“전문 배우는 아니지만 저도 연기 좀 합니다”
연출부 세컨드인 문희주씨는 반(半)연기자다. “배우들에게 직접 시연을 한 적이 있는데 잘 안 돼서 한번 시켜봤다. 그런데 너무 잘해서 그 뒤로 계속 기용하고 있다.”(김상찬 감독) 그는 배우들의 분장과 의상을 챙기는 본업 외에도 단역 출연 등을 겸하느라 항상 분주하다. 이날도 그는 다른 스케줄 때문에 먼저 현장을 떠난 임채무의 대사를 대신 차태현에게 쳐주는 역할을 맡았다. 가장 자신있는 건 취객 연기. <복면달호>에서도 여러 번 비틀거렸다. “술은 한잔도 못 마신다. 대신 술자리를 좋아해서 취한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삼거리극장> 연출부 때는 포스터 촬영까지 했다고. “포스터 보면 중절모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나다. 다들 천호진 선생님으로 알겠지만. 갑자기 선생님이 오지 못해서 대타로 나섰다.” 촬영감독이 되겠다고 캐나다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뒤늦게 연출에 대한 욕심이 발동해서 연출부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역사물이나 사회비판 코미디로 데뷔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