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월13일(토) 밤 11시
(이란에서) 여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 세명의 여자가 있다. 첫 번째 여자. 아홉살 생일이다. ‘결국’ 여자가 되는 날이다. 소녀 하바에게는 이제 정오까지 약 한 시간, 마지막 자유가 남았다. 모래 위의 그림자가 짧아진다. 남자친구 하산은 하바의 부르카를 배의 돛으로 만들어 바다에 떠내려보낸다. 그러나 막대기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세상이 온통 빛으로 뒤덮이는 그 순간, 하바의 삶은 검은 부르카 속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여자.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쉴새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여인들의 무리 속에 아후가 있다. 남편과 마을의 남자들이 말을 타고 아후를 쫓아온다. “내려와!” 아후는 달리고 또 달리지만, 그녀의 페달은 전근대적 아버지들의 말발굽을 이기지 못한다. 세 번째 여자. 마침내 홀로 자유의 몸이 된 여자는, 그러나 너무 늙었다. 후라는 휠체어를 타고 일생 동안 억압했던 욕망을 뒤늦게 풀어헤친다. 화려한 가구와 물건들을 사서 뗏목 위에 싣고 바다를 떠다닌다. 하바에게는 아홉살 생일이, 아후에게는 아버지들이, 마침내 자유가 된 후라에게는 죽음이 다가온다. 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여자가 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고 집을 버린다. 이들은 (남자들이 원하는) ‘여자가 되기’ 위한 순간을 억지로 밀어내지만, 그럴수록 그 순간은 째깍거리는 시계의 불길한 소리처럼 이들의 삶을 옭아맨다.
마흐말바프 필름 하우스의 가족인 마르지예 메쉬키니는 이란 여성의 삶을 세 시기로 나누어 다룬 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들을 모두 만나게 한다. 앞의 두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재현한다면, 마지막 후라의 이야기는 가장 환상적이다. 후라에게는 하바와 아후에게는 없는 자유가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자신이 지나간 흔적들을, 자신의 발자취를, 자신의 집으로 만든다. 영화는 후라의 에피소드를 판타지적인 분위기로 채워서 후라의 화려한 삶과 하바와 아후가 사는 메마른 현실 사이에 틈을 벌린다. 서로 다른 세 여성의 삶은 마치 한 여성의 연대기처럼 이어지면서도,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탄탄한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현실의 고통과 그 사이에서 솟아나는 유머, 낭만적인 판타지와 그 속에 스며든 날카로운 현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미학적으로, 그러나 끊임없이 현실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공존한다.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써클>(자파르 파나히)에서 본 이란 여성의 질곡어린 삶이 가장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