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장애우와 <허브>의 감독·배우와의 대담
2007-01-17
정리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방송, 영화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장애인 심승보씨가 <씨네21> 앞으로 메일 한통을 보내왔다. 정신지체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허브>의 감독, 배우와 대담을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허인무 감독과 주연배우 강혜정은 조심스럽게 참석 의사를 비쳐왔고,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심승보씨는 2006년의 마지막 날 일반 시사를 통해 영화를 관람했다. 장애와 비장애, 편견과 차별. 너무나 오랜 시간 닫혀 있었던 대화의 벽이 두 시간의 대담으로 허물어지진 않았겠지만, 질문과 답변, 공감과 아쉬움이 오갔던 자리엔 어느새 은은한 허브향이 감돌고 있었다. 완전하지 않아서 더욱 의미있었던 대화, 그 소통의 순간을 여기에 전한다.

심승보: 지난 12월31일 드림시네마에서 일반 시사로 영화를 봤어요.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별 네개 반 정도? 관객의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시사회 반응들을 살펴봤는데, 거의 별 네개에서 다섯개 사이더라고요.

강혜정: 굉장히 훌륭한 모니터 요원이시네요. (웃음)

심승보: 영화를 매우 좋아해요. 한달에 두번 정도 극장에 가죠. 일반 시사 때 정신지체 장애우의 어머니도 함께 영화를 보셨는데, 그분은 약간 아쉽지만 감동적이고 좋다고 하셨어요. 사실 지금까지 장애인들은 장애인을 주·조연으로 한 영화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장애인을 등장시킨 영화가 나오면 항상 우려를 하죠. 하지만 <허브>는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이번 영화를 처음으로 기획하신 게 언제인가요?

허인무: 2005년 여름이에요. 사실 영화를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많았어요. 장애인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고, 딸과 엄마의 관계에도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성장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 성장이 더딘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은 어머니니까, 둘의 만남이라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죠.

심승보: 장애인에 대한 감독님과 강혜정씨의 평소 관점이 궁금해요.

허인무: 사실 저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외삼촌도 소아마비예요. 하지만 저는 외삼촌과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어른이 된 뒤에는 나이트클럽에도 같이 갔어요. 그 정도로 외삼촌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못 느끼고 살았죠. 정신지체인들과 실제로 만난 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면서인데, 처음에는 두려움도 많았어요. 시나리오 쓰면서 고민도 많이 했어요. 일단은 그분들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강혜정: 저도 사실 장애우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왜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갖는 편견이 있잖아요. 그들은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이기고 올라설 수 없다는 것.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실제로 그들은 장점도 많고, 저보다 관찰력, 집중력이 뛰어난 분들도 많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해요. 거기서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심승보: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혹은 연기하면서 참조하신 자료나 영화가 있나요?

허인무: 부끄러운 말이지만 처음엔 발달장애와 정신지체가 같은 말인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학습이 필요했죠. 책과 자료를 보고, 장애인의 어머니들이 쓰신 글을 읽었어요. 사랑의 복지관에서 직접 자원봉사를 하면서 장애인들의 삶에 다가가려고 했고요.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건 장애인의 부모들이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었어요. 공감이 되더라고요. 부모는 세상을 떠나도 자식은 잘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강혜정: 사실 영화를 볼 때는 캐릭터만 바라보지 않고 영화 전체를 보잖아요. 이 영화가 나에게 얼마나 큰 진동을 주느냐. 그래서 장애인이라는 캐릭터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제가 ‘상은이는 이런 인물’이라고 연기해도, 그게 정답은 아니거든요. 모든 장애인이 한 가지 타입으로 포장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특정 영화를 참조하진 않았어요.

허인무: 경찰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것보다 훨씬 많아요. 하지만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더 두드러져 보이죠. 그건 영화를 본 관객이 그 주인공에게 더 많이 동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번에 관객이 상은이에게 동화되길 바랐어요. 동화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떠올린다면 <제8요일>이 있네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웃어주면 제가 행복하더라고요.

심승보: 영화 속에서 상은이의 지능은 7살 수준인데요, 상은이의 사회적 지능은 어느 정도라고 설정하셨나요?

허인무: 혜정씨와 처음에 이야기하면서 서로 통했던 부분이, 상은이는 성장이 느려 머리는 7살이지만, 몸으로 먹은 나이는 20살이라는 점이었어요. 그걸 인정하고 가자고 했죠.

심승보: 하지만 상은이의 친구들은 전부 7∼8살 아이들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또래를 친구로 삼잖아요. 굳이 상은이의 친구를 전부 초등학생들로만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허인무: 일단 영화적인 한계가 있었어요. 주변 인물을 너무 늘릴 수 없었죠. 또 상은이와는 반대의 인물들을 친구로 설정하고 싶었어요. 상은이가 몸은 20살이고 머리가 7살이라면, 친구들은 몸은 7살이고 머리는 20살인 거죠.

심승보: 하지만 그 설정이 관객이 보기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어린아이들하고만 논다, 또래와 어울릴 수 없다, 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거든요. 상은이에게 또래의 친구를 한두명 정도 붙여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아요. 하지만 상은이의 주변 사람들이 상은이를 대하는 태도는 좋았어요. 상은의 엄마와 종범, 친구들의 시각을 어떤 식으로 설정하셨나요?

허인무: 영화를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복지관에 가서 장애우들과 만났어요. 그렇게 4주 정도 지나자, 그들이 저와 다르다는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물론 차이는 인정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냥 일상이 된 거죠. 어머니가 상은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20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상은이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 않아요. 장애인이라기보다는 딸이라는 느낌이 우선이죠.

심승보: 제가 휠체어를 타잖아요. 하지만 제가 이걸 항상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아주 가끔 생각해요. 드림시네마 계단을 올라갈 때. (웃음) 이렇게 앉아 있거나 공부하고 놀 때는 전혀 생각 안 해요. 하지만 일반인들은 장애인들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요. 굉장한 오해예요. 혜정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연기하면서 어려운 부분이 없었나요? 사실 저는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캐릭터는 연구하고, 자료를 보고, 실제 인물들을 만나보면 되잖아요. 하지만 정신지체 장애인의 마음은 그 부모도 몰라요. 표현을 잘 못하니까요. 오히려 역으로 일반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혜정씨는 그 역할을 잘하신 것 같아요. 놀라웠어요.

강혜정: 제가 잘했나요?

심승보: 잘했다기보다는…. (웃음) 잘했다는 의미는 이거 아닐까요? 사람들이 보고 동감할 수 있는 거. 그게 잘한 거죠.

강혜정: 상은이처럼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관객에게도 의미가 있는 칭찬일까요? 사실 장애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디까지가 따라하기고, 어디까지가 연기하는 건지 수위를 정하는 건 애매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영화도 참고하지 않았어요. 다만 감독님이 원하는 상은이는 어떤 인물일까에 대해서만 고민했죠. 그냥 시나리오만 봤어요. 감독님께서 선물해주셨던 영화도 장애인의 등장 여부보다는 상은이의 세계관과 관련된 영화들이었어요. <스탠 바이 미> <빅> <구니스> 등, 동심과 순수함, 모험심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죠. 영화는 영혼을 움직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비주얼로 연기가 성립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연기를 할 때,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할지,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할지,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는 고민이 돼요. 하지만 장애를 계속 의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목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그걸 의식한다면 매일 목폴라 티만 입어야 해요.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독님도 저도 장애를 의식한다기보다는 단지 상은이가 사랑스러워 보이도록 노력했어요.

심승보: 영화 속에서 상은의 엄마는 자식이 자신보다 하루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리고 이런 장면은 장애인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자주 나와요. 혹시 이 원인을 아시나요? 자식이 자신보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의 속내를. 매우 간단해요. 원인은 우리나라에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없기 때문이에요. 상은의 엄마가 죽으면 상은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은 성년후견인 제도가 있어요. 그래서 그곳에선 장애인의 부모가 죽어도 사람들이 걱정을 안 해요. 돌봐줄 누군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상은의 소지품을 연도별로 상자에 담는 장면이 한편으로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비판이 될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좀더 깊게 꼬집어주지 않아서 아쉬웠지만요.

허인무: 제도적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몰랐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죠. 그런 막연함이 무의식중에 반영된 게 상자장면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최소한 어제보다 내일이 나아지고 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거라 믿어요.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고요.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산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심승보: 상은의 엄마가 상은에게 “보험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은 정말 보험 들기 힘들거든요. 그런 사회적인 문제를 좀더 깊이있게 꼬집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강혜정: 어떤 말씀인지는 알 것 같아요. 사회 제도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장애인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죠. 그리고 그런 부분을 <허브>가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점은 저도 안타까워요. 하지만 영화는 드라마를 전개하고 끌고 나가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부분을 완전히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죠. 물론 사회 제도적인 부분들을 미리 알았다면 그런 부분들을 영화 속에 담아낼 순 있었을 것 같아요.

심승보: 상은이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팔을 물고, 엄마한데 삐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장애인은 모두 천사처럼 그려지는데 상은의 이런 면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허인무: 장애인의 천사 같은 이미지를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그냥 상은을 우리와 똑같이 바라봤죠. 엄마가 빨리 귀가하라고 하면 그냥 삐칠 것 같더라고요.

강혜정: 상은이가 당하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힘없는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당하는 것처럼 상은이가 당하는 건 싫었어요. 그래서 팔도 깨물어주고, 기분 나쁜 것에는 화도 내고, 상은의 그런 감정들을 무시하지 말자고 했죠.

심승보: 주변의 장애인들을 보면, 아우~ 인간들 다 똑같아요. (웃음) 매일 술먹는 애들은 술먹고요, 얄미운 애들은 매일 얻어먹기만 해요. 비장애인과 장애인,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방송이나 영화에선 장애인의 천사 이미지만 나오잖아요. 좀 다양하게 그렸으면 좋겠어요. 상은이가 화내는 것처럼, 장애인의 다양한 면이 나오길 바라요. <허브>를 보면서 또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여성이 남자를 먼저 찍었다(웃음)는 거예요. 장애인이 사랑의 택함을 당한 게 아니라 택했다는 것. 이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영화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오아시스>는 여성 장애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어요. 문소리씨가 연기한 공주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요. 집에서 누워 있고, 오아시스 그림만 쳐다보고. 이는 장애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영화를 본 일반인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죠. 또 종두가 와서 꽃을 주고 몸을 더듬는 장면도 불편했어요. 보통의 여성이라면 싫다고 해요. 하지만 공주는 종두의 손짓을 승낙해요. 장애인들이 정말로 그럴까요? 남자와 사귀어본 적이 없으니까 고맙다고 생각할까요? 그건 여성장애인을 모욕하는 거예요. 또 공주와 사랑을 이루는 사람은 전과자예요. 전과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장애인의 짝이 될 수 없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허브>의 상은은 긍정적인 캐릭터였어요. 경찰, 평범한 남자인 종범과 사랑을 하잖아요.

허인무: 상은이가 먼저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먼저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속된 말로 상은이가 우리의 뒤통수를 치게 해주고 싶었죠.

심승보: 상은의 장애인증을 발견한 종범이 이후에 연락을 하지 않는 건 어떤 의도에서인가요?

허인무: 시나리오를 준비하던 무렵,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장애인이 자신은 “장애인증으로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며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장애인증을 밝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종범이가 이를 발견하고 돌아선 건, 그가 보통 사람보다 더 순수하기 때문이에요. 일반 사람이라면 그냥 능숙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요.

강혜정: 그냥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이 여자의 팔에는 큰 화상자국이 있어요. 남자는 모르고 있었죠. 그런데 그걸 발견한 순간 남자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상은과 종범의 에피소드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아요. 종범이 “잠깐만요”라고 했으니까, 상은은 기다렸겠죠. 기다려도 안 오니까 찾아간 거고.

심승보: 7살 지능을 가진 여성의 사랑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강혜정: 그냥 다른 사랑이랑 똑같이 연기하려고 했어요. 우리는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별짓 다 하잖아요.(웃음) 욕도 하고, 그 사람 뒤에서 침도 뱉고, 어쩔 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숨만 죽이고. 하지만 상은은 계산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머리에 전자계산기가 있다면, 상은의 머리엔 주판이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의 거리감을 뺐어요. 그랬더니 설렘이 커지더라고요.

심승보: 키스장면에서는 왜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있었나요?

강혜정: 감독님이 그렇게 시키셨어요. (웃음)

허인무: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보통의 키스처럼 상은이가 종범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니까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상은이가 깨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상은이가 수동적인 키스를 하는 인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손을 모아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죠.

강혜정: 공주님이 왕자님을 만난 것처럼.

심승보: 장애인이 나온 영화 속에서 항상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 중 하나가 장애인들이 장애에 갇혀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죠. 하지만 상은은 늘 돌아다녀서 좋았어요. (웃음)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죠. 그러나 조금 아쉬웠던 건, 상은이 일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없다는 거예요.

강혜정: 편집됐어요. (웃음)

허인무: 대사 중에는 상은이 포장학원을 열심히 다닌다고 나오잖아요. 촬영은 다 했는데, 러닝타임상 편집을 했어요.

심승보: 물론 대사도 좋지만 비주얼로 보여지길 바랐어요. 공부하는 모습, 일하는 모습이 있으면 일반 관객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사회와 소통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장애인을 사회적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영화 마지막에 상은이 죽어가는 엄마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장면은 어떤 의도인가요?

허인무: 자전거는 상은이가 영화의 마지막을 향해, 세상을 향해 달려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설정이에요. 물론 자전거를 타면서 상은은 수없이 넘어지고, 그 과정에서 종범이 장애인증을 발견하지만, 자전거는 상은에게 희망이에요. 물론 가장 큰 절망도 자전거에서 오죠. 엄마가 죽으니까. 하지만 상은은 이제 넘어져도 세상을 달려갈 수 있어요. 그런 상징을 담은 거죠.

심승보: 하지만 보통의 20살 성인이라면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잖아요. 응급치료를 하지, 죽어가는 엄마를 그렇게 두지 않아요. 그래서 이 장면은 장애인은 가족이 죽어가도 제대로 조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느낌을 줘요.

강혜정: 그전에 상은이가 소원을 이뤘잖아요. “허브밭에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단 말이야”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 소원이 정확히 무언지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마음속에 있는 거죠.

허인무: 만약 저희 어머니가 3일 뒤에 돌아가신다면 저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삶을 끝내도록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상은은 응급처치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생각해요. 병원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던 거죠. 또 상자에 물품을 담다가 엄마가 쓰러졌을 때는 제대로 병원에 가잖아요. (웃음)

심승보: 엄마를 잃은 뒤 상은이는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허인무: 저는 이 영화를 성장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아이가 사랑, 이별을 하면서 어른이 되는 거라고. 그래서 엄마의 죽음 이후에 상은이는 부쩍 큰 거라고 설정했죠.

강혜정: 감독님이 저한데 해주신 말씀이, 모든 부모는 자신이 죽더라도 자식은 잘되길 바란다는 거예요. 꿋꿋이 잘살아주길 바라는 거죠. 그런 마음에서 상은은 앞으로의 삶을 잘 극복해나갈 거라고 믿어요. 상은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도 기뻐하시겠죠. 상은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고 살아가는 희망을 얻은 거예요.

허인무: 나는 죽지만 내 자식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사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는 게 두려웠어요.(웃음) 심 선생님이 영화 속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여러 군데 지적해주셨지만, 저는 제 영화의 엔딩만큼은 칭찬받고 싶었어요. (웃음) 그렇다면 제가 그렇게 부끄러운 영화를 만든 건 아니구나, 안심할 수 있거든요.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거, 그게 제겐 중요했어요.

강혜정: 우리 주위에는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가난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는 이번 영화가 그런 사람들에게 작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요. 가진 사람들만이 여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공평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심승보: 사실 누구도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마음을 알 수 없어요. 본인이 아니면 모르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건 있을 수 있죠. 영화는 그걸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허브>의 결말에 동의해요. 그 결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의 문제는 차후예요. 실제로 장애인들의 부모도 자신의 자식이 상은이처럼 살아주길 바라거든요. 이제 <허브>를 계기로 장애인의 문제를 사회 제도적으로도 조명한 상업영화들이 나오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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