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개 같은 날의 저녁, <바르게 살자> 촬영현장
2007-01-1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이혜정

해가 저물어 어둑해질 무렵, 강원도 삼척시 베스트 상호신용금고에 경찰과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직원과 손님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 중이던 은행강도 정도만(정재영)이 인질 한명을 끌고나와 교환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차 사이렌 불빛을 받으며 걸어나온 정도만은 국방색 레인코트를 입고 어깨에는 소총을 메고 있다. 거기에 험악하게 굳어 있는 인상까지 동서고금의 은행강도를 종합하여 공통점만 뽑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남자. 그러나 사실 정도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도만 걸어온 올바른 경찰이다. <바르게 살자>는 이 정도만 순경이 모의훈련을 위해 은행강도를 연기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이다.

일본 소설과 영화가 원작인 <바르게 살자>는 우디 앨런의 <돈을 갖고 튀어라>처럼 주로 은행 안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코미디다. 어느 소도시에서 연일 은행강도 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은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모의훈련을 계획한다. 은행강도로 낙점된 인물은 경찰서장에게도 딱지를 떼는 탓에 고문관 노릇을 하는 교통과 정도만 순경. 고지식하고 바른길만 고집하는 그는 일찌감치 제압당하도록 되어 있는 시나리오를 거부하고선 서툰 경찰을 가짜로 사살하고 인질극을 계속한다. 이 이상한 상황은 빠르게 소문으로 퍼져 방송국 카메라까지 은행 앞에 진을 치게 된다. 기상천외한 작전을 감행했던 경찰서장(손병호)은 감당이 되지 않는 사건을 앞에 두고 부하들만 다그친다.

촬영현장을 공개한다기에 배우들의 의상을 쌓아둔 짐을 뒤져 옷을 찾아입고 나왔다는 라희찬 감독은 장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바르게 살자>가 데뷔작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일본 상황을 한국적으로 만들기 위해 에피소드와 캐릭터 등을 많이 고쳤다”고 말했다. 촬영현장을 찾은 제작자 장진 감독 또한 “말이 없는 편이지만 독특한 감각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조그만 반전과 스릴이 겹치는 코미디 <바르게 살자>를 향한 기대를 거들었다. 사건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았던 조그만 상호신용금고에서, 정도만 순경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 결말은 올해 봄으로 예정되어 있는 개봉일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코미디든 악역이든 상황에 충실한 뿐

경찰서장 역의 손병호

‘인질교환’이라고 적힌 화이트보드를 들고 나온 여직원을 가운데 두고 두 남자가 대치하고 있다. 악당은 일단 정도만이지만 말끔한 정장 코트를 입고 있는 상대편 또한 만만한 인상은 아니다. <알포인트> <파이란> <야수> 등에서 그늘진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배우 손병호는 모처럼 코미디영화를 만났는데도, 여전히 나쁜 사람처럼 보였다. 손병호가 설명하는 경찰서장은 이런 인물이다. “소도시로 내려와 출세를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고 그 때문에 악당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한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끝부분에서 경찰서장은 정도만이 어째서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는지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관객은 그 부분에서 서장이 정말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정초를 모두 삼척에서 보냈다는 손병호는 <바르게 살자>가 코미디라는 점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코미디이든 악역이든 그 상황에 충실할 뿐이다. 이 영화로 악역 이미지가 바뀐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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